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고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일보 ㄱ아무개 기자.

대형사건이 쏟아지는 사회부 법조팀과 경찰팀, 정치부 정당팀 등을 거치며 그는 치열하게 살았지만,

기자 초년병 시절 그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으니, 그 가슴 아픈 이야기는 7~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아침, 만삭의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나 배가 아파. 애가 나올 것 같아.”

공교롭게도 그날은 중요한 사건의 수사 발표가 있던 날이었다. “그래? 나 오늘 바쁜데…그냥 혼자 가면 안 되냐?”

아내는 진짜로 택시를 잡아타고 혼자 가서 아이를 낳았단다. 



ㄱ기자는 나와 술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내가 팀에서 막내였고, 그래서 조퇴한다고 말하기도 그랬어. 어쨌든 미안하지.”

그는 그때의 잘못을 조금이나마 만회하기 위해 매주 출근하는 일요일마다 아들과 아내를 출입처 근처로 불러

점심을 함께한다고 했다. 아이는 텔레비전 뉴스에 서울중앙지검 청사나 국회의사당이 나오면

“저기가 우리 아빠 회사”라며 좋아한단다.



일 중독에다 간까지 큰 나쁜 기자 아빠의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다. 그러나 ‘좋은 아빠’가 되고자 하는

남자기자에게도 결혼 뒤 출산과 육아는 걱정거리다. 밖에서 민완 기자로 인정받아도 집에서는 ‘옆집 아저씨’로

치부되면 그것만큼 서글픈 일이 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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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법조팀에서 연애를 시작하고, 정치부 정당팀에서 결혼을 한 나도 나쁜 아빠가 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은 충분했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나는 2007년 12월 대선, 이듬해 총선을 취재하려 상당 시간을 집 밖에 있었다.

그래도 2008년 6월6일 평온했던 현충일 아침, 양수가 터진 아내를 데리고 병원으로 데려갔고

이튿날 아이의 탯줄까지 자를 수 있었다. 최소한의 의무는 다행히 이행한 셈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장모님께서 상경하시어, 난산에 지친 딸내미와 핏덩이 같은 외손자를 건사해주셨지만,

언제까지 계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막막한 상황에서 행운이 찾아왔다. 아이 100일 무렵, 가을 정기인사에서

기사의 제목을 달고 레이아웃을 담당하는 편집팀으로 발령받은 것이다.

편집기자는 출퇴근 시간이 일정했기에, 그때부터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아이가 커온 그 600일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빨고 싶은 손가락조차 제 입에 못 넣고

침만 흘리던 녀석이 이제는 아빠의 손도 뿌리치고 내리막길을 냅다 내닫는다.

퇴근한 아빠에게 배꼽인사를 하고 안아달라 손을 뻗는 애교가 작렬하면 그야말로 감동이다.

오랜 시간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웠던 정성이 지금의 끈끈한 관계를 형성했다고 자부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글방 이름을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로 정하자 여자 선배들이 “왜 육아를 짬짬이 하느냐”고 농담 섞인 타박을 가했다.

지금이야 나름 ‘왕창육아’를 하고 있지만, 취재현장으로 나가면 ‘짬짬육아’가 불가피할 것이다.

그때는 양보다 질로 승부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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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기자
서른두살 차이 나는 아들과 마지못해 놀아‘주다가’ 이제는 함께 잘 놀고 있는 한겨레 미디어 전략 담당 기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친구 같지만 권위 있는 아빠가 되는 게 꿈이다. 3년 간의 외출을 끝내고 다시 베이비트리로 돌아왔다.
이메일 :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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