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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제 이 집이 조금 좋아졌어요.”

자고 일어난 딸 아이가 이 말을 들려준 3월의 어느날 아침을 잊을 수 없다.

“그래? 정말 고마운 일이네? 앞으로 조금씩 더 좋아질 거야.”

나는 울컥 눈물이 맺힌 얼굴로 딸 아이를 꼬~옥 안아 주었다. 미안하고, 고마왔다.

다섯 살 딸 아이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기까지 세 달 가까이 겪었던 힘겨운 시간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첫 딸인 윤정이는 유난히 말이 빠르고 영리했다. 기저귀도 18개월 때 떼었고, 세 살 무렵부터 온갖 대화가 가능했던 아이였다. 네 살 때 여동생이 생겼지만 질투도 안 하고 지금껏 동생에게 참 잘하는, 엄마에게는 참 고맙고 의젓한 아이였다.



그러던 아이가 올해 1월 지금 사는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직후부터 바지에 오줌과 똥을 싸기 시작했다. 몇 번은 화장실이 달라져서 실수를 했으려니... 했는데 점점 정도가 심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지에다 오줌을 그냥 줄줄 싸는 것도 힘든데 팬티에 변도 지리기 시작했다.



혹독하게 추웠던 1월 오래 비어있던 단독주택으로 이사하고 보니 무엇보다 집이 너무 추웠다. 심야 보일러를 종일 틀어도 한밤에는 실내온도가 고작 14도였던 넓은 집에 돌도 안된 막내와 아직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이사를 했으니, 어른들도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탈날까 노심초사하며 하루 하루 추위와 싸우며 어렵게 지내던 참이었다.



목욕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최소한으로 씻으며 견디고 있는데, 막내도 아니고 다섯살 아이가 똥, 오줌을 팬티에 묻혀 놓으면 추운 목욕탕에서 두꺼운 겨울옷을 벗기고 한 번 씻겨내는 일이 보통 큰 일이 아니었다.



몇 번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막내를 돌보면서 이삿짐 정리하랴, 단독주택 생활에 적응하랴, 워낙 추위를 타는 나부터 달라진 기온에 적응하랴 그야말로 혼이 쏙 빠질 만큼 힘들어 주겠는데 이 와중에 다섯살 아이이 대 소변으로 얼룩진 속옷까지 빨아야 하니, 너무 너무 화가 나고 힘들었던 것이다.



미리 미리 얘기해 달라고 몇 번이나 타이르고 부탁을 해도 정도는 점점 심해졌다. 급기야는 똥 냄새가 심하게 나서 벗겨 보면 이미 팬티에 똥을 다 싸 놓고 한참을 그 상태로 뭉개고 있기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속옷에 조금 묻히는 것도 처리하는 것이 번거로운데, 냄새가 지독한 다 큰 아이의 대변이 뭉개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면 엄마인 나에게도 너무나 역해서 화가 더 났다.  집이 너무 추워서 하루 한 번 씻겨 재우는 것도 온갖 신경을 쓰며 애를 쓰고 있는데, 하루에도 몇 번이나 아이를 씻기고 팬티며 내복, 바지까지 갈아입혀야 하다니, 도저히 견딜 수 가 없었다.



무엇보다 놀랍고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이가 그 상태가 될 때까지 전혀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똥을 다 싸 놓고도 아무 느낌이 없었냐고 물어보면 “몰랐어요...” 라고만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더 펄펄 뛰었다. 몇 번이나 미리 말해 달라고, 마려우면 바로 말해 달라고 일렀는데도 완전히 다 싸 놓고도 말을 안 하고 내가 냄새로 알아채야 그제서 인정을 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똥이 마려운지 아닌지 왜 모르냐고, 이렇게 심한 상태로 어떻게 있을 수 있냐고, 다 싸 놓고도 왜 말을 안 하는 거냐고 나는 추운 목욕탕에서 아이를 씻기며 길길이 화를 냈다. 덜덜 떨면서 “죄송해요. 다음에는 미리 말 할께요” 눈물을 뚝뚝 흘리는 딸 아이를 보다가 갑자기 가슴이 쿵 하고 내려 앉았다.



