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세가 된 케이티는 올해 8월, 유치원에 입학합니다. 두어 개의 교실, 한 반에 15명 뿐이던 작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커다란 ‘진짜’ 학교에 가게 되는 거죠. 한 달 전, 유치원 입학 설명회를 들으러 세 식구 함께 처음으로 동네 초등학교 체육관에 가야 했는데, 복도가 길고 널찍한데다 교실 수가 너무 많아서 조금 당황했어요. 이 큰 공간에 수 십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드나드는데, 학교에서 가장 어린 만 5세 아이들이 겁먹지 않고 잘 다닐 수 있을까 싶었죠.
하지만 사실 걱정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과 완전히 다른 곳에서, 한꺼번에 새로운 친구 스무 명을 만나게 되는 건 아이에게나 저희 부부에게 두렵고도 새로운 경험이니까요. 무엇보다도 아이의 커다란 발, 커다란 다리를 처음 보게 될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이 KT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부터 생각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도 하고, 또 1년 반 남짓 같은 어린이집엘 쭉 다녔기 때문에 아이들도 자연스레 익숙해져서 특별히 아이의 KT에 대해 설명할 일이 없었습니다. 가끔 아이에게 다리나 발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문제가 생길 때가 있는지 넌지시 물어보기도 하는데, 아이는 나름대로의 대처법을 찾아가고 있었어요. ‘너 다리가 왜 그래?’하고 물어보는 아이들이 생기면 ‘수술했어’라고 답한다거나, 아이들 틈바구니 속에서 오른발을 밟히지 않기 위해 ‘내 오른발은 밟히면 엄청 아파’하고 미리 말한다거나 하면서요.
유치원 입학 설명회가 있은 지 일주일 후, 입학 원서를 제출하러 가야했고, 원서 제출일 전날 밤, 저는 늦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KT를 설명하는 한 장짜리 문서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원서 작성을 하다 보니 ‘우리 아이에 대해 특별히 담임 선생님/학교 간호사 선생님께 이야기해야 할 게 있다면 써 주세요’ 하는 항목이 나오더라고요. 그 항목 밑에는 두어줄, 밑줄이 그어져 있었는데, KT는 병명을 풀어 쓰는데만도 한참 걸리니 그 밑줄로는 모자랄 것 같았지요. 그래서 아예 워드 창을 켜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가급적 간단하게 끝내고 싶었는데, 안 되더군요. 결국 A4 한장을 거의 다 채운 뒤에야 끝낼 수 있었어요.
먼저 KT로 인해 어떤 눈에 띄는 증상이 있는지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아이 몸 곳곳에 있는 포도주빛 얼룩과 혈전으로 인한 혹이나 멍에 대해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아동학대’를 의심할 수도 있는, ‘웃픈’ 상황이 생길 수 있어서 특히 그 부분에 신경을 썼습니다. 몸 어디 어디에 얼룩이 있는지를 자세히 쓰고, 자전거를 타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엉덩이에 혹이나 멍이 생기기 쉬운 몸이라는 얘길 썼죠. 그러고 나서는 오른쪽 발과 다리가 왼쪽보다 항상 2배 크다는 얘기, 2차례의 수술을 했다는 얘기도 이어서 썼습니다. 그리고는 덧붙였지요. ‘신체활동을 좋아하는 아이이니 아이의 놀이를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요. 다만 한가지, ‘공놀이를 할 때 오른발로는 공을 차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만 알아주면 좋겠다’고도 썼어요. 그렇게 한 장짜리 문서를 따로 만들어서 담임교사에게 전달되는 문서, 그리고 학교 간호 선생님에게 전달되는 문서에 각각 클립으로 끼워 함께 제출했습니다. 개학 첫 날, 담임 선생님과 면담하는 시간에 다시 얘기해야겠지만, 일단 그 전까진 또 잠시 잊고 있어도 되겠죠.
KT에 대해 설명하는 문서를 쓰는 내내, 머릿속에는 그림책 한권이 맴돌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발을 가진 발레리나, 벨린다의 이야기였죠. 벨린다는 발레리나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었어요. 춤추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았죠. 하지만 벨린다가 오디션을 보러 무대에 오른 순간, 심사위원들은 벨린다의 춤은 보려고 하지도 않고 벨린다의 커다란 발만 보고 소리쳤습니다. “무슨 발이 저렇게 크담! 커다란 보트랑 맞먹는군!” “그런 발을 가지고서는 절.대. 무용수가 될 수 없어!” 하고 말이죠. 크게 낙담한 벨린다는 그렇게 좋아하던 춤추기를 한순간에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식당에 취직해 음식을 나르고, 상을 치웠죠. 하지만 벨린다는 결국, 발레리나의 꿈을 이루고 맙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요? 그건 바로, 벨린다의 그 커다란 발, 발 덕분이었습니다.
케이티의 발, 그 커다란 오른발은 벨린다의 발보다도 더 크고, 울퉁불퉁, 못난 게 사실이에요. 수술을 해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이의 오른발은 한 눈에 보아도 엄청나게 커요. 처음 보는 사람들은 어쩌면 인상을 찌푸리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가지런하지 못한 수술자국, 그 자국을 따라 길게 볼록 올라온 흉터,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보랏빛 얼룩, 그리고 들쑥날쑥 제각각인 발가락까지. 여름에 반바지에 샌들을 신겨 밖으로 나갔을 때 간혹 만나게 되는, 당혹스러운 그 눈길을, 우리 세 식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놉니다. 친구들이 빤히 쳐다보면 “그렇게 보지 마!” 하고 자기 변호를 할 줄도 알고, 또 때로는 바닥에 주저앉아 서슴없이 발을 꺼내 보여주기까지 하면서요. 그 발로 놀이터를, 시냇물을, 모래밭을 헤집고 다니고, 또 그 발로 퀵보드에, 자전거에 올라 온 동네를 누비면서요.
벨린다처럼, 케이티 역시 그 커다란 발을 가지고도 사뿐히 날아 빙글빙글, 춤을 추며 살아갈 거예요. 노래하고 춤추기 좋아하는 아이에게, 아이의 춤, 춤 출 때의 아이 표정은 보지도 않고 무작정 ‘그런 발로는 절.대. 춤을 출 수 없어!’ 하고 말하는 어른들만 없다면 말이에요. 물론, 그런 어른이 있다 해도 괜찮아요. 벨린다가 그랬던 것처럼, 케이티 역시 다른 사람의 말에 상처를 받더라도, 또 언젠가는 그런 무례한 말 따윈 “눈꼽만큼도 신경 안 쓰는” 날이 올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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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발레리나 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