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초.jpg


강릉에 다녀왔다.

24년만의 폭설로 1미터가 넘는 눈이 내려 일주일 넘게 도시 기능이 마비되어 있는 상태였다.

우리 동네엔 봄기운이 만연한데 대관령 넘어 강릉엔 그렇게 눈이 많이 왔다니 텔레비젼을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남들처럼 맘 편하게 눈구경만 할 수 가 없었다.

그곳에 늙으신 아버님이 홀로 계시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에 시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후 아버님은 한동안 세 아들 집을 번갈아

다니며 지내셨다. 막내 아들네가 제일 편해서 가장 오래 있기는 했지만

오래 미루었던 이빨 치료가 끝나자마자 강릉으로 내려가셨다.

당신이 태어나시고 평생 살아오신 당신 집이 제일 편하셨던 것이다.

아무리 며느리들이 끼니때마다 따듯한 밥을 차려드리고 잘 모신다 해도

허물없이 드나드는 친구들이 있고, 단골 식당이 있고, 익숙한 거리와 사람들과

무엇보다 당신이 지으시고 어머님과 내내 둘이 사셨던 당신 집이 있는 강릉이

제일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혼전에 노인복지회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나는 자녀들의 편의에 따라

어르신을 갑자기 도시로 모시고 오는 일이 어르신들께 가장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시골에 홀로 계시는 어르신을 보살피고 돌보는 일이

힘들어서 당장은 자식 곁으로 모시고 오는 것이 효도같지만 어르신 입장에선

평생 뿌리를 내리고 있는 당신의 공간을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나게 되면

도시의 아파트 안에서 마음과 몸 둘 곳을 잃고 시들어 가기 마련이다.

시골에선 그렇게 부지런하고 총명하셨던 어르신들이 자식 따라 도시의 아파트로

온 후 갑자기 치매가 오고 병이 찾아오는 예를 무수히 봐 왔었다.

되도록 어르신이 사시는 곳을 떠나지 않고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고 여겼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상황이 내 일이 되어 버렸다.

어머님은 돌아가셨고, 자식들은 모두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상황에서

아버님은 강릉 본가에서 홀로 지내실 것을 선택하신 것이다.

구정을 마치고 올라오기 전에 세 며느리들은 아버님 지내실 공간을 말끔히

치워 드리고 당분간 드실 반찬을 마련해 냉장고를 채워 놓고서도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모두 눈물바람을 하며 강릉을 떠나왔다.

그런데 바로 폭설이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님은 눈 때문에 8일이나 바깥 출입을 하지 못한체 집 안에서만

지내시고 계신 상태였다. 설 쇠고 올라온지 2주밖에 안 되었지만

나는 다시 강릉을 다녀오기로 했다. 누군가는 아버님을 살피고 와야

할 것 같았다.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 강릉으로 떠난 것이 토요일이었다.

강릉 톨게이트를 빠져 나오자마자 길가에 눈 장벽이 쌓여 있었다.

1미터 넘게 내린 눈을 길가로 밀어낸 것이 마치 눈으로 만든 벽 처럼 서 있었다.

아버님 집으로 이어진 골목길은 눈 사이로 사람 하나 들어갈 만큼만 길이 나 있었다.

그나마도 군인들이 내 준 길이라고 했다.

아버님은 눈으로 쌓여있는 집에서 지내시면서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로

끼니를 해결해 오신 듯 했다.


떡국.jpg


부엌에 들어가보니  아마도 아침으로 드셨을 떡국이 식어 있었다.

며느리들이 설에 넉넉하게 끓여서 냉동실에 얼려 두고간 쇠고기 무국을 데워

떡 한 줌 넣고 끓여 드신 듯 했다.

냉장고를 살펴보니 며느리들이 만들어 놓고 간 반찬들도 거의 줄지 않았다.

전기 밥솥에 밥을 하고 국만 데워 드신 모양인에 국 한 봉지를 데우면

그걸로 하루, 이틀을 드신 모양이었다.

아침 저녁은 집에서 간단하게 해결하고 점심은 주로 밖에 나가서

친구분들이나 단골 식당에서 따끈한 음식을 드시곤 하셨는데

눈 때문에 집에서 지내시다보니 입맛도 없고 귀찮기도 해서 잘 챙겨

드시지 않은 것이다.

마음이 조여왔다.

 

토요일 점심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끼니때마다 새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여 아버님 밥상을 차렸다. 아버님을 챙겨 드리는대로 잘 드셨다.

