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엘이 학교 들살이 여행을 떠난 3박 4일간
오랜만에 자유로운 시간을 갖고
도서관에서 혼자 나를 돌아 보았다.
그때 들었던 생각들이다.

 

다엘이 없는 시간이 왜 이토록 편안하지?
매년 있었던 여행인데 왜 이번엔 남다른 걸까?
그간 너무 버거웠나?
아이가 제대로 크는지 늘 전전긍긍 했고
할머니 방에서 TV를 보는 건 아닌지
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오래 붙들고 있진 않은지
공부가 어려워 학교에서 위축되는 건 아닌지
제 시간에 자는지 등등...
온통 불안이 지배하는 육아였다.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말이 생각난다.
조각이란, 돌 안에 처음부터 있던 형상을 찾아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는 일이라는 것.
아이를 키우는 데에도 이런 마음가짐이 없다면
모든 것을 내가 빚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아이의 자생력에 대한 믿음 없이
자칫 망가질까 두려워 떨며 육아를 해왔다.
본래 있던 나의 결벽증은 더욱 심화되어
먼지를 뒤집어 쓰고 학교에서 돌아온 다엘에게
어서 씻으라는 둥, 좀 쉬고 나서 씻겠다는 둥 실랑이하던 일.
결벽증도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다.

 

이런 나의 성향은 다엘에게 그대로 대물림 되었다.
들살이 갈 때마다 며칠 전부터
다엘은 고도의 스트레스 상태가 되곤 한다.
여행지에서 예민해진 나머지 잠들지 못하고
새벽까지 혼자 깨어 있었던 시간의 공포심이 너무도 컸던 것이다.

 

이번 여행 때도 마찬가지.
5학년이 되어 좀 덜할 만도 하건만 불안은 그대로였다.
결국은 뉴질랜드에서 보내온 허브 성분의 천연 신경안정제까지 챙겨주었다.
그래서인지 플라시보 효과인지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밤에 눕자마자 5분만에 잠이 드는 쾌거를 이뤘단다.
괜히 무서워했다며 자신감까지 보일 때는
그렇게 불안해 하면서 나를 들볶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들살이에서 돌아온 다음날, 다엘과 시내에 나갈 일이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다엘은 신설동의 일명 ‘유령 승강장(승객이 이용 않는 폐역)’을
방문하고 싶다고 나를 졸랐다.
피곤해서 싫다고 했더니 혼자서라도 다녀오겠단다.
나하고 헤어져 신설동까지 찾아간 다엘은
역무원과 얘기 끝에 유령 승강장을 구경하는 데 성공했다.
홀로 전철을 타고 목표 달성을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멀리서 혼자 찾아왔다는 다엘의 말에
역무원 아저씨도 기특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이런 다엘의 모습을 예견할 수 있었던 일이 기억난다.
2년 전, 별내에 있는 중앙119구조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다엘의 방학숙제 중 자신이 궁금한 주제에 대해 알아오기 위해서였다.

헬리콥터 조종사의 안내에 따라
우리나라에 한 대밖에 없는 초대형 헬리콥터 (길이 20M, 높이 5M)를 구경하면서
진심 어린 환대를 받았다.
여러 질문을 하고 설명을 들은 후, 다엘은 조종석에 타는 영광까지 누렸다.

 

다엘헬기.jpg » 중앙 119구조대를 방문하여 조종사 아저씨의 설명을 듣는 다엘

조종사의 섬세하고 조심스런 모습을 보면서
왠지 그의 어린 시절이 다엘과 비슷했을 것 같아 질문을 했다.
“다엘이 불안이 많고 긴장을 잘 하는 편인데,
이런 성향이 이 직업에 도움이 되는 면은 없을까요?”

 

조종사의 답은 내 예상에 들어맞았다.
본인도 무척 겁 많은 소년이었고,
누나 넷에 막내로 할머니 손에 자랐다고 했다.
지금도 출동할 때 긴장이 되곤 하지만
사람을 구조하는 순간엔 용기가 난다는 것이다.
항공 직업에선 오히려 평소에 대담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큰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단다.
두려움이 많다는 건 세심하고 조심성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니
잘 다스리면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날 나는 다엘의 미래를 조심스레 짐작해봤다.
지금 다엘이 가진 불안, 긴장, 두려움이 언젠가
큰 도약의 발판이 되리라고.

 

그때 예상했던 다엘의 도약기가 이제 눈 앞에 다가왔다.
이를 바라보는 내 심정은 정확하게 둘로 나눠진다.
자랑스럽고 기특하게 여기는 마음,
그리고 엄마 품을 벗어나는 아들을 보며 슬프고 두려운 마음.

 

엊그제 꿈에선 다엘을 자전거에 태우고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허전해서 뒤를 보니 다엘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이를 찾아 동네방네 울면서 헤매다가 잠에서 깼다.
 
다엘이 없는 3일 간 내 안의 두려움을
좀더 명확히 보았다.
이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새로운 용기가 시작될 것이다.
나의 기색을 살펴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일,
다엘의 두려움과 용기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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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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