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3.jpg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까지 마을 조합에 나가 기타를 배운지 1년이 되었다.

기타를 배우는 일은 처녀적부터의 오랜 꿈이었는데 지난해에서야

마을에 좋은 기타모임이 생겨 함께 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큰 맘 먹고 좋은 기타도 구입해서 열심히 배우고 틈틈이 연습을 했더니

이젠 쉬운 코드로 된 노래는 나름 즐겁게 연주하며 노래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열세살, 아홉살, 여섯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평일 저녁 시간을 이용해

무언가를 배운다는 일은 챙겨야 하고 감수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게 많았다.

수요일이면 서둘러 저녁을 해서 아이들과 먹고 남편의 저녁상을 차려 놓고서야

집을 나올 수 있었다. 한동안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아이들만 집에 두고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기타 모임하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남편이 퇴근하는 길에

집으로 데려가곤 했다. 처음엔 재미있어 했지만 이렇게 오래 하다보니

나중에는 지루해하고 따라 오는 것을 싫어해서 또 고민을 해야 했다.

올해들어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막내가 일곱살이 되면서 조금씩

자기들끼리 있게 되었다.

한동안 이 문제로 남편과 갈등이 있었다.

중학생, 초등학생, 일곱살이라해도 아이들끼리만 저녁 시간에 집에

있게 되는 것을 남편이 염려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이들이 다 클때까지 기다렸다가 배우라고도 했다.

그 말에 나는 화를 냈다.

일주일에 하루, 저녁시간 두시간을 내어 배우고 싶은 것에 투자하기까지

13년이나 기다렸다. 나는 그 시간 내내 기다려온 것이다.

아이들이 다 클때라면 도대체 몇살이 되어야 하는가.

 

살아보니 배움이라는 것이 나만 마음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적당한 모임과 장소, 함께 배우고 싶은 사람들, 좋은 지도력이 맞아야

가능한 것이다.  마침 지난해에 마을에 이런 조건들이 맞아 기타모임이

생겼기에 어렵게 참여하게 된 것이다.

 

늘 늦게 퇴근하는 남편에게는 미안함 점이 많다.

20년을 직장에 다니고 있어도 여전히 새벽에 나가서 밤 늦게 돌아오는

남편의 일상엔 관심있는 모임에 나갈 여유도, 시간도 가능하지 않다.

그나마 집에 와서 아내가 차려주는 따듯한 저녁밥을 먹는 것이 큰 행복인

남편인데 수요일마다 미리 차려 놓은 밥을 먹게 하는 것도 미안하다.

아이들도 엄마가 없는 집에서 기껏 자기들끼리 영화나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 것도 마뜩치 않을 것이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애써가며 기타 모임에 참여해오고 있다.

나 때문에 남편도 아이들도 조금씩은 더 힘들어 지는 것을 감수하면서

애써온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람은 역할로만 살 수 없다. 의미있고 소중한 역할이라 해도 그렇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나는 내 자리를 사랑하고, 그 자리가 주는 역할에

최선을 다 해 왔다. 그러나 사람의 삶에는 해야 할 일 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일도 있어야 한다. 원하는 일을 위해 조금 더 노력하고

애써서 마련하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

좋아서 엄마가 되었고, 원해서 셋이나 낳았지만, 육아 때문에

기꺼이 직장도 그만두었지만 아내와 엄마로서의 자리 말고

나 자신으로서 하고 싶고, 원하는 일이 내게는 있다.

기타를 배우는 일도 그 중에 하나다.

내 자리에서 원하는 많은 일들을 다 할 수는 없지만 그 중에

하나라도 조금 애 써서 이룰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더 수고하고

노력하며 해보기를 원한다.

그런 노력과 시간이 나를 더 나답게 하고 더 힘나게 하고

더 사랑하게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릴때에는 많은 것을 희생해가며 아이들 곁을 지켰다.

마을에 사는 엄마들끼리 밤 늦게 맥주 한잔 하는 자리에 나간것도

손에 꼽을 정도로 가정에 최선을 다 했다. 나 혼자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

어울리거나 각종 모임에 참여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집을 비워야 하는 자리는 되도록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을 이용했다.

