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방학의 절정이다.
세 아이랑 티격태격 하며 하루를 같이 보내려면 나름의 요령들이 있어야 한다.
매년 겪는 일이라도 그때 그때 아이들 연령이 다르고, 맞닥뜨리는 상황들이
다르다보니 해마다 새로운 전략들이 필요하다.
전에는 방학하면 아이들과 늘어지게 자곤 했지만 이젠 그것도 옛말이다.
대안중학교 다니는 아들은 방학하자마자 3주간의 계절학교를 다니느라
방학을 안 한것과 같다. 그래서 아침 늦잠은 꿈도 못 꾼다.
큰 딸은 한 주에 3일은 방과후 프로그램 들으러 오전에 학교에 간다.
아들은 아침 일찍 가고, 큰 딸은 여유있게 나가다보니 일어나는 시간도
아침 밥 먹는 시간도 다 다르다.
그래서 아침은 대개 볶음밥을 준비한다.
계란에 그날 그날 다른 야채들 두서너가지 넣어 구운 김 부셔넣고
달달 볶는다.
전날 남은 반찬을 잘게 썰어 넣기도 하고 어설프게 조금씩 남은 채소들을
넣기도 한다. 어느것이나 잘게 썰어 넣으면 애들은 잘 먹는다.
아침에 볶음밥을 넉넉히 해 놓으면 일찍 나가는 아들 먼저 먹고
느즈막히 일어나는 두 딸들도 알아서 데워 먹는다.
아침밥은 식탁에서 먹지 않아도 된다.
볶음밥을 먹을만큼 덜어서 좋아하는 책 보며 아무데서나 먹는다.
방학때 만큼은 이 정도 자유, 서로 편하다.
단 자기가 먹은 그릇은 반드시 설거지해 놓아야 한다. 방학이라고 예외는 없다.
매주 한번씩 도서관에 가는 날은 서로 읽고 싶은 책을 넉넉히 빌리고
점심은 근처에 있는 단골 분식집에서 사 먹는다.
그 옆에 있는 단골 까페에서 달달한 핫초코와 천연발효 빵을 사 먹는 일도
아이들과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일이다.
작년 12월에 분양받은 블랙 리트리버 '해태'는 8개월로 접어든 비교적 어린 개지만
21키로나 나가는 큰 개다. 전 주인이 매일 몇 시간씩 산책을 시키며 사랑해주었단다.
그래서 우리도 매일 한시간씩 해태와 동네를 산책하고 있다.
가끔은 큰 아이 학교 가는 아침에 산길을 넘어 전철역까지 해태와 같이 걷기도 한다.
겨울엔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지기 쉬운데 해태 덕분에 꼬박 꼬박
걷다보니 아이들도 나도 몸이 많이 좋아졌다.
해태는 달리는 것도 좋아해서 아이들과 함께 자주 뛰기도 한다.
3월에 입학하는 막내의 첫 운동회에서 달리기 성적이 좋을 것 같아 내심 기대중이다.
아버님이 입원한 후로 남편은 퇴근길에 병원에 들렀다가 늦게서야 집에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저녁은 아이들하고만 먹는 일이 잦아졌다.
김장 김치 두어가지에 아이들 좋아하는 주 요리 하나 해서 먹는다.
오전 일정이 없는 일요일엔 아이들 모두 마음껏 늦잠을 자게 한다.
큰 아이는 오후 1시가 되야 일어난다.
주중에 고단하니 일주일에 하루쯤 마음껏 풀어져도 괜찮다.
긴 겨울방학엔 서로 좀 느긋하게, 느슨하게 보내려고 한다.
그래도 할 일은 넘치지만 덜 치우고, 집안일도 적당히 적당히 하면서 같이 많이 뒹굴고 웃고
함께 하는 시간은 많이 가진다.
주말엔 병원에 계신 할아버지를 방문한다.
매일 개들 밥 주고, 물 주고, 개똥 치우고 산책 시키는 것은 번갈아 하고
저녁 차리는 일도 한 사람씩 돕고 있다.
집에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싸우는 일도 늘었지만 그래도 또 손 내밀고
다시 뒹굴고 웃으며 지내고 있다.
내일이면 큰 아이도 5주간의 방학에 들어간다.
아직 아이들과 한 편의 영화도 같이 못 봤고, 좋아하는 장소도 가보지 못했다.
큰 아이와 두 딸들의 일정이 겹치게되면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 한가지씩
해 보려고 한다.
방학은 아직 길다.
올 겨울은 눈이 드믈어서 집 언덕에서 눈썰매를 타고 마당에서 눈싸움을 하는
즐거움은 아직 누리지 못하고 있다.
눈 때문에 고생하지않아서 좋긴 한데 겨울이 겨울답지 않은게 아쉽긴 한다.
아직 더 길게 남은 방학, 세 아이들과 새로운 추억들을 궁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