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jpg

 

어린시절엔 나물이 맛있는 줄 몰랐다.

계란 후라이나, 김이나,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빨간 소세지가 맛있었지

맨날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시니 콩나물, 콩자반, 멸치볶음 같은 것은 정말 싫어했다.

부잣집 아이들 중에는 그 시절에 귀했던 스팸같은 것을 구워 오는 아이도 있었는데

내겐 꿈의 반찬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집 엄마는 도시락 반찬 만드는 일이 얼마나 간단했을까.

캔에 들어 있는 것을 잘라서 굽기만 해면 됬으니 말이다.

철이 없던 나는 인스턴트 햄 반찬은 부럽고, 우리 엄마가 양념에 볶고 무치고 해서

만들어준 반찬은 시시해 보였다.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햄하고 소세지는 실컷

먹어야지.. 생각 한 적도 있었다.

 

나물이 좋아진 것은 어른이 된 다음이었다.

몸과 건강에 관심을 가지게 된 다음부터 인스턴트 음식이 얼마나 안 좋은가를 배우게 되었고

우리몸에 제일 좋은 음식이 바로 사철 다양하게 나오는 나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직장이었던 노인복지회관 식당엔 다양한 나물 반찬이 매일 나왔다. 어르신들이 이용하는

시설이었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유채나물, 하루나 나물, 취나물, 시금치와 콩나물도 그렇게 맛날 수 가 없었다.

깻순을 볶아서 만든 나물이나 고비나물도 입에서 살살 녹았다.

어르신들의 건강을 위해서 화학 조미료는 절대 넣지 않고 천연 양념만으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을 모아 만들어내는 음식었으니 더욱 맛있었을 것이다.

 

서른셋 늦은 나이에 결혼했을때도 조미료는 아예 부엌에 들이지도 않았다.

건강한 재료만 써서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야지.. 결심했던 것이다.

그런데 반찬 만드는 일이 정말 어려웠다.

늘 먹던 콩나물인데 내가 만들면 그 맛이 안 났다.

시금치나물도 고사리나물도 맛있게 만들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불고기나 갈비 같은 것은 요리책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맛이 나는데

매일 먹는 나물맛은 쉽게 낼 수 가 없었다.

 

나물이 맛있으려면 뭐니뭐니해도 제철에 나는 싱싱한 재료를 구해서

잘 삶아야 한다. 너무 삶거나 덜 삶으면 갖은 양념을 해도 맛이 없었다.

얼마나 삶아야 잘 삶아진 것인지는 책만 봐서는 알 수 가 없었다.

살짝 삶아야 되는 나물이 있고, 오래 무르게 삶아야 하는 것도 있고

묵은 나물은 몇 번이고 물에 우렸다가삶아서 다시 우려내야 하기도 했다.

자주 해 먹지 않으면 그 감을 익힐 수 가 없는 음식들이었다.

 

시금치 나물을 맛있게 만들 줄 알기까지 5년 걸렸다.

적당히 삶고, 참기름과  파, 마늘, 천일염으로 적당한 간을 맞춘 시금치 나물은

내가 먹어도 정말 맛있었다.

콩나물도 맛있게 하는데 그 만큼의 세월이 걸렸다.  멸치 육수를 조금만 넣고

소금 넣에 데쳐서 까나리 액젓 슬쩍 넣어 들기름과 파, 마늘로 무치는데

아주 맛나다.

 

결혼 10년 쯤 되니까 묵은 나물도 제대로 할 줄 알게 되었다.

미지근한 물에 불렸다가 끓는 물에 20분 정도 삶아서 다시 물에 한참 담그었다가

꼭 짜서 조선간장과 소금, 마늘, 파를 넣고 무친 후 팬에 달달 볶다가

멸치 육수를 넣고 뚜껑을 닫아 푹 익혀내면 부드럽고 맛있는 묵 나물이 되었다.

 

주말엔 남편이 울릉도 출장길에 사온 부지갱이 나물을 볶았다.

눈 속에서 싹이 난다는 부지갱이 나물은 을릉도의  특산물인데

이제까지 먹어보았던 묵나물 중 가장 맛있었다.

 

야채를 별로 안 좋아하는 필규도 맛있다면 나물로만 밥 한 그릇을 먹었고

처음엔 '우왝' 하던 이룸이도 그야말로 아구아구 맛있게 먹었다.

 

  이룸 8.jpg

 

나물로만 맛있게 밥 먹는 아이를 보는 마음이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지..

 

결혼 11년차가 된 나는 이제 나물이 제일 자신있는 음식이 되었다.

불고기나 갈비같은 일품요리는 지금도 요리책을 보고 레시피를

확인해야 만들 줄 알지만 매일 먹는 나물은 재료만 있으면 척척 만들어 낸다.

아이들도 엄마가 만든 나물을 맛있게 먹어주니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지만

나물반찬 만드는 재미가 크다.

 

그러면서도 늘 짜장면, 피자, 갈비가 더 맛있다고 입을 모으는 아이들이지만

어렸을때부터 제일 많이 먹은 음식을 몸은 기억할 것이다.

머리로 생각하던 음식이 사실 몸에 좋지도 않고, 자주 먹기엔 질리는 맛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평범한 일상에서 자주 밥상에 오르던 갖가지 나물맛이

그리워질 것이다.

 

어쩌다 한 번씩 먹는 특별한 음식엔 서툴지만 늘 먹는 음식은 잘 할 수 있는 주부..

그런 주부가 되는데 10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여전히 큰 행사 한 번 치루려면 정신없고, 손이 느려 오래 걸리고, 정리하는데

서툴러 부엌이 엉망이 되고 말지만 그래도 아이들이랑 매일 맛있는 반찬

만들어 먹어가며 살림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10년 세월이 그냥 간게 아니구나.. 생각한다.

 

날이 더워진다. 가스불 앞에서 음식 만드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계절이지만

음식을 만드는 일은 내 가족을 살리는 일이니 힘들어도 소홀할 수 없다.

가끔은 꾀도 나고, 외식하자고 남편을 꼬드길때도 있지만 그래도 조물 조물

나물을 무치는 일은 행복하다.

얼마나 더 살림을 해야 모든 음식이 겁 안나고, 자신있게 척척 해낼 수 있을까..

세월보다도 얼마나 자주, 기쁘게 하느냐에 달려있겠지.

늘 엄마가 만드는 음식을 환영하고 잘 먹어주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아이들과 마누라가 차려주는대로 타박않고 먹어주는 남편덕도 크구나.

 

그러니까 기운내서 또 만들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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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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