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10_02.jpg » 한겨레 자료 사진.

‘아! 너무 힘들다!’
고르지 않은 숨을 씩씩거리며 혼자서 오르막길을 올랐다. 1주일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어깨를 짓눌렀다. 피곤이 절정에 다다르니 목이 빠지고 눈이 쑥 패이는 것 같았다.

겨우겨우 차가 있는 곳에 도착해 시동을 걸었다. 방금 올라온 오르막길을 따라 차를 몰고 내려갔다. 이런! 방금 전 나처럼 오만상을 찌푸리고 헉헉대며 올라오는 남자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혼자서 올라오고 있었다. 어깨에 십자가라도 진 양 터덜터덜 발걸음이 몹시도 무거워보였다. 그들의 목적은 나와 같아서 차를 가지러 가는 게 분명했다. 아!

아빠들이 힘겹게 뜻하지 않은 ‘등산’을 해야 했던 건, 주말을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 구경을 온 탓이다. 사실 날씨 좋은 날 동물원은 최고의 코스지만, 동물 구경을 하는지 사람 구경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지난 주말도 마찬가지로 주차장이 만차였다. 안내원은 미술관 주차장으로 가라 했지만,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오르막을 한참 올라가야 나오는 산기슭 주차장에 겨우 차를 댔다.

아이 둘을 데리고 동물원 입구까지 내려와 입장을 했다. 유모차와 아기띠가 있기는 했지만, 잘 안 보일까봐 목말을 한참 태웠다. 1시간쯤 걸렸을까, 타조, 얼룩말, 산양, 사슴, 코끼리, 산양, 물개, 바다사자, 원숭이 등을 보고나서 사자 우리에 도착했다. 이미 난 녹초였다. 최근 만화영화 <마다가스카르>에 재미를 붙인 큰 아이가 부쩍 사자에 열광하고 있으니 망정이지, 동물원 꼭대기에 살고 있는 호랑이가 보고 싶다 했으면 그 자리서 뻗었을 테다. 어쨌든 큰 아이가 고대하던 '알라케이'(주인공 사자의 이름)를 보여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을 들여다보니, 잠이 들어 있었다. 두 녀석 모두! 아내와 마주보며 “사자부터 보여줄걸”하고 푸념했다. 털레털레 입구까지 내리막을 걸어 입구에 다다랐다. 다리엔 힘이 없었다. 주차한 곳까지 올라가려니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였다. 아내에겐 잠든 두 아이를 데리고 있으라 하고, 나 혼자 오르막을 걸어올랐다. 나처럼 혼자서 낑낑 올라가던 아빠들도 마찬가지 사정이었던 게다. 그들을 보는 내 눈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바깥일에 골몰해서 가사와 육아에 무심한 아빠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다. 다만 나름 의지는 있지만 여러 사정으로 가족에 신경쓰지 못해서 미안하고 안타까운 아빠들은 할 말이 많다. 날마다 야근 아니면 업무상 술자리의 반복으로 피곤에 절어있다보면, 가족과의 오붓한 시간보다는 쉬고 싶단 생각부터 간절한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어디 쉴 틈이 있던가. 모처럼 일이 일찍 끝나 집에 오면 상황은 다르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큰 아이가 “아빠!”하고 외치며 우다다 뛰쳐나온다. 아이를 안아올려서 집으로 들어서면 거실에서 출발해 열심히 기어온 둘째가 배시시 웃는다. 있는 힘을 다해서 두 녀석을 양팔에 안고 집안에 들어와, (입으로 하는) 총싸움·칼싸움도 벌이고, 레슬링을 한다며 굴러다닌다. 번갈아 '발 비행기'도 태워준다. 같이 노래책을 붙들고 꽥꽥 힘껏 노래도 부른다. 두 녀석 목욕까지 시키고 나면, 정말 내 입에서 단내가 난다.

하지만 결국 미소를 짓는 건 나다. 깔깔대며 놀다지친 아이들이 잠든 모습을 가만히 보면, 그렇게 흐뭇한 일이 없다. 이튿날 아내가 전화를 걸어와 “아이가 아빠를 찾는다”고 하면 우선은 안쓰럽지만, 한편으론 뿌듯하기도 하다. 아이들은 그렇게 아빠와의, 또 남자와의 관계를 배울테니, 그건 분명 아빠의 할 일이다.
그날 주차장 오르막길을 오르던 아빠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난 그들을, 그리고 나를 응원한다.
 ‘아빠 동지들! 힘냅시다!’

** 이 글은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디자인하우스) 2013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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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기자
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21>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
이메일 :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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