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 3.jpg

 

토요일 오전... 늦은 아침을 먹고 난 다음이었다.

강릉에 있는 시어머님과 전화 통화를 오래 하면서 어머님이 너무 힘드신것 같아

함께 속상해 하다가 전화를 끊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어질 어질해 지는 것이었다.

온 몸이 힘이 빠지면서 세상이 빙글 빙글 도는 것 같았다.

서 있을 수 도 없어 주저 앉았다. 왜 이러지, 왜 이러지?

평소에 어지러운 증세가 전혀 없던 터라 몹시 놀랐다.

눈을 뜨면 더 어지럽고, 고개를 떨구면 더 어지러웠다.

'여보, 나.. 이상해. 너무 어지러워. '

남편은 수리 맡긴 카메라를 찾으러 아이들을 데리고 막 강남으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어지러운 것은 계속 되었다.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는데 눈만 뜨면 너무 어지러워 속이 다 울렁거렸다.

겁이 덜컥 났다.

빈혈이 있는건가? 귀에 무슨 이상이 생겼나? 달팽이관에 이상이 있으면 어지럽다고 했던가?

아니면 혹시 무슨 중대한 속병이 생겼나? 이렇게 갑자기 어지러운 것이 분명 정상은 아닐텐데..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병원에 가야할까?

 

정 몸이 계속 힘들면 응급실에라도 가보겠다고 얘기하고 어린 딸 둘을 딸려서 남편을 내보냈다.

큰 아이는 엄마와 집에 남겠다고 했다.

레고에 열중하는 아들에게 말하고 우선 침대에 누워 쉬어보기로 했다.

한 숨 자고 나면 좋아질것을 기대한 것이다.

 

몸은 힘이 하나도 없이 무거웠다. 온 몸에 기운이 몽땅 빠져 나간 기분이었다.

물 젖은 솜처럼 누워 어지러움을 계속 느끼며 좀처럼 오지 않는 잠을 청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정말 무서운 꿈을 꾸었다.

 

남편이 아픈 나를 차에 싣고 온 가족이 다 함께 병원에 가는데

내 눈이 자꾸 감기더니 마침내는 아무리 애를 써도 눈이 떠지질 않는 것이었다.

'여보, 나, 왜이래. 눈이 안 떠져!'

'이런... 정말 큰 일 났나보다' 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점점 작아지더니그냥 웅웅 거리는 소리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더욱 겁에 질려서 '여보. 당신 목소리도 잘 안 들려. 나 왜 이러지?' 소리를 질렀다.

나중에는 목소리까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미친듯이 눈을 뜨려고, 말을 하려고 몸부림쳤다.

끔찍하게 무서웠다. 숨이 막혀 오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꿈에서 깨어 났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렸는데 침대 옆에 서 있는 책상 다리가

울렁 울렁 거리며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서웠다.

벌떡 일어났다. 기분 나쁜 땀에 촉촉히 베어 있었다.

어지러움이 가신건 아니지만 조금 덜 해 있었다.

그러나 꿈에서 느낀 무력감과 공포감은 여전히 나를 무섭게 옥죄고 있었다. 

 

요즘 너무 피곤했던가?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계속 무기력해 있었는데 체력이 너무 떨어진걸까?

아니면 정말 어딘가 많이 안 좋은 걸까? 정말 크게 아픈거면 어떡하지?

약해진 마음은 금방 흔들렸다.

꿈 속에서처럼 눈도 안 떠지고, 귀도 안 들리고, 말도 안 나오면 어떻해 하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은... 내가 아픈 것이다.

중대한 병에 걸려 살림도 못하고, 애들도 돌보지 못하고, 나 조차도 돌보지 못하는 일..

그것이 내가 상상하는 제일 무서운 일이다.

애들이 아프거나, 남편이 쓰러지는 건 덜 무섭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살펴 줄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내가 아프면 내 자리는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그건 너무 무서운 일이다.

 

엄마가 어지럽고 몸이 안 좋다고 누워 있을때는 곁으로 다가와 머리도 짚어주고, 손도 주물러 주던 큰 아이는 내가 비척 비척이나마 움직이고 돌아다니기 시작하자 '배 고파요' 했다.

그렇구나..점심때가 많이 지나 있었구나.

