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e409ad0d78ee45115c734d827b900df. » 요리하는 남편, 아빠가 해준 고구마 튀김을 맛있게 먹는 딸.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나에겐 ‘아버지’가 없다.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엔 ‘아빠와의 추억’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 이혼하셨다. 엄마는 혼자 힘으로 날 키우시며 가끔 아빠를 만나게 해줬다. 아빠는 만나면 비싼 식당에 가 음식을 사줬다. 그러나 어린 내겐 어색하고 불편한 시간이었다.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나의 하루하루는 어떠한지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남자가 맛난 음식 몇 번 사주고 나들이 몇 번 하고 가끔 선물 주면서  “아빠”라 부르라니. 개뿔. 만나도 도통 할 얘기가 없는데 말이다. 나와 똑같은 코를 가진 그를 보면서 ‘아빠이긴 한가보다’라고 생각했지만, “아빠”라는 호칭은 절대 나오지 않았다.  아빠를 만날 때마다 어색함은 계속됐고, 급기야 난 엄마에게 아빠 만나기 싫다고 울며 대들었다. 드문드문한 만남도 어느 순간 줄어들었고 결국 우리는 만나지 않게 됐다. 사춘기땐 ‘부재중인 아빠’에게 적개심을 품었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그 적개심마저 없어졌다. 그냥 내겐 아빠가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길에서 우연히 아빠를 부딪혀도 아마 모르고 지나갈 것이 틀림없다. 

 

이혼으로 인해 아이와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도, 우리 주변엔 자의반 타의반으로 아이에게‘부재중인 아빠’들이 많다. 치열한 생존경쟁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밤낮 없이 일하는 아빠, 술 마시랴 친구 만나랴 게임하랴 바쁜 아빠, 같은 공간에 있지만 대화는 없고 자기 일만 하는 아빠, 마주 앉았지만 말이 통하지 않고 훈계만 하는 아빠, 돈만 잘 벌어다주면 다라고 생각하는 아빠, 가끔 외식하고 나들이하고 선물 사주면 좋은 아빠라고 착각하는 아빠 등등 자식들에겐 ‘아빠 같지 않은 아빠’들이 많다. 아마 이런 아빠을 둔 자식들은 언젠가 나차럼 “내겐 아버지가 없다”고 선언할지도 모른다.

 

자식들이 생각하는 좋은 아빠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최근 젊은 아빠들이 지향하는‘프렌디’(Friendy)가 이상적인 아빠상이 아닐까 생각한다.‘프렌디(Friendy)’는 ‘친구(Friend)’와 ‘아빠(Daddy)’를 합친 신조어로‘친구 같은 아빠’를 뜻한다. 유럽 지역에서부터 확산된 ‘프렌디’는 육아와 가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를 일컫는다. 아이와 친구처럼 놀아주고 스킨십을 많이 하며 아이에게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한다. 이들은 가족과 함께하는 것을 인생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생각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출산 휴가 및 육아 휴직을 통해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맛본다. 물론 스웨덴이나 핀란드 등 유럽 지역에선 우리나라에 비해 아빠들의 출산 및 육아휴직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또 아버지들끼리 육아 정보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언제나 아이에게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베이비트리에서 아빠 육아 일기를 쓰고 있는 김태규 기자도 대표적인 ‘프렌디’의 모습일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딸에게 남편이 좋은 아빠가 되어 준 순간이다. 아빠와의 추억이 없는 나는 일상 생활에서 남편이 딸에게 좋은 추억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줄 때마다, 마치 내가 아빠의 사랑을 받고 있듯 즐겁고 행복하다. 나는 누릴 수 없었던 행복을 딸은 누리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남편은 주중에는 밤 12시가 넘어서야 퇴근하므로 딸과 함께할 수 없다. 그러나 주말엔 확실히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토요일 오후 4시 정도 귀가하는 남편은 언제나 장을 봐온다. ‘오늘은 딸에게 무슨 요리를 해줄까?’를 생각하며 그날 장바구니를 채운다.




