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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이는 많지만 정작 떠나는 이는 적다.
일상의 짐을 내려놓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 그래도 나는 떠나고 싶었다.
                                            -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 오소희 -


두 아이가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
'아, 조금만 더 키우면 나 혼자 잠깐씩 여행다닐 날도 오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힘든 시간을 견디고 또 가끔은 설레이곤 했다.
언젠가는.. 으로 시작되는 상상을 혼자서 가끔 펼치는 것만으로도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육아와 일상을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살다보니, 그런 시간은 '저절로'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왠지 모를 불길한 깨달음이 들기 시작했다.

남편은 네 식구를 혼자 먹여살리느라, 바쁘다 바빠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내가 집과 두 아이를 철통보안(?)으로 지키고 돌보는 덕에
철마다 직원연수, 회사단체여행 등을 명목으로 북해도니 오사카니 두루두루 세상구경을 하고
해마다 경력을 쌓으며 사회 속의 자기만의 자리를 차근차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부럽고 야속할 때마다, 자기 일에 몰두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나는 협박 반 애걸 반이 섞인 선언을 하곤 했다.
"나도 언젠가는 당신처럼
나만의 일과 자유를 위해 떠날테니, 그땐 잘 부탁한다."고.

아이들이 자라고
우리 둘 다 40대가 되고
살림에 아주 조금이지만 윤기가 흐를 쯤이면,
그런 나만의 시간이 거저 찾아올 줄 알았던 나는
마흔 하나, 둘, 셋.. 어찌 된 일인지 육아와 살림의 수렁 속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기는 커녕,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 즈음,
읽고 있던 책 속의 한 마디가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이 세상에는 하루24시 매순간
당신 하나만을 지극히 생각하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다.
그건 바로 당신 자신이다."

음.. 역시 그렇구나. 나의 희생이나 헌신, 양보에 대해
누군가 저절로 알아주기를 바래선 안되는 거였어.
내 마음을 알아주고 구원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은
남편도 아이들도 시댁도 세상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 즈음, 친구가 보내온 한 권의 책 <결혼한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을 통해
내가 전업주부로 보낸 10여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이제 더 이상 뭔가 외부적인 일이 일어나
우리의 삶을 바꿔주기를 기다려서는 안된다.
우리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하며
자신의 실현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만 한다.
여성도 다른 사람에게 가치있는 존재가 되어주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구해야 한다.
내가 한 사람으로서 온전하지 않다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여행이라도 좋고
일이라도 좋고
꼭 먼 곳이 아니라도 좋다.
그냥 혼자가 되기 위한 시간.
날마다 가족과 집안일의 수십가지 대소사를 처리하느라
산발이 된 내 정신과 신경줄을 한 곳으로 차곡차곡 거두어
내 내면에 앙금을 만들 수 있는 시간.
내 안에 고인 진짜 나를 고요하게 바라보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도 간절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조용히 시작한 일들 몇 가지.
일단, 딸인 큰아이를 잘 키워두기로 했다.
잠시 떨어져 있어도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만큼의 신뢰와 사랑을 쌓는 일에
정성과 노력을 다했다. 어리지만, 여성이 본래부터 가진 영리함을 꼭 필요할 때
현명하게 발휘할 수 있는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두번째는 남편.
회사에서 가는 각종 연수와 회식, 여행 때 군말없이 보내주었다.
그가 직장생활을 유난히 힘들어하고 삶의 회의를 느끼고 방황하던 시절에는
젤 좋아하는 친구랑 만나 한잔 하고 오라며, 또 가끔은 가벼운 여행이라도 다녀오라며
내가 등떠밀어 떠나보내곤 했다. 잠깐의 기분전환으로도 금방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복원력을 가진 남편은 그때뿐일지 몰라도 다녀온 다음엔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듯 했다.
나는 '당신이 느낀 바로 그 느낌을 나도 언젠간 경험하고 싶으니, 그땐 꼭 도와달라'
며 주기적인 세뇌와 신신당부, 확인을 반복했다.
친정과 모국을 떠나 살아온 아내의 처지를 최대한 과장하고 부풀려
필요할 때 언제든 타 쓸 수 있도록
나를 향한 연민과 공감(대부분 강요된..)을 차곡차곡 저금해 두었다.

셋째는 시댁, 특히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친정이 외국에 있는 우리 가족에겐 남편이 아이들 데리고
만만하게 찾아가 밥이라도 한끼 얻어먹을 수 있는 곳은 시댁밖에 없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손길은
바로 또 다른 여성의 손길이다.
친정엄마보다 많이 어렵고 여전히 조심스럽긴 하지만
시어머님과 평소에 소통을 잘 해 두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니
어머님과 함께 하는 시간에도 신경을 썼다.
내가 하고싶은 일에 몰두해야 할 때,
시댁에서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비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와 관계된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다.
지금은 이기적인 사람이란 뒷담화를 들을진 모르지만,
시댁과의 관계가 1,2년으로 끝날 관계는 아니니
이렇게 서로에게 조금씩 적응하는 연습을 하는 수 밖에.
그 시작 역시, 상대방이 아니라 내가 되어야 한다.

넷째는 이웃 엄마들과의 관계.
마음이 맞는 몇몇 엄마들과 깊고 친밀한 관계 만들기.
우선 아이들 친구 엄마들이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30분에서 1,2시간 정도의 품앗이 육아는 자연스럽게 서로 돕는 동네 네트워트를
천천히 구축했다. 엄마들 사이의 신뢰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도, 현명하고 합리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회복할 수 있는
엄마 친구를 만들려면 스스로 노력하고 진심을 다하는 수밖에.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벽돌을 쌓아올리듯.

