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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5학년 쯤 되면 슬슬 상급 대안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먼저 졸업한 선배들이 다니는 학교도 궁금해하고, 어쩌다 학교에 선배들이

놀러오면 물어보기도 하는데 얼마전에 올해 졸업한 남학생이 학교에

놀러왔길래 말을 걸었다.

 

"중학교 가니까 어때? 재미있어? 여자 친구는 만들었고?"

빙글빙글 웃으며 던지는 내 질문에 그 아이가 대답했다.

"여자친구 사귀면 안되요. 교칙 위반이예요."

"뭐라고?왜?"

"이성교제 금지가 교칙이거든요."

"왜 이성을 사귀면 안되는데?"

"아직 제대로 이성을 판단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렇대요.

정신과 마음이 올바로 성숙된 다음에 사귀어야

이혼같은 것도 줄일 수 있다고요."

"그렇게 정신과 마음이 올바로 성숙되는게 언젠대? 그 시기는 누가 정하는데?

심지어 어른들 중에도 정신과 마음이 성숙되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몰라요. 그렇대요. 연애를 해도 걸리지는 말래요"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은근히 그 학교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던 나는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이 문제를 열두살 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흥.. 말도 안되는대요?" 바로 이렇게 말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사람을 좋아하는건 사람 마음이잖아요. 마음이 좋다는데

그걸 규칙으로 어떻게 막아요. 금지한다고 막아질까요?

저라면 더 하고 싶을 것 같은데요?"

호오.. 역시 그렇구나.

 

"그러게 말야. 엄마도 니 생각에 동의해 이성을 사귀는데 적당한 나이라는 것을 누가 정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 다를텐데... 초등학생이라도 이성을 좋아하는 감정이 있을 수 있다고 보거든. 정신과 마음이 성숙한다는게 나이의 문제는 아니거든. 엄마 나이의 어른도 철딱서니 없는 사람들이

널렸는가 하면 어린 사람에게도 진심으로 고개 숙이고 배우게 되는 그런 사람들도 있는거니까..

사람의 감정을 교칙으로 얽매기 보다 자연스럽게 허용하고 제대로 사귈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해주며 지켜봐주는 게 더 좋은 교육 아닐까?"

"당연하죠"

"그래서 엄마는 니가 언제든 여자친구 사귀어도 상관없어.

다만 그런 고민이 있을 때 엄마라면 믿고 의논할 수 있다고 여겨주길 바래"

"그럴께요. 하지만 지금은 여자친구 없으니까 나중에 생겨서 고민이 되면

그때 의논드릴께요. "

 

우린 이렇게 훈훈한 대화를 마무리했다.

 

어른들은 쉽게 아이들의 생각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것은 어른들이 정하는 거니까, 너희들은 따르기만 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어쩌면 자기 생각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 이 시대 교육의 목적이 아닐까..

의문을 갖지 않는 아이들, 물어보지 않는 아이들, 시키는대로

정해주는 대로 순순히 따르는 아이들이어야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만드는게 쉬울테니까..

그런 아이들이 사실은 제일 위험한데 말이다.

 

세월호 사고를 지켜보면서 결심했다.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생각하라고, 행동하라고 강요하지 말아야지.

어른이 더 잘 안다고 무시하지 말아야지.

부딛치고 갈등이 생기더라도 자기 생각이 있는 아이로 키워야지..

더 많은 것에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고, 부모와 다르다 하더라도

들어주자고,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지..

 

그래서 나는 이성교제에 대한  아들의 의견에 한 표를 던진다.

공부 대신 이성에 더 관심이 먼저 뜨이고 열정을 퍼 부어도 어쩔 수 없지.

그럼 그 과정을 함께 걸어주는 것이 우리들의 공부가 될테지..

 

싸우고 큰 소리 나고 지지고 볶아도 '그래도 살아있으니까 이렇게 싸우는 거지..' 하며

마음을 다독이게 되는 이 지독한 세상에서 아들의 여자친구를 상상하며 설레는 것도

얼마나 큰 복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구나.

 

그러니까, 그러니까...아들아... 좋아하는 여자 생기면 엄마한테 꼭 얘기 해주기..

뭐... 얘기 안 해줘도 어쩔 수 없지만 그 생각을 하는데 왜 내가 먼저 설레는거니...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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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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