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1e01963ca65efa283e5a7c73e0ee61. » 태어난 지 이틀 지난 이룸이를 안아보는 필규와 윤정. 2010년 2월.


서른 셋인 여자와, 서른 일곱인 남자가 부부가 되었으니 둘 다 어지간히 늦은 결혼이었고

당연히 남편과 나는 아이를 너무나 원했다.

나는 결혼한 그날부터 인스턴트를 끊고 몸에 좋은 음식만 먹으면서 임신을 준비했었다.

다행스럽게 결혼 3개월만에 임신을 했고, 우린 기쁜 마음으로 함께 태교를 시작했다.

첫 아이때는 정말 태교에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처음 부모되는 일이어서 남편도 나도 설레었고

혹여나 아이가 잘못될세라 조심하면서 여러가지 노력들을 했다.

태교의 시작은 태명을 짓는 일이었다. 첫 아이는 ‘연이’라고 지었다. 연꽃처럼 기품있는

아이를 바랬던 남편의 소망이 담긴 이름이었다.


 

남편은 작은 노트를 준비해 ‘연이 아빠 엄마의 사랑 이야기’라는 제목을 붙이고

뱃속의 연이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글로 적었다. 몇 번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나도 그 노트에 연이를 향한 편지나 일기를 적었다. 이따금 남편이 쓴 글을 읽으며 감동하기도 했다.

임신 3개월째 직장생활을 정리한 나는 본격적으로 엄마 되는 일에 마음을 쏟았다.

남편이 퇴근하기까지 혼자 지내야 했지만 늘 ‘연이야’ 부르며 지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연이야, 오늘은 날씨가 좋네? 밥 먹고 엄마랑 산책가자’ 하고, 밥상을 차리면 나 혼자 먹으면서도

‘연이야, 무슨 반찬 부터 먹을까? 엄마는 두부가 좋은데 너도 좋니?’ 하며 먹었다. 걸을 때도,

설걷이나 집안 일을 할때도, 음악을 듣고 책을 읽을때도 늘 뱃속의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가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아이가 내 말을 듣고 있는 것처럼, 아이랑 같이 지내는 것처럼 지냈다.

밤에는 마루에 낮은 등 하나만 켜 놓고 앉아 요가로 몸을 풀고, 뱃속의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었다.

내가 고른 책은 셍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였다.

한 문장 읽고 그 문장에 대한 내 감상과 생각을 아이에게 들려 주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 참 좋았다. 두 권의 책 모두 여러 번 읽은 내용이었지만 어린 내 아이에게

들려준다는 마음으로 읽는 것은 참 새로운 경험이었다. 책의 모든 구절들이 새로운 감동과 깨달음처럼

다가왔다.

너무나 원했던 임신이었기에 임신이 가져다 주는 많은 변화들을 큰 스트레스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배가 본격적으로 나와서 처음으로 임부복을 입었을 때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자랑하고 싶었다.

몸매가 변하고 행동이 둔해지고 잠자고 일어나는 게 불편해져도 좋았다. 당연히 겪어야 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였고, 몸이 힘들어질수록 아이를 만나는 시간이 다가온다고 여겼다.

아이를 낳을 때까지 대부분의 집안일도 남편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내가 했다.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것이,

특히 엎드려 걸레질을 하거나, 쪼그려앉아 빨래를 하는 자세가 아이의 순산을 돕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정일을 9일이나 넘기고 4킬로가 넘는 첫 아이와 만난 날은 감동 그 자체였다.


첫 아이가 네살일 때 둘째 아이를 가졌다.

역시 바라던 아이였기에 임신은 반갑고 기쁜 일이었다. 둘째는 집에서 낳기로 결정했기에

첫 아이가 동생을 호의적으로 여길 수 있는 것에 태교의 중심을 두었다.

펄펄 뛰는 네살 사내아이와 종일 같이 지내야 했기에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거나 하는

태교는 불가능했지만, ‘봄이’라고 태명을 지은 뱃속의 동생과 첫 아이가 늘 같이 지내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장을 보러 갈때도 ‘필규야, 오징어 사러가자. 봄이가 오징어 먹고 싶대’ 했다.

그러면 필규는 ‘봄이가 오징어 좋아한대요? 나도 좋아하는데.’ 했다.

‘그럼, 오빠가 좋아하는 건 봄이도 다 좋아해’ 이렇게 말하면 필규는 좋아했다.

뱃속의 동생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열 달이 늘 동생이 곁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

‘봄이랑 필규 좋아하는 노래 부를까? 필규가 노래 하니까 봄이도 좋은가 보다. 막 움직이네?’ 하며

필규랑 함께 태동을 느껴보기도 했다. 일어날 때도, 잘 때도 필규는 봄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엄마, 이거 봄이 나오면 보여주자요.’, ‘엄마, 이건 봄이랑 같이 할래요.’


필규는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동생의 존재를 느끼며 지냈다. 내 몸이 변해가는 과정도

동생이 커가는 과정으로 여겼고, 병원도 같이 다니며 동생이 자라는 모습을 같이 보았다.

출산 과정이 담긴 동영상도 같이 보고, 출산을 다룬 그림책도 같이 읽고, 동생이 쓸 물건들도

같이 정리하고, 동생을 맞이하기 위해 해야하는 모든 일들을 같이 했다.

