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가난한 농사꾼의 막내 아들인 우리 남편은 크리스마스라고 딱히 뭔가를 해 본 적이 전혀 없다. 크리스마스 뿐인가, 그는 어린시절, 생일에도 뭔가 특별한 걸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아홉살인가에 받은, 뒤로 당겼다 놓으면 앞으로 쌩- 하고 굴러가는 장난감 자동차가 거의 유일한 생일 선물이었다. 형, 누나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막내동생에게 사 준 그 장난감을 받고 그는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형, 누나에게 고맙고 미안했던 거다. 형편 빤한 집에서, 그래도 막내라고 그런 선물을 챙겨주는 마음들이.
그래서인지 남편은 지금도 작은 일에 크게 기뻐하고, 작은 선물에 감동한다.
이제는 많이 낡아버린, 7년 전 내가 선물한 값싼 지갑을 지금도 고이고이 쓰면서 고마워하고
책상 위에 내가 올려 둔 초콜렛 한 상자와 쪽지 한 통에 사랑한다 말한다.
선물은, 선물을 주고 받는 마음은, 그래야 하는 거 아닐까.
작은 것이라도 그걸 받고 기뻐할 상대를 생각하며 고심해서 선물을 고르고,
또 작은 것이라도 그걸 골라 선물해 준 사람을 생각하며 고마워 하는 것.
연애를 하던 우리가 결혼을 하고,
우리가 낳은 아이가 벌써 만 두 살이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크리스마스라고 특별히 뭔가를 하거나 선물을 주고받진 않는다.
김치전에 막걸리, 치즈에 포도주나 마시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이다.
그래도 올해는 육아스트레스가 덜해서인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고 싶은 마음이 조금 들었다.
하지만 분위기 좀 내자고 돈 들여서 뭔갈 사고 싶진 않았던데다
어차피 아이도 어리고 집도 작으니 진짜 '트리'를 들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집에 있는 각종 공작재료들을 끌어모아 아이와 함께 우리만의 작은 트리를 하나 만들었다.
재봉질 하느라 여기저기서 얻은 바이어스 테잎과 리본,
생일파티 장식 세트에 들어 있던 반짝이 물방울, 솜, 각종 단추들을 이용했다.
특별할 것도, 예쁠 것도 없는 장식이지만 아무것도 없던 문에 이렇게라도 꾸며 놓으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난다.
그리고는 쿠키를 좀 구웠다.
이맘때가 되면 이 곳에서는 여러 모임에서 '쿠키 교환' 이벤트가 많이 열린다.
각자 구운 쿠키를 가져와서 한 테이블에 모아 펼쳐 놓고 서로 다른 쿠키를 담아 가져가는 행사다.
올해에도 내가 매주 가는 한 모임에서는 어김없이 이 쿠키교환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에 가져가기 위해 딸기잼을 얹은 크림치즈쿠키를 구웠다.
작년엔 육아에 지칠 때마다 더 열심히 쿠키와 빵을 구웠더랬는데-
올해는 육아가 덜 힘들었던 탓인지, 글 쓰고 책 읽는데 더 많이 시간을 쓴 탓인지 쿠키 구울 새가 없었다.
오랜만에 달달한 쿠키를 구우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더더욱 물씬!
일찍부터 부지런을 떤 덕분에 내가 만든 쿠키를 당당히 쿠키교환 테이블에 올릴 수 있었다.
이 행사 이후로 나는 요 며칠 사이 빵 굽고 재봉질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편이 3주간 방학에 들어가서 평소보다 아이를 더 많이 봐 주고 있어서다.
아이와 남편이 우당탕당 깔깔거리며 노는 '풍경'을 앞에 두고
아이 바지를 만들고 우리 셋 먹을 빵을 구워내며 보내는 이 하루하루가 참 좋다.
이렇게 우리 집에선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내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아이 바짓단을 올려 마무리 박음질을 하고
고소한 마늘식빵을 구워내는 바로 이 순간에도-
우리 엄마는 아픈 어르신들 수발하느라 밤낮없이 바쁜 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우리 아빠는 추운 공장 한켠에서 손 호호 불어가며 잠자리에 들고 있다.
우리 엄마의 수발을 받는 그 아픈 어르신들은 기약 없는 요양원 생활에 표정 없이 하루 하루 더 늙고 병약해지고,
우리 아빠와 함께 일하는 베트남 여성들은 두고 온 고향집, 부모 생각에 외로우면서도 이 곳의 남편, 자식을 위해 일하고 있다.
전국 곳곳 해고노동자들은 천막 안에서, 크레인과 전광판 위에서 목숨을 걸고 외치고 있고,
자꾸 춥고 위험해지기만 하는 세상 속에서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정의로운 사람들이 위협을 받고,
부패하고 치졸한 이들이 보란듯이 자꾸만 우리 앞에 나타나 빙글빙글 웃는다.
그리고, 그리고..
세월호는 아직도 물 속에 있다.
그 배와 함께, 2014년 한 해가
우리 기억 저편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붙들고 싶다.
자꾸만 흩어지던 우리 외할매 모습과 함께,
2014년 이 한해 모두 꼭 붙들어 내 마음에 담고 싶다.
우리 모두 그랬으면 좋겠다.
화려하고 따뜻해 보이는 이 연말 풍경이 가리고 있는 우리의 진짜 모습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