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내일 해솔이 공개수업 있는데 갈수 있어요?”

어 출근일인데 어떻게 하지?”

유현이가 열이 있어서요. 자기가 혼자 가야될 거 같아요

 

아내가 바로 전날 내게 시간이 되냐고 물었다. 공개수업일은 정해졌고 남편이 그 요일에 참석하기가 어려운줄 알고 혼자 가려다가 돌발상황이 생긴 것이다.

 

아빠, 오늘 올 거지?"

 

유치원 공개수업 때는 바빠서 참석을 못했는데 초등학교 공개수업이 갑자기 내게 찾아왔다. 동료에게 오전출근이 어렵다고 전하고 오전 10시 공개수업 10분전, 학교를 찾았다. 2층 복도를 따라 올라가니 아이들이 시끌벅적 난리다. 복도에서 처음 만난 해솔이 단짝 유정이는 아이 떨려하며 종종걸음으로 스쳐지나갔다. 교실 문 앞에서 만난 해솔이는 아빠를 보고선 교실 뒤편에 새로 꾸민 약속나무를 보여주겠다며 나를 잡아당겼다.

교실 뒤편의 아이들 작품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사이, 엄마들 아빠들이 서서히 들어왔고 어느새 수업시작 종이 울렸다. 뒤쪽 벽에 기대어 서서 공개수업을 듣고 있는데 바로 앞좌석에 앉은 남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아이들은 열심히 손을 들고 책을 보며 따라가는데 이 아이는 왠지 모르게 불안해보였다. 상의 소매에 때가 묻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공개수업은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떨리는 첫 경험이다>

사본 -해솔.jpg


10분이 지났을까. 남자아이 엄마가 뒤늦게 교실에 들어와 아이책상 곁에 서고 나니 아이가 기운을 차린 듯 보였다. ‘엄마가 공개수업에 안 올까봐서 속상해 하고 있었구나’. 아빠라도 안 왔으면 우리 해솔이가 얼마나 속상했을까.

이런 감상이 끝나갈 즈음 아이들 손들기가 바빠졌다. ‘저요 저요하며 손을 들지 않는 해솔이를 보며 유치원 공개수업 때 손 한번 들지 못한 해솔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빠 닮아서 부끄럼이 많네’. 우리아이 발표하는 기회가 언제 올까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선생님이 아이들을 분단별로 불러 세웠다. 용기가 없어서 절친 따라 맨 뒤에 나가는 해솔이.

어렵게 낸 시간인데 아이 발표를 보고 가겠구나 싶어 좋았는데 이번엔 혹시 틀린 답을 이야기 할까봐 마음이 떨렸다. 교실 뒤편에 선 엄마들 얼굴은 아무도 모르지만 엄마들끼리는 아이들 얼굴과 이름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드디어 해솔이 차례가 왔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치읏입니다”. 틀린다고 뭐가 문제겠냐마는 정답을 말하는 순간, 긴장이 풀렸다. 다음 순서는 자신이 그린 자음자 그림퀴즈. 로봇도 그리고 차도 그리고 다양한 그림들이 나왔는데 한 아이가 갑자기 설명하러 나와서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왜 우냐고 물으니 너무 어린이 같아서요라는 기대치 못한 대답이 나왔고, 이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괜찮아”, “우리 초등학생이잖아라며 위로하기 시작했다.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전체 반 아이들이 괜찮아 괜찮아를 외치기 시작했고 나는 왠지 초등 1학년 세상에 외계인으로 들어온 듯해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아이 셋이 울고 나니 수업은 어느덧 40분을 지나고 있었다. 단체 격려로 시작된 흐뭇한 분위기에 들떴는지 아이들이 조금씩 떠들기 시작했고 그 틈에 해솔이는 짝지 책상을 밀고 당기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방과후 수업 끝나고 픽업하러 갔다가 해솔이 의자에 한번 앉아보았다.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렸고 또 훨씬 어른스러웠다>

해솔2.jpg 


짝지 엄마도 왔을텐데.. 생각을 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곧 수업이 끝나 엄마들이 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그건 아니다 싶어 해솔이에게 잘못을 지적하곤 교실 밖으로 나왔다. 운동장에서 수업 때 운 아이를 만나 왜 울었냐고 물었다. 대답은 않고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는 달리기를 시작했고 나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해솔이가 보고 싶어졌다. 반 친구에게 해솔이 못 봤어?”라며 찾았고 곧 해솔이가 단짝 친구와 함께 운동장으로 나왔다. 우린 함께 운동장으로 뛰었고 나는 곧 출근하였다. 아이와 함께 한 수업 1시간, 아이들 세상을 잠시나마 구경하니 내 아이에게 1미터는 더 다가선 느낌이다


<뛰어놀때 에너지가 넘친다. 인생은 교실에서가 아니라 운동장에서 더 많이 배우는지 모른다>

해솔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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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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