필규는 다섯살 3월에 집안에서 동생을 맞이할 때도 전혀 무서워하거나 낮설어 하지 않았다.

엄마와 열달간 내내 같이 지내온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그 순간도 신기해 했고

태어난 그 순간부터 안아볼 수 있었던 동생이었기에 질투와 시기없이 자연스럽게 동생을

인정할 수 있었다.


첫 아이 일곱 살, 둘째 아이 세살일 때 셋째를 가졌다.

역시 집에서 낳을 예정이었으므로 이번에는 두 아이와 함께 동생 맞을 준비를 했다.

‘이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늘 이룸이를 부르며 두 아이와 놀았다. 필규는 둘째 윤정이를

맞이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모든 과정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윤정이는 오빠가 하는대로

동생 이룸을 불러가며 뱃속에 대고 인사도 하고, 말도 걸면서 밝게 지냈다.

필규는 둘째 윤정이에게 뱃속의 동생에 대해서 제가 아는 것들을 이야기로 들려 주었다.

두 아이와 함께 이룸이를 불러가며 신나게 노래 부르고, 춤도 추고, 산책도 하고, 책도 읽었다.

밥을 먹을 때고, 잠을 잘 때도, 아이들과 작은 일을 결정할때도 ‘이룸이에게 물어 보자’ 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두 아이 모두 동생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으로 느끼는 존재는 눈으로 받아들이기가 더 쉽다. 열달이 지나고 올 1월에 이룸이가

태어날 때 필규와 윤정이는 곁에서 모든 과정을 같이 보았고, 태어난 그날부터 동생을

안아 보았다. 아이를 낳고 몸이 힘들어진 엄마와는 적지 않은 갈등을 겪은 두 아이들이었지만

동생을 질투하거나 시기하는 일이 심하진 않았다. 두 아이와 함께 한 태교 덕분이라고 믿는다.


의무적으로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건 아무 도움 안돼


뱃속 열 달이 배 밖의 10년보다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태교가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많은 산모들이 태교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은

‘태교’라는 것이 특별한 무언가를 노력해야 한다고 여기는 점이다. 듣지 않았던 클래식 음악을 듣고

체조를 배우고, 십자수를 놓고, 뱃속의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느라 노력을 한다.

물론 그 노력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을 진심으로 즐겁게 하는가이다.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고, 읽어야 한다고 여기면서 한다면 차라리 안하는 게 낫다. 클래식이 아니라도

가요나 팝이라도 엄마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행복해 하는 편이 아이에게 좋다. 

그렇지만 이런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엄마가 뱃속의 아이를 어떤 감정으로 대하는가이다.

원치 않는 임신이거나, 임신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긴장되어 있다면 뱃속의 아이도 편할 수 없다.

일단 낳기로 결심했다면 최선을 다해 뱃속의 아이를 환영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임신이 주는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아이로 인해 달라지는 환경과 상황을 즐길 수 있다면

더 좋다.

제일 좋은 일은 임신을 확인한 그 순간부터 뱃속의 아이를 가족의 한사람으로 인정하고

일상의 모든 순간에 아이의 존재를 의식하며 지내는 일이다. 아이가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처럼

여긴다면 먹는 것, 행동 하는 것 하나도 자연스럽게 더 주의하고 정성을 들이게 된다.

규격화되고 상품화된 태교를 구입하거나 소비하는 것보다, 엄마가 되어가는 내 몸을 사랑하고

내 안에서 커가는 생명을 일상에서 불러보고 품어보며 아껴주고, 지금 내 곁에 그 아이가

있는 것처럼 지낸다면 아이는 뱃속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자랄 것이다.


엄마의 몸은 아이가 만나는 첫 환경이다.

진정한 태교란 아이의 첫 환경으로서의 내 몸을 돌보는 일이고, 내 감정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일이다. 내 생각, 내 습관, 내 일상이 아이를 이룬다는 것을 잊지 않는 마음,

그것이 가장 좋은 태교다.

첫 아이가 있다면 첫 아이랑 즐겁게 노는 일이 제일 좋은 태교가 되고, 동생을 맞이하는

모든 과정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더 좋은 태교가 될 것이다.


아이를 기다리고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 가장 큰 태교


다행스럽게도 하는 세 아이 다 간절히 원했던 아이여서 임신 기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고

두 아이를 집에서 낳았기에 큰 아이들과 함께 동생이 태어나는 순간을 같이 할 수 있었다.

셋째를 가졌을 땐 한창 장난이 늘어가는 일곱살, 세살 아이들과 싸우기도 많이 했고,

몸이 힘들어서 살림을 게으르게 하기도 했지만 늘 우리의 일상에는 동생이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태교를 한다는 의식없이 자연스럽게 동생의 존재를 인정하고 기다리며 지낼 수 있었다.

태교도 상품이 되고, 프로그램이 되어 팔리는 시대지만 비싼 태교 용품보다 아기를 기다리고

느끼고,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 가장 좋은 태교라는 것을 잊지 말자.

좋아하는 일을 하며 고대하고 설레이며 아기를 기다린다면 아기는 그 기다림에 반드시

건강하고 이쁜 모습으로 보답할 것이다.

더운 여름날 엄마가 될 준비로 애쓰며 보낸 모든 산모들의 건강한 출산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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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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