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절대 기러기가족으로 살아가지 말아요’라고 다짐을 했건만 둘째출산을 위해 어쩔수 없이 결단을 내렸다. 아내가 출산하고 산후조리까지 전주에서 하려면 적어도 두달이상 아내 없이 살아가야 한다. 아내 없이 살아가는 것이 과연 어떤 상황일까 가늠해보지 못하였다.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기러기아빠가 되었다고 하니 몇몇의 남자들은 “부럽다”, “땡큐네”라며 다들 짧은 멘트를 날렸으나 정작 나는 머릿속이 복잡하다. 샴쌍둥이로 몇 년간 살아오다 몸 한쪽이 분리된 느낌이랄까. 마침 서귀포 새집으로 이사오다보니 집만 덩그러니 남아있어 절간 같다.
혼자 안방에서 자려고 하니 거실에서 인기척이 들려서 밤에 문고리에다 옷을 걸어놓는다거나(옷이 떨어지면 누군가 침입했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기침소리를 크게 내어보기도 했다. 적막감이 두려움으로 변하지 않도록 나름의 조치를 한 것인데 집이 익숙해져도 외로움은 남는다.
TV를 마주하며 먹는 밥상을 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는 사람만이 아는 그 밥상을 다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찹찹했다. 특히, 밥상에 올라갈 반찬을 정리하는 일은 귀찮고 또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여성농민회에서 생활꾸러미를 신청하여 두부와 계란, 쌈채소, 반찬을 조달하다보니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
몇몇 기러기선배에게 물어보니 ‘가족과 함께여서 하지 못한 것을 이번 기회에 해보라’, ‘정 할 것이 없으면 둘째가 돌아왔을시 필요한 것들을 리스트로 만들어서 준비하라’, ‘너의 삶을 살아라’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결혼한지 햇수로 6년이 지나다보니 ‘나의 삶’=‘우리 가족의 삶’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늘 내 곁에는 아내와 딸아이 뽀뇨가 있었다. 가족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나니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한 사람이며 ‘뽀뇨아빠’이전에 누구였는지 한 참을 생각해내야 했다. ‘가족과 함께여서 하지 못한 일은 무엇일까’, ‘평소에 하고 싶었으나 제약을 받은 일은 또 무엇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답변을 하고 나니 ‘아빠’라는 존재가 어찌보면 속이 빈 강정같은 것일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재미없게 인생을 살았나 싶기도 하고 한 아이의 아빠로서 창피하기까지 하다. 결국 기러기아빠로서 선택한 소소한 미션은 ‘제주에 살면서 절대 해볼 수 없는 것’으로 정했다. 다소 유치할 수 있지만 ‘제주 게스트하우스 체험’을 하기로 한 것이다. ‘경비’가 적게 들면서도 ‘여행’의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것, 사람을 많이 만나다보면 ‘5년전 제주로 이주하는 것이 꿈이었던’ 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혼자서 즐기는 저녁. 차리고 먹는데까지 무려 1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