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때문에 아예 야구를 못하게 한 주말, 그러고도 일요일 아침이었다.
와이프의 지인 내외가 우리집을 방문했다. 손님 내외 중 남편은 정형외과 의사였다.
몸이 근질근질한 녀석은 손님 앞에서도 연신 섀도우 피칭을 해댔다.
무더위에 녀석을 진정시키려는 생각으로 ‘의사 선생님’에게 녀석의 상태를 점검해달라고 부탁했다. 의사 선생님은 바로 진찰에 들어갔다.
녀석의 양팔 이곳저곳 눌러보고 살피더니 오른쪽 팔꿈치가 부어있다고 했다.
그렇게 단정을 하니 녀석은 그제서야 아프단다. 내가 물었다.
“지금까지 아팠는데 안 아프다고 한 거야?”
“아니, 오늘부터 아프네.”
아이들은 “아프다”고 말하는 통증의 정도도 어른들과 달라 문진으로는 잘 알 수가 없는데 눌러보고 표정으로 통증을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동안 녀석의 야구 활동은 사실 무리한 수준이었다. 최근 부자야구 시리즈는 녀석의 4연패.
내가 대량 득점하는 빅이닝에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녀석은 수십개의 공을 던져야 했다.
솜털 같은 스펀지공으로 나를 제압하기 위해 녀석은 무게가 실린 강속구를 던져야 했다.
내가 호쾌하게 두들기고 점수를 낼수록 녀석은 더욱 역투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간단하게 몸을 푸는 캐치볼도 사실 녀석에게는 버거운 것이었다.
20m 정도에서 테니스공을 주고받기도 했는데
어른인 내가 공을 던져도 어깨에 무리가 가는 거리였다.
내 어깨가 아려오면 녀석에게 “팔 안 아파?”라고 물었는데
항상 “아니. 괜찮은데?”가 녀석의 답이었다.
아픔이라는 게 뭔지, 어느 정도 아파야 조심해야 하는 건지를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주중에는 마루에서 혼자 벽에 대고 공을 던지거나 섀도우 피칭을 기계처럼 반복했다.
근육이 덜 자란 상태에서 어깨와 팔꿈치가 혹사되고 있던 셈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일단 하지 말아야죠. 6주 정도 쉬면 팔 부은 것도 빠지고 괜찮아질 겁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녀석은 깜빡거리며 눈에 잔뜩 힘을 줬다.
억지로 울음을 참는 중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자신의 시선을 외면하는 녀석의 두 손을 잡고 조근조근 설명을 이어갔다.
“니가 정말로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면 지금 이렇게 무리하면 안 돼.
야구선수가 되려면 제일 중요한 게 뭐야. 체력이야. 공을 잘 던지는 것보다 체력이 먼저야.
그래야 나중에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어. 열심히 뛰고 하체운동 하고 그래야 해.
내리막길에서는 뛰지 마. 무릎에 안 좋으니까. 알았지?”
“네.”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짧고 굵게 대답했다.
의사 선생님의 조언에 금세 마음의 평온을 찾은 듯 했다.
우연한 기회에 적시에 얻은 천금 같은 조언이었다.
‘6주 재활’ 처방을 받았지만 녀석의 몰입은 여전하다.
이젠 왼팔로 섀도우 피칭을 한다. 물론 깜빡하고 오른팔로 공을 던지기도 한다.
그럴 땐 내가 야구심판처럼 단호하게 외친다.
“6주, 내일부터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