그 외에는 언제나 어디나 아이들과 함께 였고 대부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텃밭 농사를 지어가며 손이 많이 가는 단독주택에서

세 아이를 키워 올 수 있었다.

그런 시간을 보낸 후에 막내가 병설유치원에 들어가게된 후 부터 조금씩

내가 관심을 가진 일들에 시간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죽을때까지 내가 원하는 것은 늘 새로운 것을 배우며 사는 삶이다.

어떤 일이든지 설레이며 즐겁게 배울 수 있는 일이 내 일상에 있는 삶이다.

어른이라고 해서, 엄마라고 해서 배움이 끝난 존재일 리 없다.

학교 공부는 오래전에 마쳤을지 모르나 진짜 공부는 늘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배우고 싶은 것들이 늘어나고 배움에 진지해짐을 느낀다.

진짜 공부를 할 수 있는 나이야 말로 지금부터가 아닐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보아도 살아온 경험에서 쌓은 것들로 더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는

중년의 나이야 말로 공부와 배움에 진정으로 빠져들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여자로서, 엄마로서 두 딸들을 키우다보니 사회활동에 아직까지 남자들에

비해 편견과 제약이 많은 현실이 늘 아쉽다.

직장에 다니든, 전업주부이든 자기가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노력하고

애를 쓰고, 그것을 통해서 더 행복해지는 모습을 두 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지금은 엄마의 배움 때문에 조금 더 불편하고 아쉬울지 모르지만 이다음엔

그렇게 애쓴 엄마의 노력의 의미들을 이해할 날이 올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과 배움을 자기들의 삶에도 들여놓을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살림하고 애 키우며 사는 주부들이 자기 자신의 욕구를 잘 돌보고

매 순간 성장하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지켜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

육아의 힘겨움, 살림의 지난함을 쉽게 쇼핑과 수다로 풀기도 한다.

지나치지 않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내면의 풍요로움을

간직하며 살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무엇이든, 어쩐 것이든

나를 채우는 새로운 배움 말이다.

 

엄마의 공부.jpg

 

지난 금요일부터 역사 세미나에 참석 하게 되었다.

큰 아이 학교가 학생들 및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배움 연구소에서

마련한 두달짜리 세미나다.

매주 금요일 밤 일곱시 반부터 열시까지 학생들과 일반인들 40여명이 모여

역사 공부를 한다. 어려운 책도 같이 읽고, 서로가 살아온 개인의 역사도 나누어 가며

역사를 이루는 나 자신을 올바로 세워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모임이다.

열세살 아이들부터 60대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모둠을 만들어

책을 읽고 토론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데 그 진지함과 열성들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일반 학교는 물론 대학을 다닐때도 이런 세미나는 경험한 적이 없다.

나보다 30년 이상 어린 사람들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것과,  서로 다른

삶이야 말로 가장 귀한 교과서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자리다.

 

세미나에 집중하는 일은 엄청난 체력과 긴장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육체의

고단함을 넘어서는 정신적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아들의 학교에서 고등과정 학생들에게 이 세미나는 학업의 일환으로 필수과정이다.

언젠가는 아들과 함께 이 세미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 힘이 난다.

 

남편 혼자 저녁을 먹어야 하는 날이 이틀로 늘었지만 이번 공부는 남편도 적극 돕고 있다.

언젠가 아들의 배움이 될 과정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타를 즐겁게 배우고 늘 노래와 음악이 있는 일상을 사랑하는 만큼, 중요하고 소중한

공부가 있는 일상도 사랑하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나누고, 읽고, 배우는 시간에

마음을 다 할 생각이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나도 같이 자라고 싶다.

살아가는 내내 새로움에 열려 있고 아주 더디게라도, 아주 조금씩이라도

어제의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보다 이런 삶의 자세를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다.

나는 주부이고 아내이고 엄마이지만 결국은 늘 배우는 사람일 뿐이다.

그게 나다. 그게 나이고 싶다.

즐거운 일에도, 의미있는 일에도 몸과 마음을 내 주며 살아가는 삶

그런 삶에 최선을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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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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