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오래~ 전 썼던 '두돌, 비행기를 타다'의 후속편이다. 늦게 올려서 독자님들께 죄송!!


 

IMG_6576.JPG » 푸켓 바닷가에서 즐겁게 노는 인이. 하루 잘 놀더니 다음날엔 큰 탈이 났다.

 

지난 2월 남편의 안식월 휴가를 맞아 두돌을 맞은 아이와 푸켓행 비행기를 탔다. 주변에서는 서너시간 비행으로 도착할 수 있는 괌이나 사이판을 추천했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코끼리와 물고기를 가까이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7시간 가까이 가야 하는 푸켓을 여행지로 결정한 것이다.

 

어찌저찌해서 새벽에 푸켓에 도착해 우왕좌왕하다가(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을 택한 탓이었다) 옴팡지게 바가지를 쓰고 택시를 잡아 호텔에 도착했다. 새벽 4시가 넘었지만 호텔 방 안에 들어가니 긴장이 풀리면서 내 집에 돌아온 듯 마음이 편해졌다.

 

현지 3일 일정으로 하루는 호텔 수영장에서 놀기, 하루는 물고기 구경하기, 하루는 코끼리 관람으로 여유있게 여행일정을 잡았다.

 

물론 첫날부터 순탄하게 흘러갈 리 없었다. 아침 밥먹고 오면서 수영장을 본 아이는 물에 들어가겠다고 난리를 치더니 정작 수영복을 입혀놓으니 물에는 안들어가고 수영장 주변을 누워서 떼굴떼굴 굴러다니며 진상을 떤다.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묻고 싶었지만 엄마, 아빠, 까까, 쭈쭈 정도만 말하는 애가 왜 물에 안들어가는지 친절하게 설명할 리 만무. 그래 니 마음 너도 모르는데 내가 어찌 니 마음을 알겠냐.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무릎 높이에서도 물고기를 볼 수 있다는 카이섬 하루 투어를 떠났다. 전날 같지 않게 아이는 신나게 물고기와 놀았고 한국서부터 바리바리 싸간 모래놀이도 신나게 했다. 점심 때 현지투어 여행사에서 점심메뉴로 준비한 스파게티도, 저녁때 돌아와서 먹은 저녁에 나온 새우찜도 정신없이 먹어제꼈다.  그런데 결국 아이의 왕성한 식욕이 마지막날의 사달을 일으킬 줄이야.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코끼리 관람을 하기로 한 마지막날 아침. 칭얼대는 아이의 머리를 짚어보니 뜨끈한게 심상치가 않았다. 38.5도. 부랴부랴 열패치를 붙였다. 아침을 먹고 나서도 열이 내리지 않았지만 본전생각에 집착한 나는 코끼리 동물원에 가자고 우겼고 애 아빠는 반대했다. 38도 이하로 내려가면 가자고 합의를 했는데 열은 내리지 않았다. 다행이 아이는 많이 보채지는 않았지만 불안한 마음에 코끼리 관람을 포기하고 수영장 그늘에서 아이를 눕히고 하루종일 해열제를 먹이며 찜질을 계속 해야 했다.

 

해열제를 먹이면 38도 아래로 떨어졌다가 몇시간이 지나면 39도까지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애 아빠는 현지 병원에 데려가자고 했지만 어쩐지 관광지 주변의 병원이 신뢰가 가지 않았다. 코끼리에게 먹이를 주고 코끼리를 직접 만져보게 해주겠다는 나의 원대한 꿈은 산산조각 나고 푸켓에서의 마지막날은 허무하게 날아갔다. 하지만 허무한게 문제가 아니었다. 밤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가기 직전부터 아이는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분수처럼 나오는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한시간에 한번 꼴로 냄새가 지독한 설사를 했다. 병원에 가기에도 늦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는데 다행이도 해열제를 먹고 아이는 잠이 들었다. 나도 깜빡 잠이 들었다가 남편이 깨워 아이 체온을 재보니 39.7도. 옷을 벗기고 냉찜질을 하고 바닥난 기저귀를 승무원에게 요청해 갈면서 1분1초를 셌다. 태어나서 한번도 배앓이를 해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이렇게 어린 아이를 데리고 외국에 나가고자 했던 내가 나쁜 $이라는 자책감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입술이 바싹 바싹 마르며 기다리던 인천공항 도착을 하자마자 우리는 아이를 안고 공항 안의 병원으로 뛰었다. 참으로 신기한게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아이의 체온은 38도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의사는 열성 장염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물갈이를 한데다 집에서 만든 음식만 먹던 아이에게 현지에서 먹는 해산물 같은 음식이 무리가 된 모양이었다. 아이는 돌아온 뒤에도 2~3일 동안 이따금  배를 만지면서 오만상을 찌그리며  "엄마, 배"하다가 설사를 하곤 했다.

 

내 생애 가장 정신없던 여행이었다. 아이 보다가 메고 있던 카메라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 멀쩡한 카메라를 버리게 된건 애교 수준의 에피소드였다.

반성도 됐다. 난 진심으로 아이를 위한 여행을 계획한 걸까? 아이가 아니라 나를 위한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한 건 아닌지.

 

푸켓 여행 이후 다섯살 이전 아이에겐 동네 놀이터가 최고의 장소라는 선배들의 충고를 금언 삼게 됐다. 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다양한 워터파크를 데려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목욕탕 물놀이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전 남편이 커다란 고래상어가 있는 오키나와 추라우미 수족관에 대해서 듣고 오더니 아이를 거기에 데려가야겠단다. 나는 단칼에 잘랐다. "니만 가라~ 오키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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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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