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번 꼭 참석하는 정원공부모임이 있다. 수요일 저녁에는 이론공부, 토요일엔 하루 종일 실습과 현장학습을 하게 되는데 가끔 우리 아이 둘이 함께 간다. 토요일엔 야외학습이라 큰 문제가 없는데 수요일엔 발표중심의 실내 학습 이다보니 아이들이 떠들까봐 신경 쓰인다.


장소를 제공해주시는 혜나서원 원장님 부부는 괜찮다고 이야기를 하시지만 나이 지긋한 분들이 다수다 보니 떠드는 소리가 공부에 방해될까봐 매번 조심하게 된다. 그럼 공부하는 걸 중단하거나 아이들을 아내에게 맡겨두는 방법도 있을 텐데 전자는 향후 먹고 살 거리에 대한 투자여서 안 되고 후자는 재택업무가 있는 아내에 대한 배려이기에 가급적이면 8살이 된 첫째만이라도 데려가려고 한다. 첫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아빠의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했던지라 잘 따라가고 또 좋아하는 편이다.


매달 한번 있는 독서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첫째. 구성원이 대여섯이고 지인중심의 젊은 사람들이기에 첫째랑 간간히 놀아주고 첫째의 애교에 웃음 지으며 넘어가는 편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아주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내게 딱히 어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첫째가 떠들어서 내가 난처할 때는 다음부터 절대로 모임에 데려가지 않을 거야라고 협박을 하거나 집에 가면서 OO 사줄게하고 회유하며 잠시 문제를 회피하게 되는데 다음 모임이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아이를 데려가게 된다.


이번 달 정원공부모임도 그러하였다. 집에서 출발할 때 첫째에게 신신당부하였다. “해솔아, 아빠가 모임 있는데 잠시 들릴 건데 절대 떠들면 안돼. 큰 소리를 내면 절대 안돼. 약속 꼭 지켜야 돼”, “아빠 당연하지”. 나는 첫째를 그렇게 철썩 같이 믿고 모임장소로 향했고 제사 지내고 오느라 아이를 며칠 만에 본 거여서 기분이 참 좋았더랬다. 잠시 시장에 장을 봐야 해서 멀리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선 딸아이 손을 잡고 수 백미터를 걸어갔는데 첫째도 기분이 좋은지 아빠랑 나랑 친구하는 거야하며 함께 노래도 신나게 불렀다.


혜나서원에 도착하니 곧 발표가 진행되었고 원장님 부부는 첫째가 온 것이 반가운지 맛있는 빵을 첫째에게 주셨다. 발표를 도울 일이 있어서 첫째를 얼른 서원 내부에 있는 작은 어린이 도서관에 두고 왔는데 5분이 지났을까.. 첫째가 발표자가 있는 앞쪽으로 오더니 내 귀에 속삭인다. “아빠, 나 저 아저씨가 손에 쥔 빨간 거 신기해. 한번 만져보고 싶어”. 학습용 레이져 포인트가 신기했나보다. 급히 아이를 데리고 다시 도서관으로 데려가서 책장의 책을 펼쳐놓고 나오려는데 아빠, 나 심심해. 놀아줘라고 한다. “해솔아, 오늘 아빠 말 잘 듣기로 했잖아. 빵이랑 먹고 잠시만 있어밖에선 김원범 원장님의 일본 정원 이야기가 들리는데 나는 계속 첫째와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 상황, 혹시나 실랑이 벌이는 소리가 밖에 모임사람들에게 들릴까봐 신경이 쓰였다. 짜증이 났다.


내가 꼭 듣고 싶은 모임이었는데 너무 욕심을 부른 건가’, ‘아이를 놓고 오자니 아내에게 미안하고 데려오자니 사람들에게 민폐인데다 내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 같고’,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앞으로 저녁 모임을 모두 포기해야 된단 말인가아이 돌보느라 내 공부를 포기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처연해졌다.


공부고 뭐고 어서 아이를 집에 데리고 가야겠다 싶어 가자고 하니 이제는 가기 싫다는 첫째. “아빠 화낸다하며 협박을 하니 나도 화났어하며 버티는 첫째,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큰 소리를 내면 안되어서 최대한 내가 화난 것을 얼굴로 표현하고 싶었다) 겨우 서원에서 데리고 나왔다. 화가 나서 먼저 계단을 내려와서 건물 밖에서 기다리는데 아빠가 화가 난게 겁이 난건지 천천히 따라온다.


해솔아, 빨리 와. 집에 가게”. 멀찌감치 떨어져서 천천히 따라온다. 아빠가 안보여야 빨리 따라올까 하고 건물 뒤편에 숨었는데 잠시 따라오더니 다시 보이지 않는다. 순간 또 화가 나서 아빠 이제는 먼저 갈거야. 너 안 따라 오면 혼자서 와야 돼큰 소리를 치고는 다시 속도를 내어 코너를 돌아 한참을 기다렸다. 하나.. .. .. 숫자를 세며 아이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숫자가 높아갈수록 열은 받고 딸아이와 연애하며 싸우는 것도 아닌데 기가 차다가도 한편으로 코웃음이 났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닌가 싶다가도 아이가 오기를 버티며 기다렸더니 빼쪼로미 모습을 드러낸 딸아이.


백 미터 거리를 두고 걷다가 따라오나 되돌아 보면 가만히 멈추고, 또 걷다가 따라오나 되돌아보면 가만히 멈추고..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시장통닭집에서 치킨을 한 마리 사고서야 둘의 마음이 조금 풀렸다.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며 해솔아, 아빠가 너무 화가 났어라고 하니 나도 너무 화가 나라고 맞받아치고 너는 왜 화가 났는데. 아빠랑 조용히 하기로 약속했지”, “아빠가 화를 내서 내가 화가 난거야”. 이러다가 또 싸울까 싶어서 해솔아, 아빠가 아까 너무 화가 나서 너를 한 대 때리고 싶었는데 그러면 너도 아프고 아빠도 마음이 아플 거 같아서 참았다라고 하니 첫째가 마음이 풀렸는지 아빠 우리 낱말잇기 할까하며 화제를 돌린다. 며칠 만에 봐서 기쁜 나머지 손잡고 노래 부르며 모임으로 향했던 우리, 되돌아 올 땐 크게 싸운 애인처럼 백 미터 떨어져 되돌아왔다. 금방 풀리긴 했지만. 연애할 때 감정소모가 많아 힘들었는데 아이 키울 때가 연애할 때나 매 한가지. 울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언제 싸웠냐는듯 딸아이가 해준 장미타투를 붙이고선 정원모임에 참석했다> 

  장미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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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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