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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다섯살인 둘째 윤정이를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윤정이의 긴 머리에 감탄한다.

그리고 놀란다. “태어나서 한 번도 안 잘랐다구요?” 하면서 말이다.

맞다. 3월 5일에 만 4세가 되는 윤정이의 머리는 태어나서 이제껏 한 번도 자르지 않았다.

배냇머리부터 고스란히 길러온 머리라는 뜻이다.



윤정이는 예정일보다 보름이나 일찍 태어났다.

첫 아이 필규는 출생 당시 4. 1킬로였는데 윤정이는 3킬로를 조금 넘었던 작은 아이였다. 머리카락도 거의

없이 태어났다. 백일 때 찍은 사진도 남자아이처럼 보였을 정도다. 그런데 돌이 지나면서부터

머리카락은 빠르게 자라났다. 14개월 때 처음으로 뒷머리를 묶었는데 그 뒤로도 머리는 쑤욱~ 쑥~

자라났다.



처음부터 이렇게 길게 머리카락을 길러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다만 여자애니까 짧은 머리보다는 긴 머리가 이쁘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었다.

아들을 먼저 낳고 그 다음에 얻은 딸이어서 아들과는 달리 긴 머리를 빗겨주고 묶어 주고 하는

일들이 주는 소소한 재미가 크기도 했었다. 이쁘게 빗겨서 앙증맞은 핀이나 끈으로 꾸며주고 나면

같이 외출할때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딸아이 머리를 빗겨주고 이쁘게 꾸며주면서 여자로 태어났지만 늘 궁핍했던 살림 속에서 마음껏

꾸미거나 치장해본 일이 없이 자랐던 내 어린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대신 채우고자 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딸의 머리카락에 갖는 내 애정은 그 정도가 고작이다.



매일 다른 모양으로 빗기는 재주도 없었거니와 무엇보다 게으른 내 성격에 이것 저것 시도하는 것도

귀찮아서 윤정이 머리는 늘 양갈래로 땋거나 묶거나 하나로 묶어 주고 만다. 머리에 하는

악세사리도 센스 좋은 이모들이 선물해주거나 솜씨 있는 이웃들이 만들어 주는 게 더 많다.

윤정이의 머리카락은 거침없이 자라고 또 자라났다. 처음엔 대견하고 이쁘고 신기했는데

머리칼이 길어짐에 따라 어느새 관리해 주는 일이 만만치 않은 노동이 되어 버렸다.



만 4세가 된 윤정이의 머리카락은 풀어 놓으면 꼬리뼈를 훌쩍 넘어 버린다.

우리 마을에 누구도 윤정이보다 긴 머리를 가진 아이가 없다.

사람들은 윤정이의 머리카락 길이에 놀라고, 고작 4년 기른 머리가 이렇게 길다는 것에 또 놀란다.

윤정이처럼 잘라주지 않고 계속 기르는 아이들도 몇 있는데 어떤 아이도 윤정이만큼 자라지 않는다.

먹는 것이 다 머리칼로 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3월에 태어난 윤정이는 몸도 또래보다 크고

건강한 편이다.



머리카락이 너무 긴데 좀 잘라주라고 권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떻게 관리해 주냐고 이젠 머리카락을 좀 자르라고 야단들이다. 물론 관리해주는 게 힘들기는 하다.

윤정이 머리카락 한 번 감기려면 큰 맘 먹어야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말리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부모라도 아이의 신체에 관한 일을 맘대로 결정할 순 없다. 더구나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은 무엇보다 본인이 원해야 가능하다.

윤정이는 제 머리를 아주 좋아한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제 머리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을

즐긴다. 스스로 “한 번도 안 잘랐어요” 먼저 말하기도 한다. 긴 머리를 자랑스러워 하고

제 머리에 쏟아지는 사람들의 관심을 좋아하는데 관리하기 귀찮다고 내 맘대로 자를 순 없다.

부모에 따라서는 아이들 외모에 대한 결정을 부모가 하는 사람들도 많다. 키우기 나름인지라

그런 아이들은 또 부모의 뜻대로 머리 모양도 바꾸고 옷도 잘 입는다.

우리는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어릴 때에도 머리는 어떻게 하는 걸 원하는지 옷은 어떤 걸 선택해서

입고 나갈 건지 아이들에게 물어서 결정했다. 아이에게도 취향이 있고 기호가 있을 터인데

그걸 존종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외출할 때마다 보통 일이 아니긴 하다.

특히 윤정이는 머리 한번 손 보려면 마음속으로 참을 인자를 수없이 써야 한다.

빗고 있는데 움직이고, 묶고 있는데 고개를 돌리는 일부터 머리끈 고르고, 리본 고르는 일도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매달리는 이룸이 울려가며 머리를 빗기고 나면 주름살이 팍팍 는다.

해 놓고나면 이쁘지만 이룸이까지 언니처럼 기르겠다고 하면 일찌감치 구슬러야 하지 않을까,

고민 중이다.



우리 동네의 라푼젤이자 긴머리 소녀인 윤정...

언제까지 머리카락을 기를지 아무도 모른다.

머리카락을 빗을 때마다 엉키고, 아프고, 힘들어서 징징거리면서도 빗기고 나면 좋아서 거울 앞에서 으쓱거리니

아직은 자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엉덩이를 넘어서 허벅지를 지날 때까지도 머리카락을 기를까?

말로는 학교에 들어갈 때 확 자른다고 하지만 만 4년을 빗겨온 머리라 어느새 나나 남편에게도

윤정이의 긴 머리카락은 너무도 익숙해서 어느날 불쑥 자르겠다고 선언해 버리면 우리가 더

놀라고 아쉬울 것 같다.



그래, 그래...

이렇게 길고 이쁜 머리카락을 가진 잘 웃는 여자 아이가 내 딸이 될 줄은 몰랐지.

그걸로도 어떤 불평을  해서는 안되는데...

언제까지 기를지는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서 손질해줄께... 이것도 다 어린날의 추억일테지...

그런데... 정말...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머리카락을 감아야 하지 않겠니?

머리카락을 기르는 건 좋아하고 감는 건 싫어한다는 건 너무하다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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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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