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7년만에 집들이를 하였다.

 

집을 사서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무슨 집들이냐며 아내가 핀잔을 주었지만

나는 집들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임대아파트이지만 꼭 해야 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마을 이장님과 술김에 약속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이장님은 그 전에 나에게 몇 번이나 집들이를 한번 하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1년 내내 그 이야기를 듣다가 들컥 수락한 이유는

이장님이 내 손을 꼭 잡으면서 하신 말씀이 내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뽀뇨아빠도 집들이 한번 하라게. 무릉리 사람 다 되었는데 동네 사람이 한명도 집에 안찾아오면 아내가 어떻게 생각하겠냐”

무릉리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감동해서인지

아내에게 뭔가 보여주어야 한다는 이장님 말에 설득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한라산 소주잔을 꺾으며 조합원들 앞에서 공식선언을 하였다.

 

“1월 달에 집들이 하겠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집들이 이야기를 꺼내놓았는데 역시나 예상했던 답변이 나왔다.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해요.”

 

이런 쿨한 아내의 대답에는 다음 문장이 생략되어 있다. 자기가 알아서.

 

아내의 시큰둥한 반응에는 7년전 신혼초에 내가 집들이 관련 사고를 친 경험도 작용한 듯하다.

집들이 한번 하라는 선배의 권유에 대학선후배들을 초대하게 되었는데

낡고 좁은 집에 전세로 들어가다보니 도저히 집들이를 하고 싶은 기분이 나질 않았다.

이미 전주에서 장모님이 음식준비를 도와주러 오셨는데 행사를 몇 시간 앞두고 취소하게 되었다.

바쁜 일 마다하고 상경하신 장모님께 죄송한 마음 뿐이었다.

쿨하게 오케이는 하지만 집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는 아내 눈치도 많이 보였다.

‘아내가 어떻게 생각하겠냐’의 이장님 말씀은 집들이 때문에 정반대의 결과를 낼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제주는 집들이를 하루 종일 한다.

전통적인 씨족 공동체가 아직 남아있는 제주이다보니 하루에 여러 그룹의 손님들을

각기 다른 시간에 집으로 초대하게 된다.

옛날 같으면 돼지도 잡고 큰 잔치를 치렀을 텐데 도심지는 많은 사람들이 뷔페음식을 부르게 되어

나 또한 뷔페식을 떠올리게 되었다.

 

동네 뷔페 음식을 부르자니 맛도 특색도 없을거라는 생각에 무릉외갓집을 도와주는 박소연 쉐프에게 부탁을 했다.

워낙에 바쁜 분이라 일정이 잘 맞지를 않았다. 동네 뷔페라도 불러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함께 모임을 하는 슬로푸드 제주 회원 몇 분이 도와주기로 했다.

 

두 번째 고민은 과연 몇 명이나 올까라는 점.

서귀포시에서 어떤 행사를 한다고 하면 제주시 사람들은 거의 오질 않는다.

차로 1시간도 안 되는 거리인데 막상 제주에 살다보면 차로 10분 거리의 신제주와 구제주거리도 멀게 느껴진다.

이 심리적 거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결국엔 직접 전화할 수 밖에 없었다. 일일이 전화하며 체크를 한 결과

마을, 동문모임 2개, 지역모임, 공부모임 그룹은 5개 시간으로 쪼개었고

개인 방문은 오후 1시부터로 조정하여 인원체크를 해보니 약 100명이었다. 

집들이 D-DAY.

 

아내와 전날부터 집청소를 하고 가구배치를 새로 하였다.

당일 아침에는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며 방마다 이름표를 붙이고

준비될 요리의 메뉴표를 붙이기 시작했다.

 

방이름은 ‘오션뷰 룸’, ‘가족 룸’, ‘자기소개 룸’으로 정했는데 아내가 우습다고 난리다.

드디어 9시, 모임 사람들이 음식재료를 싸들고와서 준비를 한다.

건강하고 맛좋은 요리를 내놓기 위해서 9시부터 시작시간인 11시까지 2시간 동안

우리 집은 3명의 요리사로 정신 없이 바빴다.

 

11시 오픈 시간.

무릉외갓집 동료와 ‘1미터 피자’로 유명한 피자굽는 돌하르방 장창언 쉐프가 집을 구경하고는

음식 맛을 보았다. 다들 집도 음식도 굿!

첫 손님을 시작으로 줄줄이 단체 손님과 가족 손님이 시간단위로 방문하였고

제주 분들은 흰봉투에 돈을 두둑히 넣어, 이주한 분들은 양손에 휴지와 선물들을 가득 들고 왔다.

그 중에는 제주의 돌을 세밀화로 그리는 문창배 화가의 바다작품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아침 9시 준비를 시작으로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모든 파티가 끝이 났다.

싫은 투 하나 없이 내 손님들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전했다.

하루 종일 열심히 손님을 치르고 마지막에 정산(?)을 하는데 선물도 가득, 남는 돈도 예상외로 두둑했다.

참석 손님 또한 아이들 포함해서 예상대로 였고 맛있는 음식도 조금 남아 모든 것이 풍족했다.

 

사람들 치르는 일을 하도 많이 하다보니 즐기면서 하게 되는데 귀차니즘 대마왕인 아내 또한 결혼 7년차가 되니

이제 그러려니 한다. 입주 딱 1년차에 집들이를, 그것도 임대아파트 집들이를 하게 되니

친구들이 2년, 3년 매년해야되는게 아니냐는 우스개소리도 하였는데 다들 즐길 수 있다면 뭐 대수인가 싶다.

 

‘아내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이장님의 제안에 따라 진행한 집들이,

정작 아내가 감동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집을 찾은 이장님과 마을형님, 형수님들께는

"아내가 집들이 한다고 하니까 정말 좋아하더라"라는 하얀 거짓말을 했는데

아내는 정작 "이장님은 여자 마음을 너무 모른다"는 말을 내게 하였다.

 

어쨌거나 100명이 넘는 분들이 우리 집을 찾아주었으니 10년간, 아니 남은 9년간은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9년이 지나선 9년 전 집들이를 기념하여 다시 집들이를 해야지.  

 

다시한번 우리 가족의 노고를 치하하며..

 

<9시부터 우리 집 주방은 불이 났다>

집들이1.jpg

 

<임대아파트이지만 나름 오션뷰>

집들이2.jpg

 

<문창배 작가의 작품 증정. 제주의 아름다운 돌을 세밀화로 담는 작가님이다>

집들이3.jpg

 

<여성분들이 특히 만족한 슬로푸드 집들이 뷔페>

집들이4.jpg

 

<마지막 마무리. 선물이 쌓였다. 맥주와 소주까지 협찬을 받아 집들이를 잘 치렀다>

집들이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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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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