도저히 음식을 준비할 엄두가 나지 않아 살살 차를 몰고 근처 까페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아들은 모처럼 엄마와 단 둘이 맛난 음식을 먹는 일이 퍽 행복한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한 손은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어느새 이렇게 손이 든든해질만큼 컸구나.

내 앞에 앉아 있는 열 한살 사내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았다.

몸집은 엄마만큼 커 졌어도 여전히 엄마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는 아들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가슴에 사무쳤다. 나는 정말 오래 오래 앞으로도 오래 오래 건강해야 하는구나.

 

남편은 오후 늦게 돌아왔다.

어지럽다던 마누라가 집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괜찮은 모양이구나.. '안심하는 눈치였다.

찬거리가 마땅치 않아 저녁에 김치볶음밥을 하는데 아침 먹은 것 부터 쌓여 있던 설거지로 부엌은 어수선했다.

두 딸들은 맵지 않게 해 달라고 해서 따로 만들어 먼저 차려주고,

그 다음으로 남편 것을 만들어 내 놓고

아들 것을 차려 주었더니 자기 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계란 후라이를 으깨어 밥에 섞었다고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내 것을 제일 마지막으로 만들어 상에 앉았는데 아들은 그때까지도 계란 때문에 화가 나 있었다.

이다지도 철이 없구나.. 아아..

 

남편도, 아이들도 내가 움직이면 안 아픈줄 안다.

다 나아서, 아무렇지 않아서 움직이는 것이 아닌 것을 잘 모른다.

반 나절 아파 누워 있는 것 만으로도 집안은 금세 난장판이 되고 마는데

내가 정말 많이 아프면 모두 어떻게 할까.

남편은 애들 옷이라도 제대로 찾아 입힐 수 있을까? 아이들 배 고프지 않게 밥 차려 먹일 수 있을까?

머린 긴 두 딸들 머리 간수 해 줄수 있을까? 까탈스런 큰 아이와 싸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까.

 

남편도 아이들도 나를 너무나 크게 믿고 의지하고 있는 것이 가끔은 두렵다.

마흔 넘어 부쩍 힘에 부치는 체력도 겁나고, 아이들이 아직도 너무나 어린 것도 겁나는 때가 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막내는 이제 겨우 네 살..

큰 아이도 둘째도 네살 무렵의 일들은 잘 기억 하지 못하는데

만약 내가 지금 잘 못되면 막내는 엄마에 대한 어떤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까..

이런 방정맞은 생각이 느닷없이 내 발목을 잡아 나를 한없는 두려움으로 떨게 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몸이 조금만 아파도 마음이 한 없이 약해져 버린다.

아팠던 반 나절 동안 정말이지 맘 속으로 수십권의 소설을 썼다 지웠다.

 

하루 자고 일어나자 몸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피곤한거야 늘 매한가지라도 어지러운 것이 사라지니 살 것 같았다.

막내 젖을 떼고 나서 몸의 긴장이 풀어진 것일까, 부쩍 사방 여기 저기가 아픈 것 같이 느껴진다.

써야 할 글도 늘어나고, 이런 저런 모임에도 참여할 일이 많아지는데 체력이 달리는 것 도 같다.

야심착에 시작했던 해독쥬스도 두 달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게을러 지고 있고, 따로 운동하는

시간은 여전히 못 내고 있었던것도 이유가 될지 모른다.

 

건강해지고 싶다.

적어도 앞으로 40년은 더 짱짱하게 살아가고 싶다. 마흔에 낳은 막내가 내 나이가 되어서도

의지할 엄마가 곁에 있을 수 있게, 내 아이들이 낳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명랑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정말 정말 오래 오래 더 오래 살고 싶다.

 

반나절 아프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게을러졌던 해독쥬스도 다시 열심히 챙겨 먹고

운동할 시간도 따로 내리라. 일이 는다고 건강을 잃는 일은 없게 해야지.

그리고 아이들과 남편도 내게 의지하는 것을 조금씩 덜 수 있도록 이끌어 줘야지.

 

우리.. 오래 오래 같이 살자.

엄마만 아프지 말고, 힘든 사람 몫 서로 나누어 도와주면서 오래 오래 같이 가야지.

우린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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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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