워낙 체구가 작으신 분이지만 잘 챙겨드리면 아버님은 잘 드시는 분이셨다.

2주만에 벗어 놓으신 속옷을 삶아 빨아 널고, 집안의 먼지를 쓸고 닦고

화장실 변기와 바닥을 청소하고, 냉장고에서 상해가는 오래된 반찬들을

다 치우고 새 반찬을 만들어 채워 놓았다.

목욕탕에도 함께 다녀왔다.


아버님.jpg


집 안팎을 살피며 당장 손봐야 할 곳을 살피고 한가지라도 더 해 드리고 오려고

남편과 나는 애를 썼지만 그래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님은 눈이 오는 내내 이렇게 매트위에 누워 텔레비젼을 보고, 까무룩 주무시다가

끼니때가 되면 간단하게 요기를 하시고, 다시 매트위에서 화투장을 만지작 거리다가

다시 누우셨을 것이다.

무료하고 긴 시간을 아버님을 눈 속에서 그렇게 지내오셨다.

그래도 아버님은 강릉에 계시고 싶어 하신다. 자식들 불편할 것 같아서가 아니라

당신이 그게 제일 편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아버님께 가장 좋은 것은 최소한 2주에 한 번씩이라도 세 며느리들이 번갈아

방문해서 세탁과 음식, 청소를 살펴주는 일일것이다. 그러나 살다보면 그것도

맘 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두 자녀를 대학과 고등학교 기숙사에 넣고 뒷바라지  하며

직장을 다니는 형님이나, 역시 직장에 다니며 두 아이 뒷바라지 하는 동서나

세 아이 키우며 살림하는 나나 세 며느리 모두 지고 있는 일상의 짐들이 적지 않다.

한 번 강릉에 다녀올때마다 적지않게 드는 돈도 큰 부담이다.

아버님도 그걸 잘 아시기에 전화로라도 아쉬운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신다.

밥이라도 단골 식당에 부탁하는게  어떠냐고, 도우미라도 부르면 어떠냐고

권해도 지금 아버님은 모두 완강히 마다하신다. 우린 그저 아버님 뜻을 존중하며

각자 형편에서 최대한 아버님을 살피는 쪽으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 시댁에 내려오면 형님과 동서는 시댁에서 지내는 내내 매순간

몸을 쉬지 않았다. 음식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이불까지 다 걷어다 빨아널고

연로하신 부모님이 신경 쓰지 못하고 지내셨던 많은 것들을 있는 동안 좀 더

말끔하고 좀 더 깨끗하게 해 드리려고 애를 썼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은

내겐 참 대단해 보였다. 그저 두 사람 하는 대로 흉내내는 것 만으로도

힘들던 나에게 두 사람은 나이 드신 부모님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몸으로

직접 내게 보여 주었다.

 

이제 나 혼자 아버님께 다녀올때는 형님과 동서가 했던 것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몸을 놀린다. 쓰시던 수건을 걷어 삶아서 빨아 놓고, 온 방을 닦고

그 걸레까지 말끔히 삶아 빨아 널고 오는 주변머리도 형님과 동서를 보며

배운 것이다. 나이 드신 분이 홀로 사시는 공간을 살펴드리는 것에 얼마나

세심한 눈과 손이 필요한지 거듭 배우고 있다.

 

세 아이들은 봄 머리에서 다시 만난 겨울왕국에서 2박 3일간 신나게

눈놀이를 즐기다 올라왔다. 지금은 그저 눈 내린 강릉이 신나고

할아버지 집에 가면 하루 종일 틀어져 있는 텔레비젼이 신날 뿐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를 돌보는 엄마 아빠의 모습과 노력이 조금씩 눈에

보이기도 할 것이다. 늙어 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어떻게 그 분들을 돌봐드려야 하는 것인지, 부모의 뒷 모습을 보고

조금이라도 알아간다면 좋겠다.

 

월요일, 강릉에서 올라오는 날에도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다.

취나물을 무쳐서 냉장고에 넣어 드리고 따끈한 밥을 해서 보온을 해 드리고

국을 넉넉히 끓여 놓고, 과일까지 깎아서 통에 넣어 드리고 왔지만

우리가 떠나면 다시 드시는 양이 줄 것이다. 누군가 있는 집과

홀로 있는 집이란 얼마나 다를 것인가.

 

아버님같은 어르신이 받으실 수  있는 노인복지 서비스가 있는지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홀로 계신 어르신들도 충분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강릉에도 어서 빨리 따스한 봄 기운이 스며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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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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