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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오랜 기간을 공부하고도 여전한 '영어 울렁증'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평범한 엄마로서 내 아이들에게는 영어가 보다 재미있고, 즐겁고, 쉬운 언어가 되기를 바래왔다.

그렇다고 아기때부터 영어 동요를 틀어주거나 읽어주고 영어유치원을 기웃거리는 열혈엄마는 아니었다. 어린시절엔 영어말고도 소중한게 너무 많아서 열심히 살 부비며 놀고, 함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키웠을 뿐이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엄마라서 책은 열심히 읽어주었고, 영어책들도 가끔 읽어주긴 했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한글책을 더 좋아해서 영어책은 그냥 이따금 보여주는 정도였다.

 

큰 아이는 내가 의도를 가지고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들면 단박에 거부하는 아이였다. 그래도 크다보면 영어에도 자연스럽게 흥미를 가지겠거니 기대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아이와 많은 외화를 보면서   혹 영화를 통해 영어도 좀 배우게 되지 않을까하고 기대했지만  큰애의 영어는 영화 '스타워즈' 중 '다스베이더'의 유명한 대사 '아임 유어 파더'를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머리가 좀 크고 나더니 저는 영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딱 결정해 버리는 것이었다.

 

딸들은 좀 달랐다. 어릴때부터 영어에 흥미가 있었고, 가르쳐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영어책도 좋아했다. 잘 가르치면 오빠보다는 발전이 빠르겠구나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정보가 너무 넘치다보니 차근차근 내 아이에게 맞는 것을 찾는 것도 어려웠고, 늘 눈앞에 닥치는 새로운 일들에 매달리다보면 영어를 가르친다는 계획은 물건너가기 일쑤였다.

 

그러다 드디어 올 4월부터 아주 신나는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둘째와 막내가 다니는 학교에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은 학부모들 동아리 활동을 적극 권장하셨는데 영어강사를 하고 있는 한 학부모의 재능기부로 '영어 그림책 읽기 동아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올해부터 막내도 병설유치원에 다니고 있고, 수업은 2주에 한 번 오전 두시간 동안 진행되므로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수업에 들어갔더니 아이랑 영어를 재미있게 배우고 싶다는 엄마들 여덟이 모였다. 유쾌하고 열정적인 선생님은 우리 학교 6학년 아이 엄마였다. 키우는 아이들의 학년은 다 달랐지만 영어를 즐겁게 배우고 싶은 마음은 같았다. 아이에게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고 싶어도 어떤 책이 좋은지, 어떤 순서로 읽어주는게 나은지, 영어 그림책은 어떤 방식으로 읽어주는게 효과적인지 알수가 없었는데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어그림책 읽어주는 수업을 하고 있는 선생님의 경험과 노하우를 함게 들을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었다. 그렇지만 이 수업의 재미는 뭐니뭐니해도 영어그림책을 듣는 시간이다. 매 수업마다 영어그림책 세권을 선생님이 재미나게 읽어주시는데, 아이처럼 기대를 하고 선생님이 읽어주는 책에 빠지는 시간만큼은 다시 어려진 기분이 들 정도다.

한글책으로 아이들과 수없이 읽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너무너무 재미있다. 늘 읽어주는 입장에서 누군가  재미나게 읽어주는 것을 듣는다는 것도 정말 좋았다. 대개 한글책으로 이미 너무나 유명한 원작들을 다루기 때문에 해석은 따로 안 하지만 틀기기 쉬운  단어들의 발음은 따로 배우기도 한다.

 

이 동아리의 목적은 영어실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서툴고 부족한대로 좋은 영어 그림책을 통해 내 아이와 더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철학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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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책 세 권을 읽어주면, 다음 모임에 그 책 중 한 권을 선택해 전 회원 앞에서 읽어주는 시간을 갖는다. 발음이 좋은 엄마도 있고, 서툰 엄마도 있고, 긴장해서 떠는 엄마도 있다. 그런가하면 배우처럼 재미나게 읽어주려고 애쓰는 엄마들도 있어 모두의 박수를 받기도 한다. 내 아이가 아니라  또래 엄마들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는 일은 꽤 용기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서로 격려하고, 작은 실수는 함께 웃어가며 읽다보니 조금씩 용기도 생기고 요령도 생긴다.

 

책 한권 한권마다 깃들어 있는 풍부한 의미와 사연들도 나누고, 서로 아이 키우면서 겪는 에피소들들도 더해가는 수업은 늘 풍성하고 다양하며, 찡한 감동도 배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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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동아리 수업이 있는 날  오후엔, 그날 함께 읽은 책들을 아이들에게 신나게 읽어준다.13살 필규는 여섯 살, 아홉 살 동생과 이런 그림책을 함께 듣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인지 옆에 안 오지만 가만 살펴보면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귀기울이는 것을 알수있다. 그렇게 들어주기만 해도 좋다.

 

윤정이와 이룸이는 이 시간을 아주 좋아한다. 한글책으로 자기들이  좋아하는 책을 엄마가 영어로 읽어주는게 재미난 모양이다. 물론 내 과장된 목소리와 우스운 허리우드 액션도 이 시간을 즐겁게 하는 큰 요인이다. 그림책에 나오는 쉽고 재미난 표현은 재빨리 익히기도 한다. 전보다 훨씬 영어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말들이 영어로는 어떻게 말하는지 묻는것도 늘었다.

 

이정도만으로도 정말 대만족이다. 아직 스펠링도 모르지만 영어를 좋아하고, 영어로 된 그림책 읽어주는 시간을 좋아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아이들을 위해서 시작한 동아리긴 하지만 사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좋다. 좋은 원서들을 모으는 즐거움도 생겼고, 매 수업마다 소개받는 새로운 책을 만나는 일이 정말 설렌다. 같이 배우는 엄마들과도 친해졌고, 격려하고 웃어가며 영어 그림책을 통해 육아와 일상을 나누다보면 지쳐있던 몸과 마음에 새로운 기운이 채워지는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내 영어실력이 더 늘지 않는다해도,  다른 아이들만큼 내 아이가 영어를 못한다해도 괜찮다. 같이 원서를 읽는 시간동안 우리가 느끼는 즐거움과 행복감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때, 처음 영어를 배울때 이런 수업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기도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영어가 즐겁고, 재미있고, 배우는 시간이 행복하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매 수업마다 기꺼이 자신의 재능을 나누어 감동적이고 열정적인 수업을 해주시는 학부모이자 선생님에게도 진심어린 감사를 드리고 싶다.

 

열심히 열심히 해서 내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읽어주고 이 다음에 내 아이들의 아이들에게도 한글 그림책 뿐만 아니라, 영어 그림책도 읽어주는 멋쟁이 할머니가 되어야지...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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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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