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0x200-family-running-on-a-beach-78291746.jpg » 낭만 가득한 가족여행은 항공사 광고에서나 가능한 걸까? (출처: British Airways)
 
외국여행은 사람을 설레게 한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항공, 숙박을 알아보고, 일정을 짜고, 여행 당일 공항을 향할 때 그 기분은 얼마나 짜릿하던가. 요즘엔 맘만 먹으면 여느 국내여행보다 저렴한 경우도 많다.
 
눈을 감고 두 아이를 데리고, 이국의 거리를 거니는 내 가족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 책에서만 봤던, 상상만 했던 풍경과 정취, 그리고 나, 아내, 그리고 아이들, 아, 아이들! 아이들! 왜냐하면, 아니, 글쎄, 그게 아니라, 에효…, 생각해보면 아이들과의 여행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만 세 살, 한 살의 사내아이 둘을 데려가면 어떨까. 첫째는 아침마다 옷을 안 입겠다며 혼자서 호텔방에 있겠다고 주장할 것이다. 실랑이를 벌이다 보면 하루의 시작이 늦어질 것이다. 기껏 옷 입혀 나서려 하면, 그제야 기저귀에 응가를 한 둘째의 뒤처리를 하느라 다시 출발이 더뎌질 것이다. 하루는 짧을 것이다.
 
버스나, 지하철, 기차 같은 공공 교통수단에 올라타면, 아이들과 의미 없는 실랑이가 벌어질 것이다. 호텔방에 두고나온 로봇을 내놔라 할 것이고, 한국에 잘 살고 있는 ‘번개맨’ 아저씨의 행방을 캐물을 것이다. 떠들지 말고 창밖 풍경을 보자고 하면, 느닷없이 ‘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 노래를 고래고래 부를 것이다. 두 녀석은 쓸 데 없는 이유로 투닥거리다 한 녀석이 울고 말 것이다. 나와 아내는 그 나라 말로 ‘죄송합니다’를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입에 달고 다녀야 할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는 낮잠에 빠질 것이고, 나는 잠든 아이를 안고 돌아다니다 기진맥진해질 것이다. 그동안 다른 녀석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엄마에게 놀아달라고 할 것이다. 그러다 이 녀석이 다시 잠들면, 잠들었던 아이는 깨어나 또 엄마에게 놀아주기를 청할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깨어난 아이를 건네고, 다시 잠든 녀석을 안고 돌아다니며 휴식을 호소할 것이다. 어디 멀리 돌아다닐 수가 없어, 결국 돌아다닌 곳은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들일 게다. 밤마다 허리가 아플 것이다.
 
끼니마다 실랑이를 벌이며 아이들을 먹일 것이다. 아이들이 남긴 걸 부부는 아까워하며 주섬주섬 주워먹을 것이다. 그러다 배가 부를 것이다. 뭘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다. 어디서 뭘 먹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 입맛에 맞추다보면, 맵지 않고 뜨겁지 않고 지나치게 낯설지 않은 걸 먹을 것이다. 그러니 매번 그렇고그런 식사만 하고 있을 것이다. 그 동네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맛집도, 술집도, 카페도 가보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될 것을 염려하여 휴양지, 그것도 어린이 수영 시설이 괜찮은 호텔에만 머무는 계획도 세워볼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장난을 치다가 첫날부터 다칠 것이다. 상처에 물이 닿으면 안 되니 물놀이는 포기할 것이다. 물놀이에 지친 아이들이 잠들 거란 희망을 품고 노트북에 담아온 영화와 드라마는 볼 기회가 전혀 없을 것이다. 대신 혹시나 싶어 같이 가져온 만화영화는, 다친 아이들의 성화 속에서 줄거리와 음악을 외우도록 보게 될 것이다.
 
Interview-with-Delicous-Baby-e1301477121880.jpg » "손잡고 다녀!" (출처: hostelbookers.com)돌아온 뒤, 아이들은 “재밌었어”라고 할 것이다. 그 말 한마디에 모든 피로가 싹 가시…기는커녕, 허탈해질 것이다. 엄마·아빠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아이들인데, 굳이 그 고생을 하며 비행기는 왜 탔던가.
 
현실과 상상 속 ‘시행착오’ 끝에 우리 부부는 당분간 외국여행은 포기하거나, 간다면 둘만 가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몇 해 전 백일이 막 지난 큰 아이를 데리고 외국여행을 가려 하자, “아이는 맡겨놓고 가라. 우리 때도 그랬다” 하시던 장모님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 그때 왜 과감히 맡기지 못하고 “그래도 같이 가야죠”라고 했을까, 왜! 왜! 왜!
** 이 글은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디자인하우스) 2014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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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기자
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21>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
이메일 :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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