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를 가려고 아들 1호와 2호의 외출준비를 한다. 이제 제법 말이 통하는 아들 1호(29개월)는 ‘바깥 밥’도 잘 먹고 기저귀도 떼었고 입힐 옷도 꽤 있고, 그래서 준비가 비교적 쉽다. 아들 2호(6개월)는 그렇지 않다. 기저귀도 채워야 하고, 분유와 이유식도 챙겨야 하고, 옷도 여벌을 준비해야 하고, 아기띠와 유모차도 챙겨야 한다. 바쁜 와중에 가장 난감한 것은, 매번 입힐만한 옷이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들 2호의 옷은 따로 산 적이 몇번 없다. 사실 아들 1호도 직접 사입힌 적은 별로 없었지만 옷 선물이 많았다. 금방 크는 아이들 옷이니 어차피 오래 입지도 않는다. 한두번 입혀보고, 아니 한번도 입혀보지 못하고 치수가 안 맞아 처박아둔 옷도 많았다. 어차피 둘다 아들이니 물려입으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엄마·아빠도, 친가·외가 친지들, 친구들 누구도 아들 2호를 위한 옷을 사지 않는다.


20121221_5.jpg » 한겨레 자료 사진. 사실 성별이 같다고 해도, 옷을 물려입으려면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번째는 시기. 아이의 월령과 철이 맞아야 한다. 첫째가 6개월 때 겨울이었는데, 둘째의 6개월이 여름이라면 물려입기가 쉽지 않다. 두번째는 발육이다. 같은 발육 시기에 치수도 비슷해야 한다. 우리집은 5월생, 4월생이라 월령과 철은 괜찮은데, 발육이 문제다. 아들 2호의 왕성한 발육 탓에, 형 옷이 모조리 작아 못 입을 지경이다. 엄마·아빠는 그저 미안하다. 

아들 2호가 찬밥 신세인 건 비단 옷 뿐이 아니다. 장난감이며 치발기도 다 형이 쓰던 것들이다. 아기옷은 손세탁을 했던 큰아이 시절과 달리, 작은아이 세탁물은 죄다 세탁기 신세다. 아들 1호 시절 수유와 배변 현황을 기록했던 ‘육아표’는 생각도 않고, 아들 2호는 눈대중과 어림짐작으로 거의 모든 걸 처리한다. 아들 1호는 조금만 오래 울거나 많이 토해도 어쩔줄 몰라하며 병원 응급실을 갈지 고민하며 키웠다. 아들 2호는 좀 울어도 ‘언젠간 그치겠지’, 좀 토해도 ‘애들이 다 그렇지’ 할 뿐이다. 

적어놓고 보니, 정말 불공평하다. 아들 2호가 언젠가 이 글을 보게 될 날이 올텐데 아마도 무척 서운해하지 않을까. 할 말이 있다면, 그만큼 엄마·아빠의 육아 ‘스킬’이 늘었기 때문이란 점이다. 예컨대 큰 아이 이유식을 시작할 때는 책과 인터넷을 뒤져가며 매주 식단과 재료 준비를 하느라 골치가 아팠다. 지금은 장보러 간 엄마가 대강의 짐작으로 이것저것 사와도, 크게 틀린 게 없다.

하지만 입힐 옷이 없다는 건 지금 당장의 현실이다. 출장 다녀오신 장인어른이 아이 옷을 사오셨다고 해서 아내가 반색했는데, 전부 큰 아이 옷인 걸 알고 아내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주말엔 반드시 둘째에게 새 옷 한벌 꼭 사주기로 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두 딸, 큰딸 말리아(14)와 작은딸 사샤(11)의 순서가 뒤바뀐 적이 있었다. 2008년 대선 승리 직후 한 연설에서 오바마는 “사샤와 말리아, 사랑한다”는 대목을 역사에 남겼다. 대부분 기록은 나이 순으로 ‘말리아와 사샤’라고 기록하지만, 유독 이날 연설만 ‘사샤와 말리아’였다. 그 배경은 알려진 바 없지만, 혹시나 둘째에 대한 이런 미안함을 만회해보려는 아빠의 속정이었던 건 아닐까.

아빠에게도 언젠가 만회의 기회가 오겠지? 그럼 이해를 좀 해줄래, 저기서 배시시 웃고 있는 아들 2호야?

** 이 글은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디자인하우스) 2012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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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기자
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21>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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