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안 먹는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들고

성격이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들고

너무 별나고 활발해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들고

몸이나 마음이 불편한 아이를 키우면서 더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한 육아도 참 힘든데..


육아 현실에서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심각한 상황은

바로 '엄마가 아플 때'가 아닐까.

독감이나 몸살처럼 며칠 아픈 정도가 아니라,

장기간 입원을 해야 하거나 수술을 받게 되거나 하는..

이런 경우는, 아빠가 아플 때와는 차원이 다른 위급 상황이 되고 만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에는  '제발 내 몸이 크게 아프지 않기를..' 하고

엄마들은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가.


그런데, 이번 여름 시댁 동서가 갑자기 크게 다치는 일이 있었다.

5살, 9살 두 아이를 키우며 맞벌이를 하는 동서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지는 바람에 어깨 뼈에 금이 갈 만큼 다친 것이다.

사고가 난 뒤, 병원에서 기브스를 하고 한동안 직장을 쉴 수 밖에 없었는데

7월이 다 지나도 낫질 않아 결국,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을 끝내고 재활치료만 잘 받으면 팔을 원래대로 쓸 수 있다고 하니 다행스럽기는 했지만,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엄마가 수술을 위해 입원하고 퇴원하기까지, 한달은 걸린다는데 그동안 아이들은 누가 돌볼까.

시동생은 일 땜에 아침 7시에 나가 밤 늦게서야 집으로 돌아오니,

평일은 단 하루도 휴가를 쉽게 내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결국, 2주는 시골 외할머니댁에서, 또 나머지 2주는 우리 시댁인

친할머니댁에서 아이들을 맡아주시기로 했다는 연락이 왔다.

동서가 기브스를 한 채(하필이면 오른팔;;) 아이들을 돌보며 힘들게 살림을 하던 7월 동안,

나는 한국 친정에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어 제대로 보러 가질 못했다.


그래서 동서가 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우리집에서 며칠만이라도 조카들을 돌봐주겠다고 했다.

아픈 엄마에게 가장 고마운 일은, 병문안 와 주는 것보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한 손길 더 보태주는 일일 것이다.

할머니께서도 정성껏 아이들을 돌봐주시겠지만, 우리집엔 할머니댁엔 없는 것이 둘이나 있다.

바로 우리 아이들! 

마침 여름방학도 막바지겠다, 신나고 멋진 추억을 만들어 볼까?

그렇게 해서 나는 8월의 마지막 며칠동안,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13살 딸 아래로, 9살, 7살, 5살 이 셋이 모두 아들..;;
이 넷과 함께 나의 지난 13년간의 육아스킬을 총동원해 며칠을 보내고 나니,
목은 쉬고, 온 몸이 쑤시고, 팔이 돌아가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베이비트리에 어떤 분이 조카들이 놀러와 '영혼이 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하셨는데

그런 상태가 장시간 지속되고 나면, 영혼이 털린 채로 지내는 것에 적응이 된다;;


가장 힘들었던 건, 우리 아들을 포함한 각각 두 살 터울의 남자 아이 셋이 어찌나 별난지,

집안팎을 휩쓸고 다니면서 난장판을 만들어 버리는 거였다.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또 셋이 이렇게 실컷 놀까, 싶어 그럴려니 하는데도

아이들이 놀면서 너무 흥분하는 탓에 다칠까봐 그게 젤 걱정이었다.

그렇게 놀아대니, 시도때도 없이 배가 고픈지 셋이 번갈아가며 부엌을 뒤졌다.

아침먹고 치우자마자, 피자 반죽을 얼른 해서 한판 구워내니

넷이서 눈깜짝할 새에 다 먹어치우는 거다;;

아니.. 이런. 조카들 온다고 이것저것 사서 냉장고를 꽉 채워놨는데

하루 지나고 나니 엄..써..;;

넷 키우는 어머니들, 식비는 괜찮으신가요?;;^^


DSCN5464.JPG


하루 세끼 다 만들어 먹이다가,

도저히 정말, 팔이 안 돌아가서 부엌일을 못하겠다 싶은 날은

단골 도시락집의 힘을 빌렸다. 다행히도 비교적 저렴한 연어구이 도시락을

네 아이가 만장일치로 좋아하는 바람에 한 끼는 또 잘 때웠다. 휴..;;


DSCN5467.JPG

먹을 거 챙기느라 정신없고,
흥분해서 안 자려는 아이들 재우느라 애먹고,
산더미같은 빨래 하느라 온 몸이 뻐근해도,
그래도 네 아이와 제일 재밌고 뜻깊게 보낸 시간은, 바로 텃밭에 간 날이었다.

DSCN5378.JPG

여름의 막바지에 들어선 텃밭은
아이들에게 하나의 커다란 자연도감 같았다.
마침, 조카 둘 모두 곤충에 너무 관심이 많았던 터라 지천에 살아 널뛰는 온갖 곤충들을
보고 잡고 관찰하며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육아프로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추사랑네처럼,
도쿄 도심 한복판에서 몇 십층이나 되는 높이의 아파트에 사는 조카들은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텃밭에서 보낸 이 하루가 젤 재밌었다고 두고두고 얘기하며
또 가고 싶어한단다.

텃밭 한 켠에 친 텐트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는
밭에 물을 주면서 그 물로 그대로 물놀이도 실컷 즐겼다.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깔깔깔.. 숨이 넘어가게 웃는 아이들 모습은
초록이 가득한 텃밭과 어우러져 이쁜 그림책 한 권 같았다.

물놀이가 끝난 다음엔 갓 따온 채소들과 준비해 온 고기를 구워서 점심으로 먹었는데
아이들이 집에 있을 때보다 2배는 더 잘 먹고 무척 행복해 보였다.
우리집 아이 둘만 텃밭에 데려올 때보다, 넷이 오니 훨씬 더 다양한 놀이를 하며 잘 노는 걸 보며
나도 집에서보다 잠시 마음이 쉬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좋았다.
형제들이 많은 장점이 이런 거구나..

DSCN5402.JPG

수술을 잘 끝내고 퇴원을 한 동서와 함께
조카들은 집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무엇보다 한달이나 할머니댁과 친척집을 전전한 두 아이가
아프지 않고 지내준 게 제일 다행스러웠다.
활달한 아이들이라 크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직 어린데 엄마아빠가 얼마나
보고싶었을까.. 다 지나고 나니 울거나 보채지 않고 잘 지내다 가 준게 고맙기만 하다.

DSCN5410.JPG

우리집에서 지내는 동안,
9살 큰조카의 가방에는 1학기 국어수학 복습문제집 한 권이 들어 있었다.
우리집 두 아이가 공부를 할 때 조카가 문제집 푸는 것도 같이 봐 주다가,
문제집 뒷면에 쓰인 메모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매일
정성껏
열심히 하자."
- 엄마가 -

병원에 입원하기 전, 기브스한 오른팔 대신 왼손으로 서툴게 쓴 동서의 글씨였다.
수술을 받으러 가면서도 아이의 공부와 긴 방학이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자기 몸이 아파도 아이가 더 걱정인 엄마의 마음..
가족 모두에게 쉽지 않은 한 달이었지만, 이젠 무사히 다들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네 아이와 며칠 지내다가
다시 두 아이의 부모로 돌아온 우리 부부는 서로 마주보며 말한다.
"둘 키우기가 이렇게 쉬운 줄 이제야 알았어."

네 아이 이상 키우는 부모님들,

조..존경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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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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