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규 11.jpg 

 

'엄마, 저 오늘 수학 숙제 있어요'

학교에서 돌아온 필규가 내게 말했다.

숙제가 드믄 대안학교에서 오랜만에 내준 과제인 모양이다.

'그럼 저녁 먹고 숙제 해야겠네. 니 숙제 다 끝날때까지 동생들보고

영화보는거 기다리라고 할께'

아들은 고개를 끄덕하더니 오늘따라 왠일인지 저녁먹고 바로 방으로 들어간다.

책상보다는 놀이를 하는 작업대로 주로 쓰이는 녀석의 책상이 모처럼 본래의

기능을 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아이나다를까.. 잠시 후에 아들의 짜증섞인 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도와주세요!'

들어가보니 '7 곱하기 7이 뭐예요?' 묻는다.

숙제로 풀어가야 하는 문제지를 힐끗 보니 두자리수와 한자리수의 곱셈 문제들이

앞 뒤로 실려 있다.

녀석은 구구단을 올 여름에서야 다 외웠다. 그러나 여전히 중간에 물어보면 자주 막히곤 한다.

 

설거지를 하다 달려온 나는 아들의 질문 내용에 살짝 짜증이 났지만 애써  감추고

'7단 처음부터 외워봐' 했다.

'아이, 그럼 뭐하러 오셨어요. 7곱하기 7이 뭐냐구요?'

이 녀석.. 숙제를 날로 먹을 생각인 모양이다. 구구단 중간을 모르면 처음부터 해야하는 것이

당연한것을 그런 수고를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외워야 7곱하기 7이 뭔지 알 수 있지. 아니면 7을 일곱번 더해보거나..'

'그게 뭐가 도와주는거예요. 7을 일곱번이나 어떻게 더해요.  제 숙제 어려우면 도와주신다고 했잖아요'

아들은 더 언성을 높인다.

'7곱하기 7을 모르면 7단을 처음부터 외워보거나 그래도 모르면 일곱번 더하는 수밖엔 없잖아.

니가 모르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려줄 순 있어도 답을 말해줄 순 없어. 니가 모르는 것을 엄마가

척척 답해주면 그건 엄마숙제를 하는거지, 니가 하는게 아닌게 되는거야.

엄마 숙제 아니니까  니가 알아서 해'

나는 쌩하니 나와버렸다.

아들은 펄펄뛰며 엄마는 도와준다고 했으면서 또 거짓말이었다는 등, 맨날

도와주지도 않는다는등, 이걸 나 혼자 어떻게 하냐는 등 난리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모른척하고 설거지를 했다.

 

올해 나이 열 한살, 4학년..

구구단을 여름방학에서야 떼고 이제 겨우 두자리수와 한자리수 곱셈을 배우는 녀석이다.

내가 보통 엄마였다면 초등학교 4학년 성적이 중, 고등학교를 좌우한다며 긴장해서

성적을 관리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매일이 천하태평이다.

싫증날때까지 학교에서 놀다 오고, 집에 와선 제가 좋아하는 책을 보거나, 방에 틀어박혀

무언가를 조립하고 만들거나, 아니면 마당에서 최근에 태어난 강아지들을 주무르며

보낸다. 일반적인 4학년 아이들이 무얼 배우는지 나 역시 잘 모른다.

다만 아들의 수준이 보통 초등학교 4한년 아이들보다는 많이 떨어진다는 것 만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 일반학교를 다닐때 어쩌다 수학숙제가 나오는 날은 집안이 뒤집어 졌다.

아들은 숙제를 하기 싫다고 펄펄 뛰었고, 도와주려고 해도 무조건 모른다며 떼를 쓰곤 했다.

그럼 숙제를 해 가지 말아라 하면 숙제안하고 오면 벌로 쓰레기를 백개나 주워야 한다며

울곤 했다. 숙제도 싫고, 벌도 싫고, 수학은 재미도 없고, 어렵고, 자기가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며 생난리를 부렸다. 옆에서 가르쳐 주려고 해도 제 머리를 전혀 쓸 생각이 없는

아이한테 도움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다보면 나도 쉽게 인내심을 잃고 소리를 지르게 되고, 우린 번번이

서로를 비난하며 싸우는게 다반사였다.