그렇게 영리하고 의젓하던 아이가 엄마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대소변을 지릴 리가 없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되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곰곰히 생각을 더듬어 보니 이사하고 나서 딸 아이가 유난히 힘들어 했던 게 기억이 났다.  “나는 이 집이 싫어요. 아파트로 다시 가요.” 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럴 때마다 그냥 하는 소리려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이들을 마당 있는 집에서 마음껏 놀며 키우고 싶은 마음에서 이사를 한  것인데 함박눈이 내려 눈이 가득 쌓인 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들며 좋아해야 하는데, 이 집을 싫어할 리는 없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 가만 더듬어 보니 이사한 후부터 딸 아이는 집에서 내 모습이 조금이라도 안 보이면 불안해 했고, 특히 화장실 가는 것을 싫어했다. 깨끗하던 아파트에 비해 새 집의 화장실은 저분했고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딸 아이의 반응은 정도를 넘었다.



며칠 지나면 적응을 하려니 기다렸지만 점점 심해졌다. 대변이란 특히 편안함과 깊은 관계가 있다. 나도 시댁에만 내려가면 변비에 걸리곤 했다. 그러다 내 집에 돌아와서야 편안하게 변을 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딸 아이는 이 집이 전혀 편하지 않은 것이다. 대소변을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큼

어린 딸에게는 힘들었던 것이다. “이 집이 싫어요” 하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어린 딸은 똥과 오줌을 제대로 싸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 새 집에 적응하는 일이 힘겨운 상태였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막연히 넓은 마당이 있고, 개를 기를 수 있고, 텃밭에 나무에 흙에 자연이 가까운 집에서 마음껏 뛰놀게 되었으니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했다며 만족해 하고만 있었다. 실제로 큰 아이는 좋아했고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어린 막내는 추운 북극에 간다해도 젖 주는 엄마만 있으면 상관이 없을 터였지만 다섯살 큰 딸은 달랐다. 기억할 수 있는 첫 이사로, 갑자기 환경이 너무나 바뀐 것이다. 좋아하던 또래 친구들도 갑자기 멀어지고, 엄마는 새 집에서 너무 바빠서 저와 놀아줄 시간이 없고, 아홉살 오빠처럼 새 환경을 거침없이 탐험하기엔 조금 어린 나이였으니 딸에게는 가혹한 변화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마음을 엄마에게 충분히 설명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다보니 몸은 대소변의 통제력을

잃는 것으로, 그 마음에서 일어나는 힘겨움을 표현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딸은 있는 힘을 다해서 견디고,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얼마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뒤늦게서야 이런 것들을 깨닫고 어린 딸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마당 있는 집을 너무나 원했었기에 아이들 모두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이런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것 같아 미안하고 미안했다.



‘그랬구나. 네게는 이 집이 너무 힘들었겠다. 그래서 똥도 오줌도 잘 나오지 않았구나. 그것도 모르고 엄마는 야단치고 화만 냈구나. 정말 미안하다.’

나는 딸 아이에게 사과를 하고 오래 오래 안아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바지에 오줌을 싸고 똥을 싸도 괜찮아. 엄마가 다 씻겨주고 갈아 입혀줄께. 윤정이 몸이 힘들어서 그런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 집이 좋아지면 다 괜찮아질 거야.”



남편과 큰 아이에게도 윤정이의 상태를 설명하고 행여 놀리거나 혼내지 말 것을 부탁했다.

그 후로도 오랫 동안 딸아이는 대소변을 옷에다 보았다. 그때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갈아입혀 주었다.



나도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들고 고달팠지만 어린 딸이 겪고 있는 내면의 힘겨움이 안쓰러웠다. 딸 아이는 자다가도 울면서 깨어나 “아파트로 다시 가요.” 엉엉 울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개를 키울 수 있고, 꽃과 나무도 많고, 새들도 날아오고, 마음껏 뛸 수 있는게 좋아도

그래도 아파트가 좋다고 했다. 그래도 이 집은 싫다고 했다.



“엄마가 좋으면 윤정이도 좋을 줄 알았어. 윤정이가 싫어할 줄은 정말 몰랐어. 윤정이는

이 집이 싫구나. 엄마 때문에 윤정이가 고생을 해서 정말 미안하다”며 그때마다 아이에게 사과하고 오래 안아 주었다.