이 모든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뜻대로 되는 일도 아니다.
때로는 육아 자체의 힒듬보다
육아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특히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더 고통스러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오랜 과정을 거치면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은
육아가 개인적인 영역이라기 보다 굉장히 사회적이고
세상의 많은 문제들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복잡하고 어렵지만, 서로가 함께 성장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꾸준히 만들어 가는 수밖에.

몇 년에 걸쳐 이 모든 게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도
가장 큰 걸림돌은 늘 둘째 아이였다.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고,
잠깐 한눈을 팔면 위험하거나 가슴 철렁하는 일이 늘 생기곤 했다.
산부인과에서 오랜 세월 베테랑 간호사셨던 시어머니마저도
손주들 중에서 제일 키우기 힘든 아이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하셨다.

이렇게 별나고 엄마 의존증이 유난히 심했던 아들은
6살이 되어서야 겨우 나에게서 조금씩 독립하는 듯 했다.
누나가 상대만 해준다면 엄마는 안중에도 없고
아빠랑 단둘이 외출해서 남자들만의 취미생활을 드디어 즐기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슬슬.. 혼자 떠나기에 시동을 걸어도 될까?

그 즈음, 우리 가족은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옮기는 큰 일을 치뤄내고
나는 첫 육아에세이의 초고를 완성해서 출판사에 막 넘긴 때였다.
이때다.
그런데, 이상하게 슬슬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한 일도 없이 몹시 피로하고 어지럼증을 자주 느꼈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척척 해냈던 육아와 살림이 버겁기만 했다.
둘째 키우면서 쌓인 피로와 긴장, 힘들었던 이사 때문인가 싶어
일단 푹 쉬는 시간을 많이 가져보기로 했다.
해야할 일들과 관계를 다 가지치기해서,
꼭 필요한 일만 남겨 심플하게 일상을 재정비하고 많이 쉬고 많이 잤다.

그런데도 몸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웠다.
30대 내내 병원 진찰권이라곤 산부인과 것밖엔 없었을 만큼 건강한 편에다
감기가 들어도 약없이 푹 쉬고 자는 것만으로 금방 낫곤 해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몸이 아픈 것에 적응하는 게 쉽지않았다.
남편의 권유로 줄곧 미루기만 했던, 건강진단을 오랫만에 받으면서
그 이유가 드디어 밝혀졌다.
이런저런 검사 끝에 무리하지 않고, 많이 쉬고, 증상에 적절한 약과 보조식품들을
꾸준히 먹으면서 경과를 지켜보면 될 일이었지만
아픈 것 자체보다, 몸과 정신의 무기력함이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다.
육아와 살림의 가장 험난한 시기를 겨우 보내고 결국 나에게 돌아온 건,
노화와 피로와 질병 뿐이란 말인가.
이제 오랫동안 미뤄왔던 일도 시작하고 싶고,
적은 급여지만 오라는 곳도 생겼는데 말이다..

실망과 절망 속에서도 당장 해야할 일은, 건강을 챙기는 거였다.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 천천히 지내고 가끔 산책을 하며 꼭 필요한 일만 했다.
그런데 아이가 있는 주부의 일상이 그리 만만하던가.
꼭 필요한 일만 한다고 해도 하루가 빠듯했다.
어쩔 수 없이 내 차례가 되어 맡은 학교 학부모회 일만 해도 힘들고 버거웠다.
학부모회 회의에 참가했다 돌아오는 길에, 함께 걷던 동네 엄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휴, 뭔 할 일이 이리 많은지.
이러다 전업주부가 과로사했단 뉴스나겠어."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은
가족들의 도움과 정기적인 병원치료와 진찰로 심각한 상황은 벗어났다.
하지만, 역시 나이를 무시할 수 없는지, 30대 때 같은 생기와 활력이 생기지 않는다.
당연한 일임에도 이런 나 자신이 당황스럽고 적응이 어려운 게 솔직한 심정이다.
더 이상 무리할 순 없는 나이가 됐지만,
그래도 나는 잠깐이라도 혼자가 되는 시간이 갖고 싶었다.

두 아이의 요란스러웠던 가을 운동회와 각종 행사들을 무사히 마치고,
늘 숙제같았던 올 겨울 계간지 원고를 마감 전에 무사히 보내놓고는
남편에게 이제, 떠나겠단 선언을 했다.
아직 어린 둘째 탓에, 2박3일 짧은 일정이지만
서둘러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첫아이를 낳고 12년만에, 처음으로 혼자가 되는 여행이었다.

떠나는 날 아침까지, 아이의 소풍 도시락을 싸느라 허둥댔지만
그래도 설레고 기뻤다.
여행 자체보다 내가 마음먹은대로, 오랫동안 기다리고 소원한 대로
실천에 옮기게 된 사실이 신기하고 뭉클했다.
다만 걱정스러운 건 남편. 처음엔 편하게 다녀오라며 쿨하게 얘기하더니
출발날이 다가오자 남편은 점점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자기도 아이들이랑 셋이서 한번 지내봐요.
12년동안 잔소리와 푸념이라고 여겼던 아내의 언어들을
단 3일만에 이해하는 기회가 될테니까.
여보, 아이들아 잠시만 안녕.
냉장고에서 시들어가는 배추야 안녕.
풀풀 냄새나는 빨래들도 안녕.
엄마, 그럼 이제 다녀올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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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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