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참 희한하다.

 

주말마다 태풍에, 큰 비에, 습한 날씨에 한 발자욱도 움직이질 못했다.

 100일을 넘긴 둘째 하나에, 창원에서 아기 보러 오신 엄마까지

5명의 대가족이다보니 한번 움직이기도 쉽지 않다.

여름동안 가족끼리 차를 타고 움직인 곳이라고는 모슬포 한의원에 보약을 지으러 간 것밖에 없다.

 

서귀포에 이사를 와서 몇 달을 혼자 지내다 가족들이 오니 하필 장마 기간과 겹쳐,

높은 습도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풍광이 아름답고 여유로우며 여름에 크게 덥지 않은 것까지 좋은데

동네 뒤쪽 고근산이 막아서 생긴다는 안개와 습함은 여름에 쪄죽을 듯한 더위의 제주시와 또 다른 고통이다.

 

또 한가지 아쉬움을 들자면 비교적 바다와 지면이 수평을 이루는 제주시와 달리

바다와 지면의 낙차가 커 해안절벽이 발달되어 있는 서귀포다 보니

아이들과 물놀이하기에 적당한 해수욕장이 없다.

중문해수욕장은 파도가 너무 센데다 모래가 거친 편이고

지역사람들이 많이 찾는 예래동의 논짓물은 동네 풀장에 가깝다.

얼마전 논짓물 축제때 뽀뇨와 함께 가서 물놀이를 한 적이 있는데

용천수 때문인지 늦여름이기 때문인지 물온도가 너무 차가웠다.

입술이 새파랗게 될 정도였는데 올해 처음으로 물놀이를 하는 뽀뇨는 어찌나 좋아하던지.

 

지난 여름엔 월정, 김녕, 이호, 함덕, 곽지까지 제주시의 온 해수욕장을 누비고 해지는 광경을 한참 감상하였다.

심지어는 밤늦게 야간 해수욕장 물놀이에 풍등구경, 캠핑까지 호사를 누렸는데

둘째를 얻고 서귀포로 이사 오고 나서는 쉽게 나갈 수도 없다.

 

며칠 전 대학시절 만난 정훈이형이 서귀포에 놀러와서 뽀뇨를 데리고 장거리 출타를 하였으나

시간당 300ml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주말나들이 시샘하는 이번 여름의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형이 멕시코 유타카에서 사온 수제 해먹을 동네 정자에 걸고 뽀뇨와 잠시 누워본 것 빼고는

비오는 날의 표선해수욕장과 조랑말박물관은 이렇다 할 감흥을 주지 못했다.

 

서귀포에서 어린이집 다니며 새로 친구들을 사귀고 있지만 조랑말박물관을 다녀온 뽀뇨가 내게 말을 건다.

 

“아빠, 유담이는 언제 만나. 나 유담이 보고 싶은데”.

 

조랑말박물관 옥상정원을 웃으며 함께 달린 것이 기억나는지 그날 저녁엔 뽀뇨가 꽤나 진지하게 친구를 찾았다.

 ‘뽀뇨가 친구가 보고 싶을 정도로 큰 건가’.

어릴 적 친구가 보고 싶은 마음에 울먹했던 기억이 겹치며 시간이 잘도 흘러감을,

여름이 무심히 가고 있음을 느낀다.

 

“생각해보니 제주시에 살 때가 좋았던 것 같아요”

 

얼마 전 아내와 대화하다가 듣게 된 이야기인데 서귀포의 매력을 발견하기엔 아직 이른 것 같다.

엉또폭포가 코 앞이다 보니 폭우가 내린 다음날 ‘엉또 터지는 광경’을 쉬이 볼 줄 알았는데

비가 오면 제주 최고의 명소가 되는지라 이마저도 줄을 서고 한참을 걸어서 봐야했다.

 

오늘 아침 출근하며 달리는 차속에서 가을냄새를 맡는다.

가장 뜨거웠던 황금의 시간, 여름을 이렇게 보내기가 아쉽지만 가을이면 또 어떠랴.

서귀포에서 사계절을 보내고 나면 살기 좋은 동네의 진면목을 알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올 여름 사진은 달랑 두컷, 정훈이 형이 가져다준 해먹과 논짓물에서>

해먹.jpg

뽀뇨와 찰칵.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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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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