이태원에 쟈니덤플링이라는 만두집이 있다.

영업시작 시간인 오전 11시30분 이전에 줄을 서야 점심 때 맛을 볼 수 있는 곳.

이곳의 킬러 메뉴는 반은 바삭바삭하고 반은 촉촉한,

하나의 만두에서 군만두와 찐만두의 맛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반달’이다.

몇 년 전 그곳에서 반달을 처음 먹고 ‘어떻게 이런 맛이 가능하지’라며 감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그 맛의 비밀을 알아버렸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물을 넣은 뒤 뚜껑을 닫고 익히면

기름으로 튀겨진 만두 바닥은 바삭하고 수증기로 익힌 만두 윗부분은 촉촉하게 된다는 것.

이 엄청난 레시피의 ‘폭로자’는 ‘집밥 백선생’ 백종원이었다.

 

최근에 백종원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음식 평론가 황교익은 백종원이 만드는 음식은 맛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가 보여주는 음식은 모두 외식업소 레시피를 따른 것이다. 먹을 만한 음식 만드는 건 쉽다. 백종원 식당 음식은 다 그 정도”라는 것이다.

이에 백종원은 “내 음식이 세발자전거라면, 셰프는 사이클 선수다. 자전거 박사들이 볼 때는 내가 사기꾼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나는 자전거를 보급화하는 것처럼 요리도 보급화하고 싶을 뿐이다. 세발자전거로 시작해서 두 발 자전거, 산악자전거, 사이클 자전거도 타보시기를 바란다”며 자세를 낮췄다.

“20년이 넘도록 전국 방방곡곡의 음식 이야기를 취재하고 다녔다”는 황교익과

‘전형적인 외식 사업가’ 백종원의 논쟁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었다.

 

그러나 논쟁은 ‘엄마’라는 키워드에서 확대 재생산됐다.

황교익은 “백주부를 ‘백종원 엄마’라고 풀면 백종원에 대한 대중의 열광이 어디서 비롯했는지 알 수 있다”며 “(백종원에게 열광하는) 1980∼1990년대생에게 발견되는 결핍은 엄마”라고 했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면서 엄마가 일하러 나가 제대로 된 집밥을 먹어보지 않은 세대가

‘유사 요리사’ 백종원에게 열광하고 있다는 논리였다.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는 여기서 한참을 더 나간다.

그는 칼럼에서 “대세남 백종원에게서 이상하게 ‘돈냄새’가 난다”며 공격하기 시작한다.

중요 내용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그가 TV를 통해 선보이는 요리들은 우연인지, 계획적인지 모르겠으나 다 그의 식당 메뉴라는 점이다.(중략) 그가 자기 식당에서 그런 음식을 파는 건 자기 철학에 관한 일이다. 그러나 셀 수도 없는 여러 프로그램에 나와 자기 식당의 ‘입맛에 관한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건 어째 ‘계산 속’이 보이는 일 같다. (중략) 그는 자기 식당 상호를 은근히 드러내는 PPL(간접광고)을 하는 ‘하수’가 아니다. 대신 자기 식당이 만들어내는 가벼운 음식에 대해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듯 보인다. ‘프로’다. ‘이건 너무 달아’ ‘이건 맛이 너무 가벼워’ 같은 비평 대신 ‘뭘 그리 까탈스럽게 굴어’ ‘요즘 설탕이 대세잖아’ 같은 평가 말이다.”

정리를 하자면, 그는 주로 자기 식당의 레시피를 대중들에게 공개하는데

그건 사람들을 가벼운 맛에 길들이려 하는 것이고

결국엔 자신의 사업을 위한 고도의 계산된 마케팅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말이다.

백종원은 달달하고 감칠맛 나는 자기 식당 메뉴의 레시피를 하루가 멀다 하고 공개하고 있다.

게다가 백종원은 신개념 종이컵 계량까지 제시하며 직접 해먹어보라고 부추긴다.

재료 사서 내 손으로 손쉽게 요리하면 똑같은 맛이 나는 걸,

굳이 돈 써가며 백종원 가게에서 사먹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논리적 비약이 느껴지는 칼럼이지만 황교익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를 공유하며 이렇게 적었다.

“기레기는 대중의 눈치를 본다. 대중이 ‘좋아라’ 하는 딱 그 수준으로 기사를 날린다. 어떤 기레기는 두려움에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가끔은 이렇게 언론인을 본다. 그것도, 무려, 조선일보에서!”

백종원을 비판하지 않으면 기레기가 된다는 수준으로까지, 논쟁은 저급하게 흘러가버렸다.

 

untitled.png

 

 

짬짬육아 시즌1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요리맹이었다.

제육볶음에서는 돼지 냄새가 났고 다 튀긴 돈까스에서는 벌건 육즙이 흘렀다.

(http://babytree.hani.co.kr/?mid=story&category=376362&page=2&document_srl=32765)

스마트폰 유저가 된 뒤에 조금 더 완성된 요리에 다가갔지만

‘실력’이 늘거나 요리와 친해진 건 아니었다.

(http://babytree.hani.co.kr/?mid=story&category=376362&page=1&document_srl=46841)

 

최근에 우연히 <마이리틀텔레비전>에서 백종원의 요리를 보게 됐다.

입맛이 저렴한 내게 그의 레시피가 더 강렬하게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부터 그의 요리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감탄했던 쟈니덤플링의 반달을 흉내낼 수 있었다. 옥수수전도 맛있었다.

녀석도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올리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설탕을 쓰고 종이컵 계량을 한다고 해서 내가 만든 요리에서 사랑이 빠져나가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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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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