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눈으로 나무의 참상을 보다
152567665707_20180508.JPG
지나친 가지치기로 흉물스럽게 변한 우리 아파트 나무들. 정은주

 

경비원 근무 여건과 관련해 입주자대표회의와 부딪쳤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20년 나이를 먹은 아름드리나무가 많아 봄이면 목련, 벚꽃 등이 축제처럼 꽃망울을 터뜨리곤 한다. 그러나 올봄은 살풍경한 폐허의 현장으로 변해버렸다. 나무들이 여기저기 하늘을 향한 검은 기둥만 남은 채 무언의 항변을 하는 것이다. 단지 내에서 대대적인 전지 작업이 있었는데 이렇게 벌목 수준으로 다 잘라버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팔순의 어머니가 창밖을 내다보며 탄식하셨다. 해마다 봄꽃 피는 걸 보는 기쁨이 얼마나 큰데 그걸 빼앗느냐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해보니 가지치기를 자주 하는 것도 비용이 드는 일이라 한번에 대폭 잘랐단다. 이를 그냥 넘길 수 없어 주민 몇 명이 모여 문제 제기를 하고 생태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다. 나무 형태에 상관없이 가지를 많이 잘라내는 것을 ‘강전정’이라 하는데, 이렇게 가지치기를 하면 수형 회복에 3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봄꽃 나무는 원래 꽃이 진 뒤 전지를 하는 등 고려할 게 많다고 했다. 그럼에도 어떤 나무는 가지 하나 없는 몽당연필 모습으로 거의 고사할 지경에 이르렀다. 근래 들어 지나치게 잦은 수목 소독 주기와 소독 약품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겨 업체에 약품 성분을 물었다. 그때그때 성분이 달라 공개하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인근 단지의 수목 소독은 연 3~4회라는데 우리 단지는 거의 매달 하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내가 사는 도시의 조례에 따르면 수목의 자연적 생장을 중요시해 가로수의 지나친 가지치기를 금지하며,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는 경우에도 해당 부분만 가지치기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우리 단지 내 수목에도 같은 내용을 적용하는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안건을 내기로 했다. 의견을 공문으로 정리하고 수목 소독 업체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서를 관리사무소에 보냈다.

 

단지 곳곳을 돌며 나무들의 참상을 사진에 담기로 한 날, 마침 광장에서 놀고 온 다엘에게 그곳 나무들은 어떠냐고 물었다. 다엘은 자신이 아는 최대한 나쁜 단어들을 동원해 답했다. “나무를 다 잘라서 아주 흉측하던데? 망측해!”

 

어린 시절 그토록 큰 세상이던 고향 마을에 어른이 되어 들렀을 때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어른 눈으로 볼 땐 초라하기만 한 풍경이 어린 시절에는 끝없이 펼쳐진 길과 높은 나무들로 가득하지 않았던가. 내 아이의 눈에 지금 마을의 모습은 어떻게 비칠까? 삶의 여러 굽이를 넘어온 어머니 눈에는 어떻게 기억될까? 이런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주민 참여로 풀어가는 우리 동네 이웃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을 일 하나하나 세심하게 감시하고 참여해야 함을 새삼 느낀다.

 

정은주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웰다잉 강사

 

(* 이 글은 한겨레21 제 1211호(2018. 5. 14)에 실린 글입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heart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1794064/33b/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2105 [임지선 기자의 곤란해도 괜찮아] 알고보니 순풍녀 imagefile [6] 임지선 2012-04-04 63133
2104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유관순을 만나다 imagefile 신순화 2019-03-02 63071
2103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나잇값을 생각하다 imagefile 신순화 2016-11-04 62656
2102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80편] 배타미와 장모건이 결혼 했을 때(드라마www) imagefile 지호엄마 2019-07-18 62528
2101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하루 imagefile [1] 빈진향 2013-07-05 62100
2100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여섯 살 둘째, 잠자리 독립하다!! imagefile [5] 신순화 2012-08-28 62085
2099 [김외현 기자의 21세기 신남성] 남편이 본 아내의 임신 - (1)임부복 imagefile [6] 김외현 2012-04-24 61769
2098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30편] 2013년 베이비트리의 우~아한 송년회 후기 imagefile [7] 지호엄마 2013-12-13 60907
2097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10년만의 가족 여행, 여친때문에 안 간다고?? imagefile [11] 신순화 2012-06-11 59408
2096 [최형주의 젖 이야기] 지글지글 끓는 젖 imagefile [5] 최형주 2013-10-25 59314
2095 [김연희의 태평육아] 떼다 imagefile [3] 김연희 2011-12-21 58612
2094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기막혔던 뽀뇨의 첫 이사 imagefile [2] 홍창욱 2011-12-26 57313
2093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둘째 아이를 갖기 위한 필수 조건 imagefile 양선아 2010-05-30 56914
2092 [김연희의 태평육아] 왜 하의실종 종결자가 되었나? imagefile [3] 김연희 2011-11-02 56756
2091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젖떼고 첫 맥주, 나보고 정신 나갔다고? imagefile [7] 양선아 2011-10-19 56711
2090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 위태로운 아이들, 어떻게 살려낼까 [4] 안정숙 2016-08-03 55892
2089 [동글아빠의 육아카툰] [육아카툰] 훼이크 imagefile [1] 윤아저씨 2011-09-01 55704
2088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글을 열며... imagefile 신순화 2010-04-23 55364
2087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아이에게 이런 말들은 제발.... imagefile 신순화 2010-09-07 54859
2086 [뽀뇨아빠의 저녁이 있는 삶] 워킹맘에 완패한 아빠, 그래도 육아대디 만한 남편없다 - 토크배틀 TV프로그램 출연기 imagefile [6] 홍창욱 2012-01-31 546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