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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풍경 하나 있기 마련이다.

그 풍경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해지고, 그 안에 깃들어 있으면 행복해지는 그런 풍경.

내게도 오래전부터 간직해 온 그런 풍경 하나가 있었다.



숲이다.

사방이 싱그러운 신록이다. 때는 초여름, 아니면 무르익은 봄일까.

나는 그늘이 풍성하고 서늘한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있다.

내 양쪽 팔에 한 명씩 아이들이 안겨 있고, 다리 사이에는 막내 아이가 앉아 있다.

나는 손으로 두 아이의 머리칼이며 어깨를 쓰다듬고, 가슴으로 막내 아이를 따스하게 품어준다.





우리는 그렇게 같이 앉아 머리칼 사이로 내려앉는 햇볕이며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기도 하고, 작은 소리로 소근 거리며 웃기도 한다.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남편은 곧 우리에게 다가와 곁에 앉을 것이다.

넓은 팔로 우리 모두를 안으며 같이 숲의 기운에 안겨 있을 것이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시절, 몸은 늘 고단했고 책상위엔 처리해야할 서류들이 많았다.

사정이 어려운 어르신들의 사연들이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고, 다 도울 수 없다는 것에

무력감을 느끼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소진되어 가는 것을 느낄 때

나는 책상위에서 잠시 눈을 감고 내 마음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바로 나는 그 풍경 속에 풍덩 뛰어 들 수 있었다. 구석구석 선명했다.

오래 오래 상상하며 정교하게 다듬고 꿈꾸어 왔던 풍경이기에

떠올리기만 하면 바로 거기에 있을 수 있었다.

숲의 냄새와 내 아이들의 살 냄새를 생생하게 맡을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이 전해주는 부드럽고 따스한 온기와 내게 기대고, 나를 의지하고

나를 사랑하는 그 고운 마음들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편안해지고, 행복해졌다.



지금 나는 일에서나 사랑에서나 경제적 안정에서나 어느 곳 에서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젊음이지만 언젠가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내 아이들과 행복하고 충만한 시간들을 보내리라.

그 꿈을 놓아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세 아이였다.

왜냐고 묻는다면 설명할 수 는 없지만 나는 세 아이여야 했다.

셋이란 숫자는 내게 안정과 완성을 의미한다. '둘'은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셋'은 반듯하고, 굳건하고, 완전했다.

내겐 그랬다.

사랑하는 남편과 세 아이..

그것이 내가 이루고 싶은 미래였고, 살고 싶은 삶이었다.



2002년 1월의 마지막날..

지금의 남편과 처음으로 제대로 데이트라는 것을 했을 때,

나는 또 한번 의 짧은 연애를 마쳤을 때였고 남편 역시 사귀던 사람과 헤어진 때였다.

우린 형부의 동료와, 동료의 처제로서 알고 지내던 사이에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겪고 있는 서로를 위로해 주자며 만나기로 했다.

그 밤에 남산타워 회전 식당 테이블에 앉아 아주 천천히 불빛으로 빛나는

서울의 밤 풍경이 우리 사이로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며

우린 처음으로 길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늙어가는 부모에 대한 애잔한 근심들, 나이가 꽉 차도록 제 사람 하나

만들지 못하며 살아온 젊음에 대한 고민들,

그러나 마음속엔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미래에 대한 조심스런 기대들을 꺼내 놓았었다.



'이다음에 결혼하면 아이는 몇명이나 두고 싶어요?'

'적어도.. 셋은 되야하지 않을까요?'



거기서 나는 다시 세 아이를 만났다. 남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꿈의 일부가

내 것과 같다는 것이 반갑고 설레었다.

그날, 남편이 내 마음에 성큼 들어왔고, 우리는 5개월 후에 부부가 되어 있었다.



2002년 6월에 결혼해서 2003년 6월에 필규를 낳았고, 2007년 3월에 윤정이를 낳았다.

나는 양 손에 한명씩 아이들을 안고 영화를 보고, 그림책을 읽었다.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그리고 윤정이의 27개월간 이어진 수유를 마치면서 자연스럽게 셋째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서른 아홉인 내 나이를 걱정했고, 4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남편의 경제적

능력을 염려했지만 내게 셋째 아이란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상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무모한 선택이 아닌 내가 가장 이루고 싶었던 내 오래된 꿈을 완성하는 존재였다.

셋째 아이로 인해 비로소 내 삶은 완전한 균형을 이룰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믿었다. 필규와 윤정이를 낳을 때에도 경제적인 것을 염려해 본 적은 없다.

키우는 동안에도 그랬다.

어려워지면 어려워지는 대로 아이들을 키울 것이다.

삶으로 온 생명은 경제적 계산이나 그 아이에게 들어가야 하는 자원들의

총합이 아니다. 글로, 말로, 숫자로 결코 설명하고 계산되어질 수 없는 신비와 축복이다.

시들었던 가슴이 다시 달콤한 젖으로 부풀어 올라 또 한명의 생명을 키우고,

다시 처음처럼 고물거리는 무력하고 뜨거운 어린것을 품고, 그 아이의 모든 것을

눈과 마음에 담으며 손톱만한 변화에도 기뻐하고, 감동하며, 울고, 웃는 날들이



다시 내게 온다는 것은 어느 것 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적이다. 감사다.



2009년 봄에 셋째가 내게 왔다는 것을 알았다.

태명을 ‘이룸이’라고 지었다.

내 오랜 꿈, 내가 오래 마음속에 품어왔던 풍경을 비로소 이루게 하는 아이,

그래서 '이룸'이다.

필규랑 윤정이 맞을 준비를 같이 해 왔던 것처럼 이번에는 필규, 윤정이랑 같이

동생 맞을 준비를 하며 우린 열 달을 같이 보냈다.

그리고 2010년 1월의 마지막 날, 나는 그토록 기다리던 셋째를 만났다.

필규와 윤정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룸이는 꼭 마흔이 되는 내 몸을 열고 나왔다.

40년의 삶이 완성되는 놀랍고 벅찬 선물이었다.

태명이 ‘이룸이’였던 셋째는 태명 그대로 ‘이룸’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최 이룸’이다.



요즘 나는 다시 엄마의 날들을 살고 있다.

젖은 기저귀를 갈아주고, 수시로 젖을 물리고, 아이를 안고 동동거리며

집안을 돌아다니고, 널을 뛰듯 이 아이에게서 저 아이에게로 뛰어 다니며

살림을 한다. 정신없이 바쁘고 고단하다. 그래도 행복하다.

젊은 날에 품었던 꿈을 모두 이루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지금 내가 그 시절에 품었던 그 꿈을 살고 있다.

이것이 정말 큰 축복이고 행복이란 사실을 늘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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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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