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 5개조 선언문
1조는 '상의해서 결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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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혼을 통해 평생의 친구이자 조언자, 삶의 공동기획자를 만났다. 결혼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우리는 단짝임을 세상에 공표했으니 기획 단계부터 남달랐다. 먼저 식장에 온 하객들에게 공표할 선언문 5개 조항을 만들었다.

‘1조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상의해서 결정한다’와 같이 지극히 평범한 조항들이었지만 부부될 사람이 함께 만든다는 아기자기함이 좋았다. ‘반드시 밤 12시 전에 귀가한다’라는 3조에서는 약간의 신경전이 있었지만 말이다.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가 함께 서서 하객을 맞이하고 식장에 함께 걸어들어갔다. 딸아이를 염려하는 장인어른 편지가 주례선생님을 대신하고 사회는 신부의 친구인 여성분이 맡았다. 친구들의 덕담에서, 촬영, 노래 및 반주 거의 모든 역할을 나와 아내의 친구들이 도맡았다. 남들에 의해 끌려다니느라 정신없는 결혼식이 아니라 작더라도 우리가 직접 준비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둘의 철저한 동료의식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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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 상대방이 하는 일에 반드시 칭찬을 한다’라는 조항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내는 제주로 이주해 살아가는 남편의 꿈을 이루어 주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에 이주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남편의 꿈이나 용기보다는 아내의 칭찬과 격려, 그리고 아낌없는 지지였다. 또한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서로 존대말을 사용함으로써 ‘4조 아무리 크게 싸워도 각 방을 쓰지 않는다’는 조항도 잘 지켜오고 있다. 존중하는 말투를 쓰다 보니 헐뜯는 말,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화를 내기 전에 서로의 마음을 언어로 잘 전달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게 된 것이다. 마지막 2조는 아이가 생김으로써 더욱 중요하게 되었는데 아빠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조항이 아닐까 싶다. ‘청소와 요리, 장보기는 꼭 같이 한다’. 아이 보기와 일을 함께 하다보니 항상 정신없는 일상이지만, 아내와 서로의 시간을 확인하고 아이의 일을 상의하고 결정함으로써 아빠육아를 지속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 부부의 선언문. 이제 결혼 5년차 초짜 부부이고 선언문은 1시간도 안 되어 뚝딱 만들긴 했지만 우리 가정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특이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일상 수칙을 담고 있지만 함께 하겠다는 동료의식과 서로 존중하려는 마음이 살아있는 선언문을 만들었다.

이 수칙을 방송으로 보게 된 아빠들에게 제법 구박을 받고 있지만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고 세상에 전파할 만한 수칙이라면 구박도 달게 받아야 하지 않을까. 가족노벨상이 있다면 평화상은 우리 가족에서 주어지길.

홍창욱 pporco2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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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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