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책가방을 정리하다가 카드 한 장이 나왔다. 붉은 색 바탕 카드에 빨강 색종이를 접어 만든 카네이션. 아홉 살 그것도 남자 아이에게 어버이날을 기대하는 게 아빠의 욕심이란 생각에 그냥 지나쳤지만 카드를 보는 순간 반가웠다. 카드가 반갑다는 건 어버이날을 기대한 내 욕심이 사라지지 않고 마음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욕심이라는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이었고, 아이에게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그 기대어린 생각은 마음 속 깊은 곳에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카네이션.JPG

카드 위에 놓인 카네이션을 보자 아이의 작은 손가락이 떠올랐다. 아직까지 살림과 육아에 적응 중인 아빠 때문에 아이는 준비물을 스스로 챙기는데, 이날도 아빠는 아침 준비에 허겁지겁 할 때 집에 있는 색종이를 가방 속에 넣고 학교로 나섰을 테다. 카네이션 접는 법에 따라 스스로 작은 손가락을 구부리고 풀을 붙이며 카네이션을 하나씩 완성했을 아이의 손가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어렸을 때부터 조립식 장난감을 좋아했던 터라 아이는 손재주가 남달랐다. 카네이션을 자세히 보니 색종이 꽃잎 간격이 일정했고 정확히 좌우가 대칭을 이뤘다. 


 ‘어라, 카네이션이 두 송이네.’

 카네이션이 한 송이가 아니라 두 송이였다. 그리고 그 두 송이 카네이션 뒤엔 그 카네이션을 감싸고 있는 하트를 가져다 붙였다. 설마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병원의 과실로 갑자기 만 네 살 아이를 두고 엄마가 세상을 떠난지도 벌써 5년 째. 아이가 그 엄마 생각을 하며 카네이션을 하나가 아닌 두 송이를 만들었을까 란 생각을 하다 괜한 염려일 거라며 카드를 펼쳤다. 카드 한 면이 아이의 손글씨로 빽빽히 적혀 있었다.

편지.JPG 

아빠에게 

아빠, 엄마가 돌아가셨어도 꿋꿋히 저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때문에 직장도 그만뒀는데도 저를 잘 키워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잠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편지를 바라봤다. 평소에 밝게 웃는 얼굴 뒤로 숨었던 아이의 마음이 글씨에 묻어 나온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아이를 향한 기대가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었던 것처럼 민호도 민호가 모르는 사이에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아이 마음 속에 남아 있다가 글자로 나온 것만 같았다. 아이는 먼저 아빠를 다독였다. 아이는 엄마가 없지만 흔들리지 않고 육아에 전념한 아빠를 꿋꿋하다고 받아주었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리고 그 꿋꿋함이 자신을 잘 키워주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빠가 직장에 나가지 않은 채 집안에 머무는 이유도 육아 때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감사하는데 그냥 감사하는게 아니라 너무 감사하는 그 말이 아이에게 감사했다. 아이의 사랑해요 라는 말 앞에 나도 마음 속 깊이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걸었다. 


아이의 말과 행동에 좀더 관심을 기울였다. 어버이날인 5월 8일, 이른 나이에 상처를 한 아들을안타까워하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뵙고 늦은 밤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차 안에서 끝말잇기를 하거나 노래부르기 시합을 하곤 했는데 이 날은 노래 시합을 하자고 제안한 날이었다. 노래 시합을 하기 전 아이는 먼저 노래를 불렀다. 5월을 지나면서 아이 혼자 흥얼대던 노래,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던 아이의 노래가 귓가에 크게 들렸다. 집에 TV가 없지만 민호는 옛날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란 노래를 외우고 있었다. 은하철도 999. 마흔이 된 아빠에게도 어렴풋하게나마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는 만화영화여서 그 노랫말이 어떤지 가물했다. 아이가 먼저 제안을 했다. 

 “아빠, 은하철도 999를 부르기 시합하자. 세 번 틀리면 내가 이긴 거다.”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땡~”이라는 민호 목소리가 들렸다. 이내 세 번이 틀려 두 소절을 넘기지 못하자 아이는 자기가 가르쳐 주겠다며 노래를 불렀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로 시작하는 노래를 아이와 함께 따라 불렀다. 중간쯤 가다 가사를 모르는데 아이는 후렴부에 목소리를 키웠다. 

 “엄마 잃은 소년의 가슴엔 그리움이 솟아오르네, 힘차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아이 노랫말을 듣다가 그제야 <은하철도 999>의 줄거리가 떠올랐다. 그 만화 영화는 민호만한 어린 아이가 엄마를 여의고 시련을 맞서나가는 내용이었다. 민호가 2절을 부르겠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만화 영화 주제가에 2절까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2절 가사에선 ‘엄마잃은 소년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네’란 노랫말을 힘주어 불렀다. 노래를 부르고 난 뒤 아이는 그 노래가 요즈음 자기 마음에 든다고 했다. 


 노래를 듣고 있던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나는 타임머신이 있었으면 좋겠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거든.”

“타임 머신이 있으면 재미있겠다.”

“내가 타임 머신을 타면 엄마를 진료한 의사를 만나서 말해 줄거야. 제대로 약을 쓰라고 말이야.”

