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생일은 6월이다.
우리 가족의 축하는 마당에서 고기를 구우며 앵두를 얹은 케익이 빠지지 않는다.
가족의 축하 외에 학교에서 받는 성대한 축하도 있다.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선생님과 모든 학생들이 편지를 써 주는 전통이 있는
학교답게 아들은 올해도 가방 가득 축하 편지를 넣고 집으로 왔다.
초, 중, 고 통합 대안학교다보니 아직 한글이 서툰 여덦살 아이부터 어른보다
더 글을 잘 쓰는 열아홉살 선배들에 이르기까지 40여명에 이르는 학생들과
대부분 30대인 젊은 선생님들이 써 주신 다양한 편지들이 그득했다.
"이거, 엄마가 읽어봐도 돼?"
"훗, 읽으세요"
아들은 은근 좋아하는 표정이다.
흠..
어떤 얘기들이 써 있을라나.. 한장 한장 열어보는 마음이 퍽이나 설레었다.
지난해 처음 이 학교에 입학한 후 맞이한 생일에서 받아온 편지들은 정말 감동이었다.
겨우 6개월 남짓 서로를 겪었을 뿐인데 아들을 바라보는 학우들과 교사들의 시선이
참으로 진지했고, 깊었기 때문이다.
부모 눈에는 늘 어설프고 도무지 성에 안 차는 아들을 도시에 있는 대안 학교에 보내놓고
이런 저런 노파심이 많았는데 편지마다 드러나는 아들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혹은 잘 몰랐던 의젓한 면들이 많았고, 아들이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어떤 학생으로 지내고
있는지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정말 많아서 기쁘고 벅찬 마음으로 편지들을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후 다시 1년이 지나는 동안 아들의 관계와 생활에서 어떤 변화와 성장이 있었는지
어떤 모습으로 새겨지고 있는지 궁금하고 기대가 되었다.
.
올해는 편지 외에 이런 카드가 잔뜩 들어 있었다.
선생님 한분이 학교 홈페이지를 모두 훑어가며 어렵게 찾아낸 아들의 웃는 얼굴
(사진에서 이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은 나도 보지 못했다)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희왕 카드를 패러디한 카드를 만들었다.
뒷면에는 '00이 공격력 - 나는 00의 이런 면이 좋다, 칸과 ' 수비력 - 나는 00에게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다'라는 내용을 적게 되어 있었다.
생일을 맞은 아이가 가진 긍정적인 면을 적고, 그 아래에 내가 그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을 적게 한 것이다. 아이들의 눈눞이에 맞추면서 서로 좋은 면들을 찾게 하는
멋진 아이디어다.
빙글빙글 웃어가며 말장난을 즐기는 아들의 모습을 좋게 보아준 선배는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술 한잔 사며 고민을 들어줄 수 있다고 적었다.
역사 세미나를 할때 아들이 정성을 들였던 면들을 기특하게 보아주신 선생님 한 분은
구부정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던 아들의 자세를 반듯하게 고치는 것을 도와주시겠단다.
카드마다 무심한 척 동생들을 잘 챙겨주는 모습이 고맙다거나, 툴툴거리면서도 결국은
도와달라는 부탁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이 이쁘다거나, 좋아하는 일에는 엄청난 집중과
열정을 보이는 면이 좋다는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놀라왔던 점은 아주 많은 편지와 카드의 내용에 아들이 영어를 잘 해서
부럽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영어시간에 척척 질문을 맞추는
모습이 멋지다는 등, 영어시험을 잘 봐서 부럽다는 등의 내용을 보고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내 아들이 영어를 잘 한다고???
아들은 초등대안학교를 다니면서 겨우 스펠링과 간단한 표현등을 익히는 기초정도의
실력만을 갖춘 수준으로 이 학교에 입학을 했다. 대안학교지만 글읽기와 쓰기,
영어, 수학 공부를 중요하게 여기는 학교라서 잘 따라가려나.. 걱정을 했는데
물론 수준별 수업을 받고는 있지만 제가 속한 그룹에서 아주 우수한 학생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언제부터인가 팝송을 줄줄 외워 흥얼거리고, 낮선 단어도 스펠링을 보며
그럭저럭 발음해 보는 등 아들의 영어는 확실히 큰 발전을 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보기에도 그런 것이다. 이거 참 놀라운 일이다.
영어를 잘 한다는 이야기도 반가왔지만 배움에 대한 자세랄까, 태도같은 것에도
적지않은 성장을 엿볼 수 있었다.
모르는 것은 꼭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끝까지 해결을 하려는 열의가 있다는 얘기
(고백하자면 내가 학창시절에 이런 학생은 절대 못 되었다)와
중요하고 필요한 일에 몰입할 줄 알고, 열심을 낼 줄 아는 자세도 인정받고 있었다.