 

대안학교로 옮긴 후에는 숙제의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었다.

숙제가 별로 없거니와 어쩌다 있는 숙제도 아들의 능력을 벗어나는 것들은 없었다.

기분좋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들이었고, 아들도 선생님과 한 약속을 스스로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쉽게 짜증을 내고 조금만 어려워도 신경질을 내는 건 여전하지만

예전처럼 막무가내로 숙제를 거부하는 일은 없었다. 남편과 나는 그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라고 생각했다.

 

이날 필규는 책상앞에 진득하니 붙어 앉아 기어코 제 힘으로 문제지 한 장을 풀었다.

중간에 두 어번 제가 한 것이 맞는지 틀리는지만 얘기해 달라고 하기에 그 정도만

보아준게 다였다.

처음엔 짜증내고 안 도와준다고 화를 내기에 이번 숙제도 제대로 해 가긴 글렀구나..

했었는데 그래도 처음에 화낸후엔 다시 짜증을 부리지 않았다.

그리고 오십여 분 만에 숙제를 다 끝내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제 방에서 나왔다.

신이 나서 동생들과 영화를 보고 있는 아들을 보고 있으려니 감회가 새로왔다.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지만 내겐 정말 뿌듯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싫어하는 수학숙제를 엄마의 도움 없이 저 혼자 책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해 냈다는 것은 예전에는 정말 볼 수 없는 모습이다.

학생수가 적고, 교사와의 관계가 밀접한 대안학교에서의 숙제는 아이와 선생님과의

약속이다. 안 해가도 벌점을 얻거나 야단맞진 않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결과는

본인이 다른 노력으로 꼭 책임지게 한다. 그런 과정속에서 필규는 서서히 아주

더디게 제게 주어진 과제를 제가 책임지고 해 내는 법을 배워왔다.

처음엔 짜증도 많이 부리고, 안 해가기도 하고, 쉽게 잊어버리기도 했는데

이젠 내가 챙겨주지 않아도 제가 스스로 숙제를 기억하고, 확인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 가게 된 것이다. 대안학교 들어와서 1년 하고도 한 학기가 더

지난 다음에야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열한 살에 이 정도의 과제를 제 스스로 하는 것은 보통 아이들이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쉽지 않았다.

남들에겐 대수로울것이 없는 일을 아들은 늘 멀고, 힘들게 해 왔다.

'왜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요? 왜 숙제를 하는건데요?

저는 하기 싫어요. 하기 싫은 것을 왜 해야하는데요?'

너무 당연해서 질문할것도 없다고 여기던 것들을 아들은 아홉살때부터 내게 물었다.

따지고 항의했다. 반발하고 거부하고 화를 냈다. 나는 끝내 아들을 설득시킬 수 없었다.

스스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은 것을 어른의 권위로 아들에게 강제할 능력이

내겐 없었다. 숙제를 더 빠른 시간에 더 완벽하게 해 내는 것을 고민해오던 내게

아들의 질문들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길, 새로운 배움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품게 되고, 그 길을

찾게 되면서 아들도 나도 우리 가족도 많은 새로운 경험들을 해 왔다.

지금도 나날이 새로운 도전이다.

 

남들이 열 걸음, 백 걸음을 가고 있다고 해서 조바심 내지 않는다.

내 아이가 이제서 겨우 대 여섯 걸음 나가고 있는 것이 소중할 뿐이다.

이렇게 더디게 나가서 끝내 남만큼 가지 못한다 해도 할 수 없는 것이고

그만큼 느리게 가다보면 또 새로운 풍경을 만날지도 모른다고 여기고 있다.

지금은 이렇게 쉽게 얘기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하진 못했다.

나 역시 기대만큼 따라주지 못하는 아들에게 안달하고, 실망하고, 비난하고,

화 내면서  다그치고 야단쳤던 평범했던 엄마였다.

그랬던 내가 이만큼까지 생각이 바뀐 것도, 아들이 열 한살 2학기에 제 스스로

수학 숙제 한 장을 다 푼것 만큼 대견한 일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도 한참 멀고 또 아득하겠지.

그렇지만 예상할 수 없는 풍경들이 있으니 지루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수학 숙제 한 장 푼 아들을 보며 기쁘고 행복하다.

여기까지 오느라 애 썼구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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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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