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곳은 경남 하동이다.
위로 언니를 둔 나는 하동 섬진강 근처에 있던 작은 오두막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태어난지 100일 무렵 다른곳으로 이사했다고 하니 태어난 곳에 대한 기억이
있을리 없다.
그러나 엄마가 우리를 베고, 열달동안 이곳의 자연이 주는 기운을 받아
우리를 이루었을 것을 늘 잊지 못한다. 태어나 첫 공기를 빨아들인 곳..
내 생애 최초의 날들을 채운 곳에 대한 그리움이 항상 마음속에 있었다.
젊었던 날, 면허를 따서 작고 낡은 내 차를 갖게 되었을때 혼자서 하동과 섬진강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운전을 하게 되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내가 태어난 곳의 풍경을 보리라..
그런 마음을 품고 도로안내책을 들여다보며 차를 몰았다.
쓸쓸한 11월의 어느날이었다.
하동시내를 거쳐 섬진강가에 차를 세우고 넓고 아득한 그 모래밭을 내려다보며
하엾없이 앉아 있었다.
넓고 완만하게 흘러가는 강은 고요하게 빛났다. 그 강을 품고 있는
산들도 낮고 정답게 강가에 둘러앉아 있었다. 눈 닿는 곳 어디나 둥그렇게
부드럽고 따스했다.
내가 태어난 곳이구나.. 아... 좋은 곳이구나..
지금은 외롭고 쓸쓸하지만 언젠가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꼭 같이 와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강가에 앉아 있었다.
그 풍경을 마음에 늘 품고 있었다.
젊은 날은 고단했고 오래 외로왔지만 서른 넘어 만난 남편과 따듯한 가정을
이루었고 세 아이를 낳아 키워오는 동안 가족과 함께 하동 한 번 다녀올
기회가 쉽게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 해 5월, 아버님의 49제를 마친 후 애쓴 시댁 식구들과
순천에서 하루 묵으며 회포를 풀 일정이 생겼을때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하동으로 차를 몰았다. 섬진강을 보고 싶어하는 마누라의 마음을
알아준 것이다.
강가에 차를 세우고 강둑에 올라섰을때 한 눈에 보이는 섬진강의 풍경..
서른살때 혼자 왔던 날들로부터 18년 만이었다.
강물도, 모래밭도, 산들도 그대로였다. 여전히 곱고, 정답게 물길은
모래톱을 지나 흐르고 있었다. 눈물이 왈칵 나올 뻔 했다.
세 아이들은 강물에 발을 담그며 좋아했다.
"엄마, 여기가 엄마 태어난 곳이예요? 난 이곳이 맘에 들어요.
아주 예쁜 곳이잖아요" 막내는 웃었다.
아이들은 물수제비도 뜨고, 강바닥에서 재첩을 줍기도 했다.
이 풍경안에 그림같이 이쁜 내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게 행복했다.
아들이 남편과 내 사진을 찍어 주었다.
늦은 나이에 만나 가정을 이루고 세 아이를 낳아 살아오는 동안 남편은
쉰이 넘었고 머리엔 흰빛이 더 많다, 그러나 남편의 웃음은 한결같이 따듯하다.
여전히 너무 다르고, 자주 낮설고, 지금도 매 순간 새로 알아가는 사이지만
이 사람을 만나 살아온 15년은 매순간이 충만했다.
웃음도, 눈물도, 감동도, 감사도 가득했다. 좋은 시간이었다.
1박 2일 동안 펜션에서 시댁식구들과 왁자한 시간도 보냈고, 노고단을 넘어 지리산의
깊숙한 품에 안겨가며 좋은 경치도 많이 보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제일 좋았다고 꼽았던 순간은 함께 섬진강에서 보낸 시간들이었다.
그냥 아름다운 자연속에 안겨서 평화롭게 흘러가는 강물속을 철벅이며
걸어보고, 돌맹이도 던져보고, 애써 주웠던 재첩을 다시 돌려보내기도 하며
많이 웃고 얘기하던 그 시간들 말이다.
행복했던 순간은 몇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더 많은 풍경은 마음 깊이 새겨져있다.
또 다시 그 강가에 서게 될때는 아이들도 성큼 더 자라있을 것이다.
남편과 나는 조금 더 늙어있을 것이다.
그래도 정말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