어떤 날은 고구마 튀김, 어떤 날은 잔치 국수, 어떤 날은 굴소스야채덮밥, 어떤 날은 돈가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음식을 아빠 손으로 직접 만들어 준다. 딸은 아빠가 해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아빠와 함께 놀이터로 놀러 나간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동물원이나 꽃박람회에 딸을 데려가 추억을 만들어주고, 너무 추운 요즘 같은 날엔 실내 어린이 놀이터를 찾아 함께 놀아준다. 주중에는 늦게 퇴근하더라도 남편은 잠자는 딸에게 뽀뽀를 하고, 온 몸을 쓰다듬어준다.




출근할 때는 항상 문앞에서 딸과 뽀뽀하고 안아주며 “오늘 하루 잘 보내라”고 다정하게 말한다. 다른 사람에겐 무뚝뚝한 편인 남편이 딸에게는 어찌나 다정스러운지 신기할 뿐이다. 혹시라도 여유가 있어 남편이 일찍 퇴근한 날엔 딸과 몸놀이도 많이 하고, 핸드폰으로 당근, 포도, 뽀로로 등 딸이 그리라고 하는 그림들을 그리며 놀아준다. 딸에게 책도 읽어주고, 딸의 고장난 장난감도 고쳐준다. 이 모든 것들을 남편은 힘들어하지 않고 즐겁게 한다. 의무감으로 책임감으로 딸과 시간을 보낸다면 지켜보는 내가 힘들텐데, 남편은 정말 기꺼이 즐겁게 한다. 참 보기좋다. 아빠로서의 남편을 점수로 매겨본다면 100점 만점에 80점은 될 것 같다. 100점을 주고 싶지만 주중 퇴근 시간이 너무 늦고, 주말에 3개월 된 아들을 돌볼 때 텔레비전을 보며 대충 보는 경향이 있다. 또 가끔 딸이 투정을 부리거나 울면 악을 지르며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점만 고친다면 100점짜리 좋은 아빠, 프렌디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6157579581d7201b81d105a364d397c2. » 딸과 뽀뽀하는 남편의 모습.




지금 당신은 어떤 아빠인가? 아이에게 부재중인가, 아니면 좋은 아빠인가?

우리 사회에 좋은 아빠가 많아지려면 무엇보다 사회적 여건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출산 및 육아 휴직을 엄마 뿐만 아니라 아빠들도 사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스웨덴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월급의 80%를 받으면서 부부가 480일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480일 가운데 60일은 반드시 아빠가 휴직해야 하며, 2008년부터는 부부가 육아휴직을 절반씩 쓰면 ‘성평등 보너스’까지 지급한다고 한다. 출산휴가는 고작 3일에 불과하고 (2011년부터는 유급 3일+무급 2일로 확대 적용된다고 하지만 여전히 적다.), 아빠들의 육아 휴직은 제도는 있으나 실제로 휴직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은 우리나라 현실과는 다르다. 자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우리 사회는 나쁜 아빠와 불행한 자녀만 양산할 뿐이다.

 










남성들도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해야한다. 내가 생각하는‘좋은 아빠 되는 법 7가지’를 소개한다. 말로만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말하며,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미루지 말자. 다음 중 한두 가지라도 당장 실행에 옮겨보자. 어느새 당신은 좋은 아빠라 불리고 있을 것이다.

 

1. 요리로 가족을 대접하라. 음식은 사랑이다.




주말에 아내를 대신해 요리를 해보자. 요리 솜씨가 없으면 라면이나 국수처럼 쉬운 것부터 시작해보자. 일단 요리를 해서 가족에게 대접을 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 음식이 맛있다면 금상첨화.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다. 음식은 정성이고 사랑이며, 음식을 함께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눈을 맞춘다.   




2. 일주일 중 단 하루라도 아이와 집중해 놀아주자. 제발 텔레비전은 끄자.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아니 2~3시간만이라도 아이와 함께 놀아주자. 아이와 놀아준다면서 텔레비전 틀어놓고 아이와 함께 보는 행동은 하지 말자. 아이와 몸놀이를 하든지, 놀이터에 나가 놀든지, 장난감을 가지고 놀든지, 책을 보든지 아이와의 시간에 집중하자.

