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엘이 의논할 일이 있다고 했다.
동네 미장원에서 유기묘 한 마리를 보호하고 있는데
자신이 데려와 키우고 싶다는 것이다.
아파트에서 반려동물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냐며
곧바로 반대하자 다엘의 설득이 시작됐다.

희귀종 고양이인데 자신이 키우지 않으면 또 버려질 거라면서
불쌍하지도 않냐는 거였다.
이미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 미장원 주인은
다엘이 너무 좋아하니 ‘네가 키워보라’고 했단다.
다엘의 할머니는 이 말을 듣자마자
고양이라면 너무 싫고 자신의 천식증상 때문에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다엘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인터넷 검색을 하여 
알러지 예방법을 할머니께 읽어보시라고 들이밀었다. 
급기야 할머니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후 다엘의 눈물바람과 고양이 키우기에 대한 집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심지어 이모 집에 데려다 놓고 자신이 키우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이모네 역시 결사반대를 했다.

대체 어떤 고양이인지 궁금해서 미장원에 살짝 가봤다.
처음 본 순간,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귀엽고 작은 고양이를 상상했는데 
이 녀석은 커도 너무 크다!
게다가 털은 평생 본 적도 없는 어두컴컴한 빛깔에 저 눈빛은 또 뭔가.
노랑도 녹색도 아닌 눈이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고양이3.jpg » 다엘이 사랑에 빠진 고양이

이런 고양이를 키운다고? 절대 안돼.
마음 속에서 급박한 외침이 맴돌 무렵
다엘이 고양이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써서 보여주었다.

'벵갈고양이:
아프리카 밀림의 치타를 축소한 듯한 외모로 시선을 끈다.
근육질의 와일드한 외모로 남자 애묘인에게 인기가 더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중적이지 않으나 확실한 마니아층을 가진 품종이며
호피 문양의 털에 일반 고양이보다 크기가 다소 크다.
잘 길들여지는 성격 때문에 
강아지처럼 장난감을 물어오게 하는 놀이도 가능하며
주인이 말을 시키면 대답을 하듯 소리를 낸다.
물을 좋아하고 훈련 여부에 따라 목줄을 맨 채 산책도 할 수 있다.'

오, 이런 반전이 있군!
고양이 종류 중 사람에게 가장 잘 길들여진다니
나도 점차 맘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고양이 말고도 최근에 있었던 일련의 일들로 인해
다엘의 마음 속 상처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졸업여행을 가면서 집 떠나는 불안만으로도 힘들었는데
자신이 아끼던 유아용 매트리스를 할머니가 내다 버린 걸
돌아와 발견하고는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이후 수학수업이 힘들다고 등교를 거부하거나
독후감 숙제 때문에 짜증내던 일,
6학년이 되면서 학업에 초점을 맞추는 학교 분위기에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쭉 지켜보며
나도 몹시 지쳐 있었다.
결국 벵갈 고양이에 꽂힌 아이의 마음에 
나는 깊이 감정이입을 하게 됐다.

고양이와 함께 할 수 있고
학업에 방점 찍지 않고, 몸 많이 놀리고,
경쟁하지 않는 학교는 없을까?
딱 한 곳이 떠올랐다.

농부철학자 윤구병 선생님이 변산에 세운 학교.
자급자족의 공동체 안에서 
학비도 없고 시험도 없이
매일 3시간 공부하고 3시간 놀고 3시간 일하며 성장하는 곳.

다엘의 분리불안을 생각하면
꿈도 꿀 수 없는 학교였지만
만일 고양이와 함께할 수 있다면?
초기에 내가 같이 있어주면서
서서히 다엘이 그곳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3년 전 오랜만에 윤구병 선생님을 만났을 때
다엘의 행복을 위해 변산으로 오라던 말씀에도
나로선 너무나 까마득한 일이었다.

그러나 벵갈 고양이가 가져온 일상의 혼란은
서서히 삶의 재편성 쪽으로 정리되고 있었다.
먼저 다음 주말에 3박 4일 일정으로 
변산공동체 체험을 하러 가기로 했다.
그곳에 전화하여 준비물이 무엇인지 문의하니
일할 때 입을 옷, 헌 운동화, 모자, 손전등,
칫솔, 수건만 있으면 된단다.

다엘의 학교 졸업생들이 
변산공동체학교에 가서 지냈던 경험을 들려준 적이 있었다.
식사로는 풀만 나오고 화장실은 푸세식이라고.
다엘에게 그런 상황도 괜찮겠냐고 물으니 
선배들이 한 가지 중요한 얘길 했단다.
그곳의 장점이 있는데 바로 자유롭다는 것.

그래, 가장 중요한 거네.
자유롭다는 것….
자연 속에서 뛰놀고 농사짓는 거, 네가 정말 좋아하잖아.

문제는 나다.
평생 나고 자란 도시를 뒤로 하고 시골생활을?
흠…가능할까? 

‘고양이의 저주’라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지금 상황은 반대라고 믿어본다.
벵갈 고양이의 축복이 이미 시작됐으니
어떤 결론을 내리든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교사 초임시절 모임에서 맺은 윤구병 선생님과의 인연이
부디 아름답게 이어지길 바란다.

구병샘과 다엘1.jpg » 3년 전 윤구병 선생님과 함께 한 다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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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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