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규 14.jpg

 

 

엄마, 머리 좀 묶어 주세요’

 

세 아이를 데리고 모처럼 외출을 하려는데 아들이 이런 부탁을 한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다이처럼 꾸며 보는게 소원인 아들은

계속 머리를 기르고 있는 중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에 나오는 오비완 케노비나 아나킨스카이워커처럼

뒷머리를 묶고 땋은 머리를 귀 밑으로 늘어 뜨려 보는 게 아들의 로망이다.

전부터 뒷머리를 묶고 싶어 했는데 워낙 짧아서 안 묶어 지던 것이

이번엔 그럭저럭 묶어 졌다.

뒤통수 아래 머리를 한 움큼 움켜쥐고 윤정이 머리끈으로 단단히 묶었더니

뒷머리에 꽁지머리가 생겼다. 아직 짧아서, 묶어 놓은 머리모양이 마치

마녀가 타고 다니는 빗자루 처럼 보이지만 본인은 손으로 만져보더니

대만족이다.

집에서나 묶어 보겠지.. 했더니 그대로 나간단다.

 

그리하여 그 머리를 하고 국립극장에 가서 연극 보고 남산순환버스 타고

N타워에 오르고, 케이블카 타고 내려와서 다시 전철을 타고 남편 회사가 있는

잠실까지 가서 아빠를 만났다.

N타워 올라가는 언덕길에서 이룸이 태운 유모차를 기꺼이 밀어주던 착한

형아들이 ‘야, 너 머리 묶었네?’ 하고 알아채자 모자를 뒤집어쓰고 달아나기도

했지만 대체로 제 머리에 보이는 사람들의 관심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N타워에서 만난 아주머니도, 전철안에서 만난 사람들도 필규의 머리에 관심을

보이고 누가 묶어 주었는지 묻기도 했다.

아들은 ‘니가 묶었니?’ 하는 질문에 ‘아니요’라고만 대답하고 입을 다물었지만

‘오빠가 묶어 달래서 우리 엄마가 묶어주셨어요’하고 대답하는 윤정이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미소를 짓곤 했다.

 

2012년에 열 살이 된 아들은 ‘이제 나는 10대예요’ 하며 선언을 했다.

10대라... 그게 뭐 대단한 벼슬쯤 아는 모양이다.

열 살이면 적은 나이가 아니고, 나이 한 살 먹으면 그만큼 책임도 커지는 법인데

아들은 제가 누려야 할 권리에만 더 관심이 많다. 그리고 앞으로는 뭐든지

제 뜻대로 할 기세다.

그동안도 제 뜻대로 해 온게 많은데 퍽이나 양보하고 희생한 듯 여기는 아들이다.

혹 머리를 묶은게 그런 결의?일까?

 

아이가 커서 언젠가 염색을 하겠다거나 파마를 하겠다거나 하면

언제든 원하는대로 해 줄 생각이었다. 뭐든지 원하는건 직접 해봐야

좋은지 싫은지 알 수 있는거고 제 머리에 대한 자유쯤은 누려도 된다는게

평소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교칙에 위배되거나 한다면 타협도

하겠지만 이런 일을 무조건 막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아들은 내 예상보다

늘 한발 먼저 나간다.

언젠가 읽었던 ‘홍신자’의 글에서 중학생 된 딸의 일탈을 놓고 고민하다가

마음을 비우고 매일 다른 색으로 염색을 하는 딸과 함께 미용실을

드나들었다는 고백을 대한 적이 있다.

아이의 변화와 당돌한 요구에 당황하고 타이르기보다 그 속에 같이

뛰어들어 아이와 소통을 선택한 지혜를 마음에 담았었다.

 

내 아이가 벌써 열 살이다.

매일 큰다는 사실이 점점 더 실감이 된다.

제 주장이 강해지고, 고집이 세어지고, 성격의 독특함도 더 도드라지는

나이가 되었다. 그만큼 이끌어주고 받아주고 키워주어야 하는 자질들도

늘어날텐데 내가 그정도의 내공이 있는 엄마일까.. 고민하게 된다.

물론 아들로 인해 겪게 될 모험도 기대가 된다.

어떤 일이든 내 생각대로 재단하거나 자르기전에 마음 열고 들어보고

함께 그 속에 풍덩 뛰어 들 준비는 해 두어야지.

머지않아 아들과 함께 염색을 해보려고 한다.

이참에 늘 마음에만 품고 있던 레게 머리도 한 번 해 볼까?

남편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레게머리 하고 오면 집 나가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나에게도 사실 그런 로망이 있는 걸 숨길수야 없지.

아들은 염색에 서클렌즈, 마누라는 레게머리를 하고 오면

우리 남편,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벌써부터 찍어 바르는 걸 너무나 좋아하는 25개월 막내도 기대되는데

세 아이의 성장이 가져올 폭풍 변화들은 또 얼마나 다양할지..

아아아..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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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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