 아이가 타임머신을 타고 싶은 이유를 들었을 때 순간 잠시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하얗게 변한 머릿속엔 아이가 심심풀이로 그렸던 만화가 떠올랐다. 민호가 그린 그림이나 글 속엔 유독 ‘타임머신’이 많았다. 아이는 과학자가 되면 타임머신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그저 과학자가 꿈이겠거니 했지만 아이는 타임머신을 꼭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빈혈로 고생하던 엄마가 골수 이식을 받는 상황에서 병원측의 오판으로 잘못된 약을 처방을 받아 결국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저 어린 가슴에는 ‘타임머신’의 꿈을 갖게 했다. 


 0 “민호가 타임머신을 타고 싶구나. 민호가 엄마에게 제대로 된 약을 주라고 하려고.” 

 아이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훌쩍이는 울음이 뒷좌석에서 들려왔다. 

 “아빠~”

 “응~”

 “난 엄마 소리만 들어도 속이 상해.” 

 아이가 훌쩍이며 속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잠시 말을 멈추고 아이의 울음 소리에 흔들리는 가슴을 애써 부여 잡고 아이의 말을 들었다. 

 “우리 민호가 요즈음 많이 속상했나보구나.”

 아이의 울음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아빠~난 엄마의 이응 소리만 들어도 속상해.”

 결국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가정의 달인 5월. 민호는 가정의 달인 5월을 무척 속상해 했다. 그러고보면 5월이면 지난해에도 그리고 지지난해에도 아이는 시무룩했다.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어버이날이 가까워질수록 민호는 ‘엄마’란 단어를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들어야만 했다. 


 뒷거울로 민호를 보니 민호는 가녀린 팔로 눈물을 계속 닦아내고 있었다. 

 “딱 한 번만~” 

 아이는 딱 한 번만이라고 했다. 

 “딱 한 번만~”

 그 딱 한 번만이라는 목소리는 그때부터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딱 한 번만이라도 엄마를 만나고 싶어~”

 아홉살 아이는 그렇게 울면서 엄마를 불렀다. 민호 얼굴엔 눈물이 흘러 내렸고 아빠도 소리없이 가슴으로 울었다. 엄마를 향한 아이의 그리움이 절절히 가슴으로 전해졌다. 엄마 품에 안겨 한참 응석을 부려야 할 아홉 살 아이는 가정의 달인 5월에 딱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은 엄마를 울면서 찾았다. 


 뒷좌석에서 흘러내리는 아이의 눈물에 침묵했다. 아이의 눈물을 외면하고 싶은 침묵이 아니라 흘러내려야 할 눈물을 아빠의 마음 속으로 받아내고 싶은 침묵이었다. 슬픔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슬픔은 견디어 내야만 것이니까. 눈물을 흘리는 아이에게 씩씩해져야 한다 라든가 용기를 내야 한다 라든가 남자가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는 말은 아이를 슬픔에 갇히게 한다. 슬픔은 충분히 슬퍼했을 때에만 비로소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 슬픔을 마주하지 못한 채 피하거나 억누를 경우 그 슬픔은 그 사람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민호가 슬픔을 견디어 내고 스스로 일어서게 하기 위해서라도 아이의 슬픔 앞에서 아빠는 흔들리지 않고 그 슬픔을 받아주어야만 했다. 민호에게 말을 걸었다. 

 “민호야 많이 속상했지? 아빠도 엄마가 보고 싶어서 매일밤 울었어.”

 사실 그랬다. 심리상담교수가 나에게 눈물과 슬픔을 절대로 참아선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아이를 재워놓고 혼자 남았던 밤이면 <지금 꼭 안아줄 것>이란 글을 쓰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빠도 엄마를 무척 보고 싶어했으면 민호보다 더 많이 울었다는 말을 듣자 아이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진짜야~?”

 “응. 그럼. 거의 매일밤” 

 아이가 흘리는 눈물을 창피해하거나 억누르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빠의 지난 슬픔을 담담히 들려줬다. 자신만 슬픈 게 아니라 아빠도 슬퍼했다는 사실을 들으며 아이는 오히려 조금씩 슬픈 목소리에서 벗어났다. 


차에서 내리는 아이를 안으며 물었다. 

 “민호야 엄마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줄까?”

 민호는 뻥~이라며 그런 일은 없다고 답했다. 

 “민호야 너가 정말 보고 싶으며 엄마가 꿈에 나타날 거야.”

 자기는 꿈을 꾸지 않는다면서 아빠가 한 제안을 가볍게 거절했다. 집안에 들어선 뒤 가볍게 씻은 뒤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웠다. 아이가 한층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하늘 나라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겠지?”

 “그러겠지. 육아 걱정 살림 걱정 없이 맛있는 거 많이 먹으면서 실컷 놀고 있겠지.”

 어둠 속에서 아이의 미소가 보였다. 

 “엄마는 하늘 나라에서 놀라고 하고, 아빠는 민호랑 재미있게 놀아야지.”

 모처럼 아들을 꼭 안은 채 잠을 재웠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 “부정적 감정이 완전히 표현되면 뒤이어 성장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 감정이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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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만들고 다듬느라 35년을 흘려보냈다. 아내와 사별하고 나니 수식어에 가려진 내 이름이 보였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기자 생활을 접고 아이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미뤄둔 사랑의 의미도 찾고 싶었다. 경험만으로는 그 의미를 찾을 자신이 없어 마흔에 상담심리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금 꼭 안아줄 것' '나의 안부를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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