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야, 니가 가까운 창원대에 갔더라면 좋았을텐데. 맥지기(괜히) 서울로 가서 얼굴도 자주 못 본다.”


엄마와 통화하다보면 늘상 듣는 말인데 멀리 서울로 갔던 나또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왜 나는 멀리 서울로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했을까. 누가 내 머릿속에 서울이라는 도시를 새겨 넣었을까. 평생을 태어난 마을에서 살고 농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부모님이 계셨는데도 말이다.

땅 한 평 물려받은 것이 없었던 부모님은 모든 것을 혼자서 일궈가면서도 한때는 어떻게든 이 지긋지긋한 마을과 농업을 떠나려고 했다. 아버지는 힘이 부치셨는지 환갑을 넘기고는 멀리 하늘나라로 떠나셨고 엄마는 홀로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중학교때 부모직업란에는 농사대신, 장사도 아닌 상업을 써놓았고 초졸과 중퇴인 학력란도 고졸로 표기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도와 단감을 수확하고 감나무 껍질을 벗기고 나뭇가지를 모으고 가을엔 단감을 비닐에 넣어 저온창고에 저장하고 겨울엔 저장한 단감을 서울 청과시장에 올려보냈다. 그 과정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의 노동력이란.. 땀 흘려 일하면서도 수 년간은 큰 손해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간혹 목돈을 만졌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부모님의 일이었고, 부모님은 공부를 위해 내가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일찍 나가길 바랬고 그 뜻대로 나는 일찍 도시생활을 시작했다.


대학교육을 위해 다시 대도시로 떠난 후 하숙과 자취생활을 전전하다가 군입대를 계기로 잠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 잠시 탈서울을 했던 경험이 지금 제주생활의 큰 밑거름이 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산다는 것, 물가가 비싼 곳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의 어려움이 IMF이후 물밀 듯이 밀려왔을 때 생활이 어렵긴 했지만 사실 더 큰 어려움은 다른 곳에 있었다. 뚜렷한 목표 없이 그냥 남들이 가니까 따라온 서울에서 길을 잃었고 20대 내내 방황으로 보냈다.

30대 초반을 넘어서는 행복을 찾아 제주로 오게 되었고 생각지도 않게 농업관련 일을 하게 되었다. 마을에서 일하며 농산물을 포장하고 대도시로 보내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하던 일이 떠올랐고 30년이 지난 후 돌고 돌아 다시 농촌으로 왔다는 생각에 다소 의기소침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귀농을 하고 귀촌을 하지만 나는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고 농촌을 떠나는 것이 숙명처럼 받아들여졌기에 되돌아 와 평생의 업으로 여긴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30년이 지나 과거의 일을 챗바퀴 돌 듯 다시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혹여 내 아이도 나의 영향을 받지 않을까 싶고 그런 생각이 드니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나는 과연 지난 30년 동안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 내 삶이 과연 행복해졌는가, 나는 이 일을 계속 잘 할수 있을까. 내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일까. 생각이 많아졌을 때 대산농촌재단의 미래가 있는 농촌, 지속가능한 농업에 대한 해외연수 공고를 보았고 지난 5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다녀왔다.


환경과 사회구조가 전혀 다른 나라의 농부와 농촌을 경험하며 우리 농촌과 단순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몇 가지 부러운 부분이 있었다. 농부가 1%인 나라다 보니 농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농부가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정책적인 지원과 배려가 있었다. 수 백개의 직업에 마이스터가 있듯이 농업도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마이스터제가 있고 초심자는 마이스터를 롤모델로 자신의 기술을 심화시킨다. 누구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농지가 있고 농업학교를 나와 농부자격증을 가진 사람만이 농부가 될 수 있다.

부모가 농사를 짓고 농장이 있다면 자식 중 한명은 큰 고민 없이 부모를 이을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는 도시 근로자의 임금수준과 농민의 소득이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교통이 불편한 곳, 혹은 농사를 짓기에 불리한 지역은 수준에 맞게 보조금을 더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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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괴리스리드 마을에서 만난 초등학교 아이들> 


오지라 하더라도 아이들 교육에 어려움이 없도록,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더 이상 떠나가지 않도록 민간과 공공이 협력하다 보니 우리가 방문한 독일의 시골마을은 유치원생이 100명이나 유지되고 있었다. 그들은 지역민들이 행복한 개발을 위해 국제적인 연대도 서슴치 않았다. 아이들이 있는 작은 마을이 있고 인근에 작은 소도시가 있으며 그 도시와 마을에는 작지만 기술력이 있는 소기업들이 있다보니 굳이 자신의 지역을 떠나 멀리 BMW 본사가 있는 뮌헨에 갈 필요가 없고 불필요한 대학공부를 할 필요도 없다. 어릴 때 부모를 떠날 일도 없고 떠나야 한다면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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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만난 농민비석. 연수 지도교수님의 설명에 숙연해졌다>


독일 람사우, 오스트리아 티롤에서 잠시 들른 마을 교회에는 수 많은 비석이 있었는데 그 비석에는 주인의 이름과 그가 생전에 씨를 뿌리던 모습, 그가 기른 작물이 새겨져 있었다. 아버지 직업을 상업으로 고쳐써야만 했던 내 어린 마음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비석 앞에는 잘 가꾸어지고 있는 꽃들이 작은 정원과 같았고 인근에 사는 자식들은 자주 교회에 들러 부모의 묘지를 가꾸며 돌아가신 이와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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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농가의 이 두 아이중 하나는 아버지의 농업을 이을 것이다. 독일 농촌의 아이들은 3살때부터 아빠 트랙터를 타고 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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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흔한 장난감 총이 없는 렌농가의 놀이터. 아이들이 주로 농업관련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부모와 단절하는 삶. 부모의 힘든 노동을 못 본 척 외면하고 도시로 떠나온 삶이 먼 외국에서 마주친 정반대의 풍경에 거울처럼 비춰졌다. 그래서 나는 부모를 떠나 더 행복해졌는가. 결과적으로 보자면 나는 나와 내 가족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또 다하고 있다. 부모와 단절하는 삶을 선택하였으나 어떤 식으로든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어떤 부분을 이을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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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키우는 관광농원을 방문했는데 어린아이가 말을 어찌나 잘 다루는지. 베테랑이었다>

 

먹고사니즘에서 조금 나아가 저녁이 있는 삶을 찾으려는 것도 치열한 삶을 살았던 부모의 삶을 반추하면서 계승한 것이고 현재 1차산업 분야의 먹을 거리를 넘어 볼 거리, 누릴 거리를 찾아 나선 것도 부모를 잇되 조금은 달라진 나를 찾아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연수를 다녀온 후 1차 산업분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 중인데 나만의 숲을 만들고 가꾸는 일을 하고 싶다. 오래오래 할 수 있는 건강한 일이 남들이 보아서도 아름다웠으면 좋겠고 이를 통해 생계도 해결되면 좋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벌 키우기에도 관심이 가고 정원가꾸기에도 관심이 가서 책도 찾아보고 사람들도 만나 공부하고 있다. 짧은 연수였지만 살아있는 내내 기억하기 위해 수 많은 기고와 공유회를 하였고 아마도 이 에너지를 통해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것 같다. 내 저녁이 있는 삶은 나무와 꽃이 늘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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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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