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13_1.JPG반년동안 육아휴직을 뒤로 하고 나는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다만 육아 문제를 완전히 해결지었던 게 아니라 마음의 부담은 컸다.

일단 나의 친이모가 나서주셨다. 사실 예전부터 이모가 도와주실 생각이셨지만, 이모부의 갑작스런 병환과 수술로 내가 육아휴직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이모부 건강이 다소나마 호전됐고, 이모는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우리집에 오셔서 아이를 맡아주기로 했다. 워낙 먼 데 살고 계셔서 오가는 길이 만만한 건 아니었지만 이모는 흔쾌히 응하셨다. 내가 어릴 적 아버지 병수발로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나를 맡아 키워준 분이었기에, 나는 이모께 너무도 감사했고 다시금 큰 빚을 지게 됐다.

이모가 안 계신 월요일과 금요일 저녁은 처가 신세를 졌다. 몸이 좀 허약하신 장모님은, 사실 외손자의 육아가 당신의 의무는 아닌데도, 체력이 달려 아이를 돌봐주지 못하는 걸 늘 미안스러워 하셨다. 이모가 오시기로 한 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문제없으시다며 기꺼이 맡아주셨다. 장모님께도 우린 큰 빚을 졌다.

우리 부부의 삶은 많이 바뀌었다. 아침에 아이와 이별하고 출근하면 이모가 낮시간동안 아이를 돌보셨다. 아내는 퇴근하고 돌아와 아이와 함께 놀다가 잠들곤 했다. 거의 매일 새벽에 나갔다 밤늦게 돌아오는 나는 아이가 깨어있는 모습조차 보기 힘들었다. 아이는 하루종일 같이 있던 아빠가 홀연히 사라져 의아스러웠을지 모른다. 그렇게 바쁜 일주일이 가면 행복하고 편안한 주말이었고, 일요일 저녁엔 잠든 아이를 처가에 맡겼다. 허전하나마 부부는 집으로 돌아와 둘만의 시간을 월요일까지 가졌다. 월요일엔 장모님이 돌보시고 화요일 오전 우리가 출근한 뒤 아이를 이모가 오신 우리집에 데려다주셨다.

분명 육아로부터 벗어난 홀가분함이 있었다. 언젠가 한 대학 후배는 “주중엔 친정에 맡겨놓고 주말에만 잠깐 보니 아쉽긴 한데, 한편으론 아이를 더 예뻐하게 됐다”고도 했다. 확실히 하루종일 가사와 육아 노동에 부대끼며 볼 때와는 달랐다. 날 보고 반가워하는 얼굴에 힘이 났고, 같이 놀면서 기뻐하는 모습에 신이 났다. 우리 부부는 정말 오랜만에 영화관도 갔고 부담없이 평화롭게 친구들과 식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냥 즐겁진 않았다. 특히 처가에 맡기러 다녀오는 날이면, 우리 부부는 집에 오는 길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이게 과연 잘 하는 걸까. 언젠가 잠든 아이가 처가에서 갑자기 깨더니 울음보를 터뜨린 일이 있었다. 안아달라며 한참 보채고선 울면서 현관문을 가리키며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내가 안고 나섰더니 엄마도 오라며 절규를 멎지 않았다. 결국 집으로 와서 아이를 재우고, 깊이 잠든 새벽에 다시 처가에 맡겼다. 그날 이후 아내는 아이가 보고싶다며 눈시울을 적시는 횟수가 늘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금껏 사회생활을 하시는 어머니는 “아침마다 애 못 보게 출근하느라 숨바꼭질하는 게 어찌나 가슴 아픈지…”라며 과거 나를 떼어놓고 나선 출근길의 아쉬움을 털어놓으신 적이 있다. 우리 부부가 그랬다. 아침엔 아이와 숨바꼭질을 하며 출근을 했고, 일주일 중 하루는 아예 생이별을 했다. 어찌나 가슴이 아픈지. 그래, 다른 게 아니다. 우리에겐 위로가 필요했다. 따뜻한 사랑이 담긴 포옹이 필요했다.

일요일과 월요일 밤, 단둘이 있는 집에서 난 아내를 꼭 껴안고 잠들었다. 아내도 편안한 잠자리를 반가워했다. 그렇게 꼭 껴안고 편안히 잠들자…, 음, 음, 둘째가 생겼다. ^^
 
** 이 글은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디자인하우스) 2011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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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기자
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21>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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