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모험적’인 성향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확실히 좋아하는 것을 더 즐기는 편이었다. 소설도 좋아하는 작가 위주로 읽고, 음악도 듣던 것만 들었다. 가요를 들어온 지난 20년 동안 카세트테이프에서 시디플레이어, MP3에 아이팟까지 음악을 감상하는 도구들은 눈부시게 진화했건만, 내 폴더의 80%는 여전히 서태지, 부활, 김경호로 채워져 있었다.
-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 가운데
내 학창시절, 사춘기 시절의 유일한 위로였던 그, 서 태 지.
그가 아빠가 되었단다.
아내의 친한 친구 배우 박신혜와 함께 아내를 위한 빵을 골랐단다.
청바지 주머니에 한쪽 손을 푹 찔러 넣은 그가 거리를 걷는다.
아빠가 된 그의 뒷모습에서 설렘과 당당함이 읽힌다.
더 이상 두려울 게 무어랴, 못 할 일이 무어랴.
내 아내와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오로지 그만을 위한 것이던 그의 가슴 한가운데엔 이미 '그들'을 위한 공간이 생겨났으리라.
그리고 그 공간은 점점 더 커져갈 것이다.
이러다 내 심장이 다른 사람의 심장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가 싶을 만큼 그들을 위해 살게 될 것이다.
그 모습이 어색해서 가끔은 후회도 하겠지.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하고.
얼치기 였던 내가 그랬듯이 그렇게 부모가,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그래서 두 아이의 엄마인 아줌마 팬은 그저 웃음이 나온다.
그도 이 새벽 나와 같은 이유로, 수유하는 아내를 위해 깨어 있을까 싶어.
매일 달라져 가는 아이 모습을 휴대폰에 담을까 싶어.
유축기를 소독하고 똥 기저귀를 치우고,
틈날 때마다 모유수유니, 젖몸살이니, 영아산통이니 하는 것들을 검색하고,
벌벌 떨며 조그만 아이 손톱을 깎아주고 몸을 씻길까 싶어.
‘부모’라는 공통 분모 하나로 그가 산후조리원 옆 방 남편처럼 가깝게(혹은 평범하게) 느껴지다니.
당분간은 엄마나 아빠나 좀비처럼 흐느적 거리겠지만, 50일 지나고 백일 지나면 좀 할만할 거라고.
육아 선배로서 오지랖도 부리고 싶어진다.
또 모르지, 이미 베이비트리 열혈독자일지도 후훗
참 궁금하다.
아빠로서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빛깔일지.
유희열 아자씨처럼 "꿈 많던 눈부신 엄마의 젊은 날은 너란 꽃을 피게 했단다. 너란 꿈을 품게 됐단다"하는 노래를 들려줄지.
나중에 한 이십년 쯤 더 시간이 흘러 자식들 다 키워놓은 가수와 팬들이 모이면 어떤 모습일까도 기대된다.
서로 잘 살았다고, 애썼다고 등을 토닥이며 삐걱거리는 목으로 헤드뱅잉을 하며 교실이데아를, 필승을 열창하는 반백의 중년 떼. 상상만해도 신나고 뭔가 짠하기도 하고.
어쨌든 이젠 정말 태지 '오빠'와는 이별을 해야겠다.
아이 아빠 태지 아자씨, 반가워요~ 웰컴 투 부모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