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f63927aa0a5b14aa00a42744f213f91.언젠가 이런 고민을 하는 날이 올 줄 알았다.  출산직후 수유 실패담부터 몇 차례 걸쳐 수유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서 젖끊기가 칼럼 소재로 등장하는 날이 올 걸 예상했다.  그러나 소재는 예상이 적중했지만 주제는 나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쭈쭈끊기의 복병은 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간단히 우리 아기 젖먹이기 소사를 소개하자면 출산 직후부터 혼합수유를 해라, 분유를 먹여라라는 가족들의 압력에 시달렸다. 애 굶긴다, 늙은 산모가 너무 힘들다, 모유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등등…. 백일께 아이가 완모에 손을 들어주면서 잠시 잠잠했던 압력은 생후 6개월에 다시 시작돼(6개월 이후에는 영양가가 떨어진다 등등) 11월 직장생활 복귀하면서부터 줄기차게 이어졌다. 젖이 없으면 못자는 아이 때문에 나의 귀가가 늦으면 집안이 초토화되는 사태가 종종 벌어지기도 했고, 이제와 고백하자면 음주수유도 여러번 했다. (잘못했어효!! 악플은 참아주세요~~)

그럼에도 꿋꿋하게(사실은 아이의 칭얼거림을 손쉽게 입막음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어오던 수유를 끊기로 결심한 건 두달 전 즈음.  아이에게 집착과 고집이 생기면서 엄마만 보면 쭈쭈 달라고 달려들고, 주말에도 그림책이고 장난감이고 만사 제쳐두고 하루 종일 젖만 물려고 하는게 이대로 두면 오히려 아이에게 안좋을 것 같아서였다.


말만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면서도 아이의 생떼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언니가 오케타니 요법, 무슨 요법 등등의 연구를 하다가 가장 깔끔한 방법이라며 레몬을 사들고 왔다.  쭈쭈에 레몬즙을 발라주면 아이가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한번 시도를 해봤다. 쭈쭈을 입에 넣더니 얼굴을 찡그린다. 가뜩이나 신 음식은 오렌지 주스도 안먹는 아이라 울고 불고, 분노할 줄 알았는데 뭘 아는지 찡그리다가 씩 웃는다. 그리고는 이내 포기한다. 깜짝 놀랐다.  네가 원래 이렇게 성격이 유순한 아이였단 말이냐!! 기특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짠해졌다.


레몬요법은 아이의 완강한 거부 없이 통하기 시작했다. 단 3,4일 정도 말이다. 처음에 쭈쭈를 바로 밀어내던 아이는, 다음날 한번 쏙 빨고 밀어내고,  그 다음날에는 손으로 쓱쓱 닦아내고 한두번 우물우물하고는 밀어내더니, 4~5일이 지나자 레몬즙으로 범벅이 된 쭈쭈를 눈 한번 깜짝 않고 쭉쭉 빨기 시작했다. 저 이제 완전히 적응했어요~ 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이달이 되면서 오케타니식 젖끊기를 시도했다. 달력의 8월31일에 동그라미를 치고 디데이로 삼았다. 그리고는 매일(은 아니지만) 아이에게 "인이 이제 큰 형이니까 쭈쭈를 아기 곰돌이에게 양보하자"를 반복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건지, 아닌지 태어나서 부터 달력을 가장 좋아했던 아이는 달력을 가르키며 이야기하니 그저 좋다고 방글방글.


그러다가 휴가 여행을 가서 천하대장군 동상을 보고 신기해하면서도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쭈쭈먹는 아이 맴매하는 도깨비"로 소개하며 쭈쭈 달라고 달려들면 "도깨비야 인이 쭈쭈 안먹을 거야"하는 식으로 약간의 협박도 가미했다. (물론 이런 건 안좋은 방법인 줄 안다)


이게 통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의외로 선선히 고집을 부리지 않기 시작하더니 낮에는 쭈쭈를 찾는 횟수가 급격히 줄었다. 그런데 아이가 쭈쭈를 안 찾으니 시원하면서도 뜻 밖의 섭섭함이 몰려왔다. 쭈쭈 빨 때의 그 오물오물한 그 귀여운 입모양을 볼 수 없다는 것도 섭섭했고 무엇보다 아이와 나를 이어주는 특별한 끈이 사라지는 것같아 아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쭈쭈를 포기하고 살짝 풀이 죽은 아이의 모습도 안쓰럽기만 했다.


슬쩍슬쩍 쭈쭈를 다시 주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아이가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후회했지만  재운다, 어쩐다는 핑계로 아직도 가끔씩 쭈쭈를 물린다. 이처럼 일관성 없게 행동하면 아이에게 혼란을 줘 젖끊기에도,육아 전반에도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아직 나 스스로가 충분히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이달 말일은 '쭈쭈 끊는 날'로 선언했기 때문에 조만간 끊기는 할 것 같다.  인군 인생의 한 시대가 마감되는 것이다. 축하해야 하는데 자꾸 서운해진다. 


모유수유가 모성의 척도는 물론 아니다.  이런저런 사연을 겪으며 모유수유에 성공을 했지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모유수유를 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모유수유를 하면서 느낀 건 엄마와 아이 사이를 연결해주는 또 하나의 끈이라는 것이다.  젖을 먹이지 않는다면 경험해 볼 수 없는 특별한 종류의 충만함이다.  그리고 이 충만했던 시절과는 이제 이별해야 할 때가 왔다.


엄마에게 큰 행복을 선물해 준 아가야, 정말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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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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