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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일 주일에 한두 번 내 집에 오신다.

전철을 두 번이나 갈아 타고, 마을버스 시간을 놓치면 30분을 천천히 걸어서 온다.

다섯 딸 중에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서 제일 많은 아이를 키우고 있고, 마당과 텃밭이

있어 늘 일거리가 넘치는 딸이 나이기 때문이다.

글 쓴다, 읽어야 할 책이 있다, 학교 일이 있다, 하며 멀쩡히 집에서도 바쁜 딸 대신

엄마는 텃밭의 풀을 뽑고, 진작부터 영글어 있는 오이며 호박을 따고, 이런저런

일들을 부지런히 해주신다.

그리고 딸이 차려준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떤다.

텔레비전에서 본 이야기, 아빠랑 싸운 이야기, 전철에서 만난 어떤 사람 이야기,

그리고 나머지 네 딸들의 근황들 같은 것을 들려주신다.

가끔 나는 엄마를 모시고 시내에 나가거나 근처 맛집을 간다.

사 먹는 건 비싸다 하시지만 엄마는 참 좋아 하신다.

일흔하고도 다섯이 되었건만 아직도 아빠와 남동생의 밥을 챙겨야 하는 엄마에겐

이렇게 이따금 오는 딸집에서 점심을 대접받는 일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잘 안다.

그래서 귀찮기도 하고, 마땅한 찬거리가 없더라도 나는 이 일에 마음을 쓴다.

 

얼마 전엔 양주에 사는 쌍둥이가 우리집에 들르면서 엄마까지 같이 불렀다.

그녀는 늘 그렇듯이 엄마에게 드릴 것들을 잔뜩 챙겨서 나타났다.

얼린 생선이며 고기며 그녀 집에 넉넉히 생긴 것들을 친정 부모님께 드리려고

가져온 것이다.

오래 전 직장을 잃고 아주 적은 적금만 가지고 근근히 사시는 부모님께

다섯 딸들이 챙겨주는 식재료며, 용돈이며, 이런저런 물건들은 큰 도움이 된다.

딸들은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친정 살림을 돕는다.

 

그날은 엄마를 모시고 우리집 근처에 있는 정원식 카페에 갔다.

매스컴에도 나왔다는 유명한 곳인데 숲을 끼고 있는, 넓고 잘 조성된 야외 정원과 실내 정원도

볼 만하고, 쾌적하고 넓은 실내며 아기자기한 물건들로 가득한 가게며 우리 동네는 물론

가까운 인근 도시에서도 몰려드는 곳이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를 모시고 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내가 돈을 주고 커피나 차를 사 먹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집에서도 근처 가게에서 테이크해온 커피를 자주 마시는 쌍둥이는 이곳을 한번

와보더니 바로 "엄마 모시고 오면 좋아하시겠네" 했었다.

그렇구나... 엄마를 모시고 와야겠구나...

그래서 나선 발걸음이었다.

 

엄마는 역시나 아주 좋아하셨다.

"이런 곳이 다 있었네?" 하시며 놀라셨고, 이리저리 구경하시면서 "다음 번엔 아빠랑도

와야겠다" 하셨다. 보여주고 싶으신 것이다. 참 맘에 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주문해드린 커피 이름도 물어보셨다.

"카라멜 마끼야또야 엄마. 달달해서 젊은애들이 좋아하는 커피, 맛있지?"

"그러네. 달달하니 좋다" 엄마는 홀짝 홀짝 아껴 드셨다.

 

늘 모이면 화제가 끊이지 않는 유쾌한 쌍둥이 딸 수다에 자주 웃으셨고

쉼없이 주위를 둘러보며 이런 곳에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살펴 보셨다.

"정말 좋은 데가 많네" 하며 감탄도 하셨다.

그렇구나..., 엄마는 당신 힘으로 이런 곳은 절대 오실 수 없는 분이지.

차도 없고, 운전도 못 하시니 그저 전철로 갈 수 있는 곳이나 자식들이

데려가 주는 곳이어야 하는 것을...

 

맛있는 식당은 자주 모시고 갔지만 이런 카페에 모시고 온 적은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나는 조금 미안했다. 내게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엄마에겐 낱낱이

특별하고 귀한 경험인 것을 말이다.

무엇보다 온통 젊은 사람만 가득한 공간에 당신이 앉아 있다는 것이,

그런 곳을 딸들이 데려와 주었다는 것을 엄마는 몹시 흐뭇해 하셨다.

유명한 관광지며 여행지가 아니라 그냥 딸들의 일상에 들어와 있는

그런 장소라는 것이 엄마는 특별히 더 좋으셨던 것이다.

많이 늙은 당신을 딸들이 여전히 좋아하고, 어디든 같이 가고 싶어한다는 것이

더 기쁘셨으리라.

 

유니스의 정원.jpg

 

그날 엄마는 오래 오래 행복해 하셨다.

이쁜 정원 이곳 저곳을 천천히 걸으면서 일일이 감탄하고 칭찬하셨다.

등 하나, 꽃 한송이에도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다.

나는 천천히 엄마 뒤를 따르며 행복했다. 기뻤다.