이 집의 좋은 점들을 열심히 알려주고, 새 집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운 경험들을 체험하도록 열심히 노렸했지만 “그래도 아파트로 다시 가요”라는 말은 오래 오래 계속 나왔다.



언젠가 이사와 같은 환경의 변화가 주는 스트레스가 이혼에 필적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그만큼 환경이 바뀌는 일은 어른에게도 적응이 쉽지 않은 것이다. 윤정이는 고작 다섯살이다. 대도시의 아파트에서 한적한 농촌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한 일이 그 어린 아이에게는 세상이 다 바뀌는 큰 변화였을 것이다.



아이를 위해서 한 선택이니 당연히 모든 것을 좋아할 거라고 믿은 것은 순전히 어른들의 착각이었다. 아이는 몸으로 제 마음의 고통들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엄마인 나조차 아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두고 두고 아프고 미안했다.



우리의 첫 겨울은 길었다. 힘들게 힘들게 견디고 지내면서 가끔 물어 보았다.

“이젠 이 집이 좋아졌니?”

“... 아니요. 아파트로 다시 가고 싶어요.”

“그렇구나. 아직도 아파트가 더 좋구나. 조금만 더 지내보자.”'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딸 아이의 옷을 갈아 입히며 긴 겨울을 지냈다.



옷을 버리는 횟수가 더디게 더디게 줄어들었다. 그 사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언제부터인가 저 혼자 화장실에 가고, 똥이 마렵다고 미리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팬티에 안 묻었지요?”



자랑스럽게 내게 확인하는 딸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보인다 느꼈는데 3월도 중반에 접어 들었을 때, 자고 일어난 딸 아이 입에서 “이젠 이 집이 조금 좋아졌어요” 하는 말이 나온 것이다.



딸 아이의 긴 겨울이 마침내 끝난 것이다.

딸 아이를 끌어 안고 나는 울었다.

“앞으로 조금씩 더 좋아질 거야. 이 집에서 멋진 날들을 더 많이 보내다 보면 더 좋아질 거야.”



오래 오래 우린 서로를 끌어 안고 울다 웃었다. 잊을 수 없는 봄날의 아침이었다.



오빠랑 해리포터 놀이를 하며 깔깔거리는 윤정이는 이제 이 집을 너무 좋아한다. “아파트는 싫어요. 개도 못 기르고 직박구리도 안 날라오고, 딱따구리 소리도 안 들리고, 마당도 없잖아요. 이 집에서 오래 오래 살래요.” 한다.



그 말이 진심이란 걸 안다. 아파트의 친구네로 놀러가는 것도 좋아하지만 나날이 새 집에

피어나는 꽃들에 반색하고, 제가 심은 강낭콩에 싹이 났는지 안 났는지에 관심을 더 기울인다.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옷에 똥을 싸던 아이는 어느새 저 혼자 볼일을 다 보고 화장지로 엉덩이까지 혼자 닦을 줄 아는 야무진 아이로 돌아와 있다.



아이는 어른이 아니다. 어른이 짐작하고 배려한다고 해도 아이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변화들을 모두 제대로 알아차릴 수 없다.



아이는 말보다 몸으로 행동으로 제 마음을 어른에게 말한다. 아이의 언어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래서 더 아이에게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이를 위한 선택이라고 해서 아이가 행복하려니, 좋아하려니 생각하는 것도 어른들만의 생각이기 쉽다.



정말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이처럼 멀고 힘든 길을 걷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 일을 통해서 아이를 이해하는 길을 다시 배우고 있다. 세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아이에 대해 베테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무수하게 시행착오를 거치고, 아프고 아프게 다시 깨달으면서 조금씩 더 알아가는 것이다.



윤정이도 나도 혹독하고 힘겨운 겨울을 지내고 눈부신 새 봄을 맞았다.

하루하루 색과 모양과 느낌을 달리하는 새 집에서 우린 겨울을 온전하게 견디어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봄의 찬란함을 같이 나누고 있다.



새 집에서 세 아이들과 오래 오래 행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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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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