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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우리 시댁이 강릉이라고 하면
 '어머, 좋겠다. 시댁에 갈 때마다 바다도 보고, 회도 자주 먹겠네' 부러워 한다.
 시댁에 갈 때마다 경포대에 놀러가고, 정동진 구경가고 맛있는 회를 실컷 먹고 오는 줄 아는 모양이다.


 완전한 착각이다.
 하긴 나도 결혼전엔 그럴줄 알았다.
 처녀적부터 너무나 좋아했던 동해바닷가 아닌가.
 시댁이 강릉이면 바다도 더 많이 보고 강원도 여행도 더 많이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아니었다.
 시댁에 도착하면 떠날때 까지 거실, 주방, 방을 오가며 일 하다가 나오는게 고작이었다.
 연휴가 길 때에는 형제들끼리 경포대에 놀러가기도 했지만
 그야말로 결혼 9년 동안 다섯 손에 꼽을 만큼 드믄 일 이었다.
 3형제가 서로 멀리 사는데다 연휴는 늘 짧기 마련이니 오고 가는 일에 시간이 많이 들고
 명절이라고 모이면 음식 장만하고 친지 방문하고 제사 지내는 일 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몇 해 동안은 여름 휴가를 꼭 시댁에서 보냈는데 온 가족이 함께 움직이다보면
 여자들은 또 음식 장만에 어린 아이들 챙기느라 제대로 즐길 여유가 없었다.


 처녀적엔 친구들과 콘도를 예약해서 일부러 휴가 때마다 여행을 다녀오던 강릉이었다.
 겨울 바다가 보고 싶다고 훌쩍 떠나고, 한번은 혼자 대관령을 넘어 경포대를 보고 가기도 했었다.
 하조대, 속초 해수욕장, 낙산, 미시령과 한계령 등 처녀 시절에 좋아했던 곳은
 결혼 9년 동안 거의 가보지도 못했다.
 우리 가족끼리 오븟하게 여행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다닐 수 도 있지만 아버님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아 오래 차를 타거나
 멀리 가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으신다.


 명절이 아닌 때 오더라도 어머님은 겨울 한철만 제외하고는 늘 품 일을 다니시기 때문에
 혼자 고생하는 어머님 대신 아버님 진지 차려드리는 일이 중요하다보니
 여행은 늘 먼 일이었다.
 '시댁에 알리지 않고 우리끼리 숙소를 잡아서 강원도 여행을 할까' 생각한적도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순 없었다. 멀리 살아서 자주 뵙지도 못하는데 강원도까지 가서 시댁을
 안 들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래 저래 좋아하는 바다 보는 일은 어려웠다.


 몇 해를 그렇게 보내고나니 명절 마지막 날 시댁을 나와 그대로 서울로 향할 때는
 서운해서 눈물이 다 나오곤 했다.
 그래서 남편은 몇 년 전부터 명절 마지막 날 시댁을 나오면 바로 바다로 향한다.
 잠깐이라도 바다를 좋아하는 아내에게 너른 동해바다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아이들도 이 순간을 무척 고대한다.
 명절 내내 어른들과 좁은 집에서 부대끼며 텔레비젼만 보다가
 우리 가족끼리 탁 트인 바다를 보는 일이 신나는 것이다.


 올 추석도 3박 4일을 시댁에서 고단하게 보내고 마지막 날 집으로 올라오기 전에 안목과 경포대를 향했다.
 새로 단장을 끝낸 안목 해변의 모습은 너무나 근사했다.
 경포대도 역시 푸른 파도 그대로 싱그러웠다.
 아이들은 아빠와 바닷가를 걷고 바닷물에 발도 담그며 좋아했다.
 나는 해변에 놓인 나무 그네를 타며 바다를 보았다.
 젊은 날의 추억들이 새록 새록 떠 올랐다.
 어린 첫 아이가 파도를 무서워 해서 안고서 모래밭을 거닐던 날들을 생각하자니, 어느새
 아홉살 소년으로 자라서 저 혼자 성큼성큼 바다를 향해 들어가는 모습이 찡하기도 했다.
 사진도 찍고 모래놀이도 하며 바닷가에 머문 시간은 한시간도 채 안되지만
 지난 설에 보고 반 년이 지난 추석에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동해 바다의 푸른 물결은,
 그 잠깐의 만남으로도 오래 오래 내 마음을 적셔주는 그리운 숨결이 된다.


 결혼 초에 다니러 온 시댁에만 내내 있는 게 답답해서
 '어머니, 우리 경포대에 가요' 했더니
 '거긴 뭐하러 가나. 바다밖에 없어' 하셨다.
 하하. 바로 그 바다가 있어 가는건데,
 연로하신 부모님껜 가까이 있는 바다란
 아무런 흥미도 새로움도 없는 그저 늘 있는 커다란 물인 모양이다.


 처녀 시절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자유는 포기할 수밖에 없지만
 1년에 두어번 아쉽게 만나는 바다도 내겐 소중하다.
 어른들이 다 떠나고 나면 우리끼리 자유롭게 얼마든지 여행을 할 수 도 있겠지만
 그 때가 되면 먼저 가신 어른들의 빈 자리가 더 가슴에 사무치겠지.


 그래도 바다가 너무 그리울 땐 훌쩍 다녀올 수 있을 만큼 시댁이 마음으로 가까운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일하고 바쁘신 부모님껜 죄송하지만 바다를 너무 좋아하는 며느리와 손주들이 바닷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부모님껜 효도일 수 있지 않을까.
 어른들을 생각하느라 내가 누릴 즐거움을 너무 참거나 유예시키는 것, 이것도 문제일 수 있다.
 그래... 이젠 명절 때문이 아니라 바다가 보고 싶어 갈 수 있는 시댁이게 하자.
 남편이 강릉 사람이란 게, 푸른 동해바다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사람이란 게 늘 좋지 않은가.


 고된 추석은 지났다.

 이젠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바다를 보러 강릉으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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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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