이 두가지 얘기가 참 고마왔다. 대견했다.
계획표대로 하는 공부, 부모가 시키는 공부는 죽어도 안 하는 녀석이었다.
제 맘이 원하지 않으면 억지로 무언가를 하게 하는 일은 불가능한 아이였다.
그렇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은 그게 레고나 건담을 조립하는 일이거나
해리포터 스무 권을 독파하는 일이거나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빠져드는 아이였다.
그 엄청난 몰입과 집중력을 어떻게 하면 공부와 연관시킬 수 있을까.
제 마음이 움직여서 기꺼이 노력하게 하는 배움을 어떻게 이끌어 줄 수 있을까..
늘 그게 고민이었다.
야단도 쳐보고, 다그쳐도 보고, 하소연도 해 보고 읍소도 해 보았지만 다 소용없었다.
때가 오겠지.. 어떤 동기를 만나는 그런 때가..
혹은 내 아이에게서 그런 동기를 이끌어내주는 만남이... 계기가... 오겠지...
그런 생각으로 단념하고 살아온게 13년이었다.
아들은 혁신학교를 2년만에 뛰쳐나온 후 느슨한 초등 대안 학교를 다니며
실컷 놀고 책과 레고, 영화에 파묻혀 4녀을 보낸 후 도시의 중등 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로소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명랑하고 정 많은 선배들과 열정 넘치는 선생님들에게서 자극을 받았을 것이고
수준별 수업에서 자기보다 어린 후배들이 더 어려운 내용을 배우는 모습에
자존심도 건드려졌을 것이다. 새로운 면들을 보아주는 사람들 속에서 인정받고
싶고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고, 이윽고 그 마음은 강력한 동기가 되어
아들을 이끌고 있다.
숙제같은 것은 확인할 필요도 없이 기어코 해 가고, 뜬금없이 보여주는 시헙지엔
언제나 우수한 점수가 적혀있다. 이건 정말 기대와 상상 이상이다.
아들은 집에서는 여전한 천덕꾸러기다.
열다섯 살 사춘기 사내아이답게 게으르고, 움직이기 싫어하고, 부모의 휴대폰만
호시탐탐 노려가며 웹툰을 보려고 궁리하고, 컴퓨터 게임을 밥보다 더 먼저 챙기며
집안일을 돕는 일엔 시큰둥한 청소년이다. 주말의 절반은 낮잠으로 보내고
집밥보다 라면을 더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만 찾아대는 딱 열다섯 아이.
동생들과 유치한 일로 싸워대고, 기분이 나쁘면 엄마에게도 큰 소리로 대들고
가끔은 참을 수 없이 무례하게도 구는 사춘기 소년이지만 학교에서는
제가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주변을 잘 챙기고, 실력도 차근 차근 인정받고 있는
학생인 것이다.
아는 것이 많고 재능이 많은 아들에게 겸손함과 경계하는 마음을 차분하게 짚어주는
글들도 적지 않았다. 아들은 겸손과 경계라는 말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했다.
더 다듬어 나가야 할 부분까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1년에 한번 아들이 받아오는 생일 편지가 내겐 아들의 성적표다.
그 진솔한 글 속에는 아들의 성장과 발전, 여전히 애써야 하는 면들과
노력해야 하는 면들까지 정성스럽게 담겨 있다.
모든 글속에서 넘쳐나는 관심과 애정을 아들은 깊게 느낀다.
소중히 여긴다. 진심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다.
아들도 안다.
내가 청소년 시절에 이런 성적표를 받았더라면 내 삶은 어떻게 펼쳐졌을까.
이런 세심한 관심과 애정어린 조언과 격려를 받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체벌과 언어폭력이 난무하던 중, 고등학교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대입 시험에 매달렸던 내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아들의 지금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제 생일 편지를 보여준 그 밤에 아들은 그 다음날 생일인 친구를 위해
편지지 한장 가득 정성스런 편지를 적었다.
넘치게 받은 것은 반드시 흘러나오게 되어 있다.
충분히 채워지면 너그럽게 다시 돌려진다. 아들은 그 단순하고 뿌듯한
진리를 내게 보여준다.
엄마로서 내 한 해도 이런 발전과 성장이 있었을까.
내 성적표는 한 해의 제일 마지막 날에 아이들이 내게 주는 가족 상장에
담겨질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조금 더 노력하고 싶어진다.
나를 더 힘나게 하는 성적표, 나를 더 제대로 살게 하는 성적표..
이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진짜 성적표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된다.
애썼다. 고맙다.
잘 크고 있구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