 

최근에 다시 읽은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에는

영혼이 되어 자식들 곁을 찾은 엄마가 한 명 한 명에게 독백처럼 그들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이 있다.

위로 죽은 채 태어난 아이를 가슴에 묻고 마지막으로 낳은 딸이 넷째였다.

제일 마지막으로 낳은 아이라 양껏 젖도 물려보고 처음으로 유치원에도 보내보고

운동회 때도 가 볼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하는 엄마는 그 막내딸과의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대학생이던 딸이 시위 현장에 자신을 데리고 가 준 것을 꼽는다.

 

아이 낳은 올케 미역국을 끓여야 한다는 엄마에게 외출복을 갈아입게 하고

'그냥 엄마랑 함께 가고 싶어 그래. 함께 가' 하며 이끈 곳은 분신한 대학생의 장례가

있던 시위현장이었다.

시골에서 학교 문턱도 넘어보지 못했던 엄마는 딸을 따라 시위대를 따라 시청앞까지

행진을 하게 된다.

 

'얘야, 너는 그렇게 내게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겨준 사람이었다. 네가 내 손을 잡고

걸으며 부르는 노래를, 그 수많은 인파가 약속이나 한 듯 한목소리로 외치는 소리를,

나는 알아들을 수도, 따라하지도 못했다만 내가 광장이란 곳엘 나가본 건 그게 처음이었어.

나를 거기 데리고 간 네가 자랑스러웠고나.

네 입술이 그리 단정하고 네 목소리가 그리 단호했다는 것을 처음 느꼈네.

사랑하는 내 딸.. 너는 그걸 시작으로 내가 서울에 올 때면 나를 식구들 속에서 빼내

극장에도 데리고 가고, 헤드폰을 내 귀에 대주기도 했제. 아 서울에 광화문이란 곳이

있다는 거, 시청 앞이 있다는 거, 이 세상에 영화와 음악이  있다는 것을 너를 통해

알았구나.'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자주 울컥했다.

 

물론 우리 엄마는 영화도 자주 보시고 아빠와 여행도 자주 하시고, 전철을 타고

두 분이서 박물관이며 전시회도 가끔 가시며 사신다.

책에 나온 엄마와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책 속의 엄마가 느꼈을 그 행복감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시위현장에 늙은 엄마를 데리고 가는 것은 언뜻 효도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엄마를 감동시킨 것은 딸이 중요하게 여기는 곳에 자신을 데리고 갔다는

사실이고 딸이 몰두해 있는 사건과 정서에 엄마를 동행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세상을 열어 엄마를 초대했다는 것을 그녀는 안 것이다.

그게 고맙고 기뻤던 것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자주 내가 강의 나가는 곳에 엄마를 모시고 다녔다.

어린 아이들을 맡기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딸이 사람 앞에서 강의를 하는 모습을

자랑스러워 하고 그런 곳에 모시고 가서 당신을 소개하는 것을 엄마가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것을 평생 아쉬워 하셨던 엄마는 다섯 딸들이

모두 대학을 나오고, 어려운 책을 읽고,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고, 무슨 무슨 직함을

맡고, 먼 나라를 여행하는 모든 것들을 당신이 이룬 것 처럼 기뻐하고 좋아하신다.

당신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공기를 딸들이 전해줄 때마다

엄마는 행복해 하셨다.

 

그리고 이젠 당신보다 훨씬 넉넉하게 살고 있는 딸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나누어 주는 것을

기뻐하신다. 같이 쇼핑을 하고, 거리를 걸으며 옷가게를 구경하고, 새로 오픈한 가게들을

구경하고, 멋진 카페에도 앉아 보고 딸들이 일하는 곳을 데려가고, 관심을 기울이는

장소들을 모시고 가는 것들 말이다.

안산 세월호 분향소에도 왜 엄마를 한번 모시고 갈 생각을 못 했을까.

내 새 책이 나오면 대형 서점에도 모시고 가야지.

아이스크림 전문점이나 이쁜 악세사리 가게같은 곳들도 좋겠다.

패스트푸드점에 엄마랑 같이 앉아 감자튀김을 먹으며 수다 떠는 일도 좋겠다.

노래방에 가면 엄마는 엄마는 무슨 노래를 부르실까. 갑자기 엄마랑 같이

하고 싶은 일들이 늘어난다.

내겐 대수롭지 않은 모든 일들이 엄마에겐 특별할 테니 내 시간과 내 관심을

좀 더 엄마와 나누고 싶다.

아빠는 친구도 많고 부르는 곳도 많아 수시로 외출을 하신다.

노래방에도 가고, 술도 한잔 하시고, 이런 저런 곳을 다니신다.

자식들 집 말고는 평생 친구 하나 없이 식구들 뒷바라지로 사셨던 엄마는

갈 곳이 없다. 그래서 딸들이 더 살뜰히 챙기게 된다.

 

엄마..

건강하세요.

지금도 여전히 제게 큰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되주셔서 감사해요.

엄마가 이끌어 준 내 세상에 이젠 내가 더 많이 초대할께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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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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