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규 13.jpg

 

아홉 살, 다섯 살, 두 살은 잘 지내기가 참으로 애매한 나이들이다.

첫 아이와 둘째 아이는 성별이 다른데다가 나이 차도 네 살이다 보니 특히 더 어렵다.

이러다보니 삼남매는 늘 아웅다웅이다.

누구에게 맞출 수 도 없어 중간쯤에 기준을 두면 큰 아이는 불만을 터뜨린다.

그래서 목소리 큰 큰 놈을 따라가면 당장 다섯 살 둘째가 야단이다.

막내야 아직 어려서 오빠 언니가 결정하는대로 따라가지만 머지않아 막내까지 제 목소리를 내면

우리집은 더 시끄러워 질 것이다.

 

슬슬 10대로 접어들고 있는 큰 아이는 우리집에서 제일 큰 목소리와 제일 막강한 고집을 가지고 있다.

만 4년을 저 혼자 듬뿍 애정과 관심을 받으며 큰 녀석이라 제 주장이 엄청 강하다.

초등학교 3학년을 앞두고 있으니 관심영역이며 행동반경이며 하고 싶은 일들이 아랫 동생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섯 살 둘째와는 수준이 너무 틀려서 늘 큰소리가 난다.

집에서 영화를 볼 때에도 큰 녀넉은 자막을 고집하고 둘째는 더빙을 주장하는데 글 모르는 둘째때문에

더빙으로 보는 것을 못 참는다.

제가 보고 싶은 뮤지컬 공연도 관람연령이 되지 않는 동생들때문에 갈 수 없는 것도 속상한데

동생하고는 딱지치기도 시시하고, 축구도 할 수 없고, 칼 싸움도 제 힘껏 할 수 없으니 뭐든지 억울하다.

제일 억울한 일은 동생들때문에 제가 엄마 옆에서 잘 수 없는 것이다.

온 가족이 거실에서 자는 우리집은 밤마다 잠자리 때문에 큰 소리가 난다.

아직 젖 먹는 막내는 당연히 엄마 옆인 것을 이해하지만 다섯 살 둘째가 엄마 옆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큰 아이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늘 제가 먼저 내 옆에 누워 둘째와 싸움을 한다.

결국엔 소리를 지르고 울고 불며 아빠 옆으로 가거나 이불 구석에 혼자 누워 시위를 벌이면서

자기만 억울하다고 야단법석을 떨며 하는 말이,

'윤정이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다.

'왜?'

'윤정이만 없으면 내가 엄마 옆에서 잘 수 있잖아요'

'겨우 잠자리 때문에 동생이 없으면 좋겠어?'

'엄마한테는 '겨우'지만 저 한테는 중요한 문제라구요. 윤정이 때문에 내가 손해보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설명하고, 설득하고, 달래도 큰 아이는 아래 동생때문에 수십가지가 억울하고 손해본단다.

그러다가 해결법이라고 내놓는게 나보고 넷째를 남동생으로 낳아 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윤정이도 엄마 옆에서 잘 수 없으니까, 차라리 넷째가 있었으며 좋겠어요'

아이고...

 

 윤정 6.jpg  

 

더  딱한 것은 둘째다.

힘으로 보나, 머리로 보나 따라갈 수 없는 막강 오빠를 둔 덕에 뭐든지 우선 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래 동생은 겨우 두살이니 아직 타협도, 설명도 통하지 않는 무대포다.

오빠랑 있을 때는 제 맘대로 할 수 있는게 별로 없고, 오빠가 학교에 간 다음에는

제가 하는 놀이마다 막내가 방해를 해서 늘 속이 상한다.

막내는 뭐든지 오빠 언니 하는 대로 따라하는 '따라쟁이'다 보니

둘째가 장난감 유모차를 밀고 오면 그걸 제가 하겠다고 아우성이고, 곰돌이를 업고 오면

제가 업겠다고 나서고, 소꼽놀이를 시작하면 저도 하겠다고 덤져서 판을 깨 놓고 만다.

다 포기하고 책을 집어 들면 동생이 그 책을 제가 하겠다고 매달리고

속상해서 안아 달라고 내게 오면 얼른 내 가슴을 파고드는 막내 때문에 기어코 눈물 바람을 하게 된다.

'엄마, 이룸이가 없었으면 좋겠어'

'이룸이 때문에 언니가 많이 속상하지?'

'이룸이는 내가 하는거 다 방해만 하고, 못하게 하고, 지가 한다고 하고..'

둘째는 눈물을 뚝뚝 떨군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영특하고 맘이 고왔던 둘째는 위에서 눌리고, 밑에서 치이는 자리에 있어서

지켜보는 맘이 참 짠하다. 막내만 없다면 아직까지 제가 막내 노릇을 하며 어리광을 듬뿍 부릴 나이에

동생 노릇, 언니 노릇에 맘 고생이 심하니 얼마나 힘 들까.

 

이 세아이들의 엄마이자 조정자로서 나도 늘 난감하다.

어린 동생들 입장을 대변해주면 큰 아이는 대번에

'엄마는 동생들만 사랑하고, 나만 무시하고!!'하며 펄펄 뛰고

오빠가 하자는 대로 하면

'나는 재미도 없고, 같이 할 수 도 없는데..' 하며 소리 지르고 우는 둘째가 걸린다.

세 아이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길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당분간도 셋 중의 누군가는 계속 한숨과 억울함과 분노를 품을 수 밖에 없다.

늘 바라는 것은 큰 아이가 좀 더 생각이 깊어져서 어린 동생들을 좀 더 자상하게 배려하는 것이지만

그거야 순전히 어른의 기대일 뿐 제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아홉살 사내아이에겐 무리일  것이다.

 

첫째도, 둘째도 억울하고 속상해서 잠 든 밤이면 차라리 아이 하나만 키웠다면 이런 문제가 없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엄마랑 단둘이 공연도 보고, 데이트도 하는 외동이들이 부럽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잠깐 드는 생각이다.

지금은 동생때문에 억울하고, 오빠 때문에 속상하겠지만 크다 보면 알겠지.

나이 차 나는 형제가 있어서 한번 더 생각해야 하고, 더 오래 웃게 되고, 더 많이 배려하고, 양보하는 동안

제 마음속 키가 더 많이 자라났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얼마나 더 요란하고, 소란스럽고, 짜증나는시간을 견뎌야 할까..

이러다가 내 마음속에 지혜가 늘긴 커녕, 잔소리와 야단만 엄청 엄청 늘고 마는

성질 대마왕 엄마가 되는 건 아닐까..

 

아아..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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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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