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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1월4일, 녀석의 영유아 건강검진이 예정돼 있었다. 이번 정기 건강검진에 있어서 초미의 관심사는 바로 언어발달. 지난 번 두 돌 때 의사선생님은 좀처럼 말문이 트이지 않던 녀석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30개월까지는 괜찮아요. 그때까지도 달라지지 않으면 그때 가서 정밀검진을 해보죠.”
그러고서 훌쩍 반 년이 지나 해가 바뀌었지만 녀석의 언어생활은 별로 나아지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말이 늦었던 제 아빠를 닮았겠거니 항상 낙관적으로 생각해왔지만 건강검진일이 다가오면서 불안감은 조금씩 커져갔다. 의사선생님이 말한 마지노선인 30개월이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녀석의 입에서 처음 터져나온 말은 ‘까꿍’이었다. 비교적 일찍 말문이 트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까~꿍” 하는 발음이 아주 정확했다. 그러고서 엄마, 아빠, 무(물)를 구사했다. 그러나 이 네 단어로 두 돌을 넘겼다. 지난해 가을쯤에야 긍정의 대답인 “예”와 마니(할머니), 하찌(할아버지)를 발음했다. '꼬마버스 타요' 주제가 말미에 나오는 ‘뛰뛰빵빵’도 12월에야 가능했다. 녀석의 언어생활은 이미 문장을 만들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평균적인 수준보다 저렴했다.
그러던 지난 월요일, 그러니까 건강검진 전날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아내가 집에 도착해서 퇴근하는 이모님께 인사를 드리라고 하니 녀석이 “싫어”라고 했다는 얘기였다. 오! 이럴 수가. 그게 사실이라면 녀석의 입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 터져나왔다는 얘기였다. 부랴부랴 퇴근을 하니 아내가 시연에 들어갔다. “성윤아, 아빠랑 양치질 할래요?”
“칠.어.칠.어” 연음 현상을 따르지 않는 부정확한 발음이었지만 고개까지 젓는 폼이 “싫어”가 맞았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싫어”였다. 다음날 건강검진을 하신 의사선생님도 “인지능력에는 문제가 없어서 말이 늦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판정을 내리셨다.
녀석의 표현 능력이 향상되자 소소한 재미도 생겼다. 요즘 공부하느라 집에 와있는 처남. 가끔씩 성윤이와 놀아주는데 며칠 전엔 성윤이가 엄마에게 삼촌에 대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성윤아, 삼촌이랑 놀아요.” “칠. 어. 칠. 어” “삼촌 좋아요?” “칠. 어. 칠. 어” 녀석의 솔직한 대답에 어색했던 둘 사이의 관계가 더 어색해졌다는 후문이다.
토요일엔 엄마가 친구 결혼식에 간 사이 녀석과 아침을 먹었다. 부침개, 멸치에 된장찌개를 밥에 비벼 상을 차렸다. 미지근한 밥을 한술 떠주니 녀석이 “떠거”라고 말했다. 뜨겁다는 얘기였다. 흐흐. 이놈 점입가경일세!
그렇게 녀석의 언어생활에는 천천히 진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의 걱정은 필요 없을 것 같다.
[youtube D6lHxfvyPZ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