 

3. 아이와 함께 나들이를 가거나 여행을 떠나자.




아이들에게 있어 세상 구경처럼 좋은 교육은 없다. 그것도 아빠와 함께라면 즐겁기만 할 것이다. 틈나는대로 아이와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집을 떠나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자.

 

4. 많이 웃고 아이와의 스킨십을 즐기자.

 

아빠가 웃어야 아이가 웃는다. 아이 앞에서 자주 웃는 모습을 보이자. 어릴 때부터 자녀와 자주 뽀뽀하고 안아주고 스킨십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다. 스킨십은 애정을 두배, 세배로 증가시켜줄 것이다.

 

5. 좋은 아빠가 되려면 좋은 남편이 돼야 한다.

 

아빠와 엄마의 관계가 좋아야 아이들의 정서가 안정된다. 부모가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면, 아이들은 그런 부모들을 보며 안정감을 느낀다. 좋은 남편이 되려면 가사와 육아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퇴근길에 “오이/호박/가지/우유”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면, “아내가 나를 이마트 배달 사원으로 아나보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즐거운 맘으로 마트에 들러 장을 봐야 한다. 아내가 아이 키우는 게 “힘들다”고 말하면, “애 키우는 게 뭐가 힘드냐”고 다그칠 것이 아니라 공감해주고 꼭 안아줘야 한다.

 

6. ‘깜짝 선물’을 선사하라. 아이가 감동한다.

 

평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자. 그리고 깜짝 선물을 준비하라. 아이는 아빠의 섬세한 배려에 감동할 것이다.

 

7. 아내 및 자식과 함께 자신의 꿈, 비전을 공유하라.




아빠는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등등 자신의 꿈꽈 비전을 아내와 자식에게 얘기해주라.말로 하기 어렵다면 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다. 그래야 아빠를 남편을 단순히 돈 버는 기계로 착각하지 않는다.

 






b0c7d7137a1f30af37b24d31ac26c99e. » 아빠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는 딸의 모습.




마지막으로 여성들에게 추천하는 남편을 좋은 아빠로 만드는 방법. 이 세가지는 내가 남편을 좋은 아빠로 만들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것들이다.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해 다른 분들에게도 소개한다.




남편과 아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놓치지 말고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해 남편과 공유해보자. 남편은 사진과 동영상 등을 통해 행복해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자신 스스로가 좋은 아빠라고 느끼고 신이 나서 더욱 더 좋은 아빠로서의 길을 갈 것이다.




남편과 아이가 함께 하는 시간을 방해하지 말자. 남편이 아이를 좀 위험하게 다루고 서툴게 보살핀다고, 좀 울린다고 남편에게서 아이를 빼앗지 말자. 느긋한 마음으로 아이와 남편의 상호작용할 기회를 주자.  가끔 아이와 남편을 단둘이 놓고 외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 연구에 따르면 엄마, 아빠, 아기가 모두 함께 있을 떄는 아빠와 아기의 상호작용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하지만 아빠가 아기와 단둘이 있을 때는 훨씬 자발적으로 아기와 놀아준다고 한다. 또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연구진들은 아빠가 자녀에게 접근하는데 엄마가 문지기 노릇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엄마는 아빠를 격려해 양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줄 수도 있고, 비판적으로 문을 걸어닫을 수도 있다고 한다. 아이와 남편의 관계를 차단하는 나쁜 문지기 역할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 참고서적: <남자의 뇌, 남자의 발견> (루안 브리젠딘 지음·리더스북))   

 

항상 아이에게 아빠가 얼마나 아이를 사랑하는지, 아빠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아이에게 해줬는지 말해주고 아빠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자. 남편이 나쁜 아빠일지라도 잘 하고 있는 것이 한 가지라도 있을 것이다. 잘 하고 있는 것을 칭찬해주고 격려해주자. 어떤 경우든 비판이나 비난보다는 칭찬과 격려가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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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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