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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를 떠나 시골 마을의 단독주택으로 옮겨 산지 5년째...

제일 많이 변한 부분이라면 소위 '징그러운 것들'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발이 많이 달린 벌레들이나, 거미, 지렁이, 쥐, 뱀에 이르기까지

집 안과 밖에서 마주치는 것들이 하도 많다보니 이젠 심드렁해졌다.

처음엔 온통 비명이었다.

목욕탕에서 만난 곱등이며 귀뚜라미를 보고도, 천정에서 스믈 스믈

내려오던 큰 거미를 보고도, 발이 수십개는 더 달린 돈벌레가 벽에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도 꺅 소리를 질렀다.

 

현관 신발장 아래로 비죽이 나와 있던 쥐꼬리를 발견했던 여름날도

그리책에서만 봤던 커다란 두꺼비가 떡 하니 버티고 있던 윗 밭에서도

땅을 갈면 사방에서 기어나오던 굼뱅이며 지렁이들의 모습에도

가슴이 서늘해져서 비명이 터져나왔었다.

이젠 정말 어지간한 비주얼이 아니고는 잘 놀래지 않는다,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지난 일요일, 남편이 현관 앞 화분 밑에서 뱀을 잡았다.

화분을 들어 올렸던 그 아래 또아리를 틀고 있었단다.

큰 뱀은 아니었지만 꼬리를 바르를 떨어대는 것이 꽤나 무시무시했다.

아이들은 징그럽다면서도 몰려나와 구경을 하다가 들어갔다.

올해 처음 만난 뱀이다.

바야흐로 뱀 시즌이 시작된 것이다.

집 근처에 사는 뱀은 죽이는게 아니므로 산 언저리에서 풀어 주었다.

(뱀은 재물은 지켜주는 업신이란다. 살려주었으니 우리 재물 좀

잘 지켜줘...^^)

그래도 조심은 해야한다.

풀숲에 갈때 일부러  발 소리를 쿵쿵 내며 신호를 보내는 것을

잊지 않는다. 뱀도 나도 서로 마주치는 일 없이 조심을 하는 것이다.

 

세 아이7.jpg

 

나보다도 더 빨리 벌레에 친숙해진 건 아이들이다.

비 올때 나왔다가 볕이 쬐는 길 위에서 몸부림치는 지렁이들을

손으로 집어 풀숲으로 던져주는 건 아이들이다. 나는 아직

손으로 만지지는 못한다. (앞으로도 안 만질거다!!)

땅을 파다가 굼뱅이를 만나면 일일이 손으로 집어 통에 모은다.

닭들에게 제일 좋은 영양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굼뱅이도 안 만진다. 보는 건 참겠지만 만지는건... 싫다!!)

 

요즘 윤정이는 달팽이에 빠져 있다.

담벽이나 축축한 화분 근처, 나뭇가지 어디나 붙어 있는 달팽이를

방에서 기르고 있다.

신선한 상추며 채소들을 가져다 주고, 물도 뿌려주고, 가끔 흙도 갈아준다.

얼굴이며 손에 붙이고 와서 나늘 놀래켜주기도 한다.

(달팽이는 귀여운 편이지만 역시 나는 얼굴에 절대 안 붙일거다. 손도 싫다)

 

안방 목욕탕엔 정말이지 새끼 타란튤라 정도의 크기인 까만 거미가 산다.

처음엔 놀랬는데 이젠 익숙해져서 변기 위에 앉아 볼일을 보면서 얘기도 건넨다.

물론 너.. 거기에만 있어라.. 이쪽으로 오면... 알지?  뭐, 이런 말이다.

신기하게도 거미는 우리를 위협한 적이 없다. 제 구역을 잘 안다.

쟤는 뭘 먹고 사나... 궁금했는데 세면대 아래에서 커다란 돈벌레를 잡아 먹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흠... 목욕탕에 살 자격이 있구나.. 작은 벌레들, 잘 부탁한다.

아이들은 그 벌레를 '목욕탕 지킴이'라고 부른다.

성주신, 업신, 철륭신, 조왕신 같은 집 지킴이들 반열에 올려준 것이다.

 

자주 보면 익숙해진다.

익숙해지면 더이상 징그럽지도, 무섭지도 않다.

자세히보면 제 각각 사는 영역이 있고, 역할도 있다.

그 모습들은 놀랄만큼 독특하고 특별하다.

마음을 주고나면 그 독특한 생태에 매혹당하기도 한다.

어른보다 열려진 감수성을 가진 아이들은 더 빨리, 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아이들은 영어도 잘 못하고, 구구단도 여전히 해매지만

학교 가는 길가에서 만나는 모든 개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특별히 사랑하는

나무들을 가지고 있다.

모기나 파리를 제외하면 집안에서 만나는 벌레들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엉겅퀴와 지칭개를 구분할 줄 알고, 토끼풀 꽃으로 멋들어진 화관이나

팔찌를 엮을 줄도 안다. 계절마다 모습을 바꾸는 자연과 어울려 놀 줄 아는 것이다.

도시를 떠나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오디.jpg

 

학교 담장 아래로 굵은 오디가 떨어진다.

이룸이는 등교할때마다 그것들을 모아서 두 손으로 받쳐들고 유치원으로 들어간다.

세면대에서 잘 씻은 오디를 선생님 책상위에 놓으면 선생님은 반 아이들과

나누어 먹게 한다.

가끔은 나도 오디를 커다란 칡 잎에 싸서 들고 오기도 한다.

6월에 맛보는 진하고 달콤한 맛이다.

 

2016년 앵두2.jpg

 

올해도 변함없이 앵두는 휘어지게 매달렸고, 아이들은 한동안 학교 갈때마다

반 아이들과 나누어 먹을 앵두를 챙겨 갔다.

앵두와 오디로 초 여름을 맛 보는 아이들.. 이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아이들이 자연 결핍 상태라는 기사를 읽었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맨살을 맛보며 사는 일이 어려운 환경속에서 아이들은 자란다.

자연스럽게 대하지 못하면 흙도 더럽고, 벌레도 다 더럽고 무섭게 느껴진다.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연과 격리되어 살게 한

어른들의 책임이다.

 

도시의 아파트에 살 더라도, 자연을 느낄 수 있다.

작은 풀 한 포기, 도로위를 지나는 개미 한 마리에서도 아이들은 무한한 세상을 만난다.

그 세상을 일깨워주고, 잠깐이나마 같이 동참해주는 마음이 있으면

아이들은 어디서나 자연을 보고 느낄 수 있다.

걸으면서 마음껏 한눈 팔며 우리 주위에 있는 살아있는 것들에 눈과 마음을 주는 것..

그런 시간을 가지면서 자라게 해 주자.

아이들이야말로 가장 자연에 가까운 존재들인데 제 본성을 못 느끼며 살아가는 일은

가슴아프다.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언젠가 "아카시아 꽃이 다 떨어져 간다.." 했더니

아들은 "엄마,  그 다음은 밤꽃이 핀다구요. 아시죠? 밤꽃냄새..흐흐" 하며 웃었다.

그래..

아이들에게 계절은 고유한 맛과 냄새로 다가온다.

지금 사방 밤꽃이 흐드러지게 핀 사이로 뻐꾹새가 운다.

아이들은 길가의 옥수수 줄기에 꽃이 핀 것을 기뻐하며 곧 맛난 옥수수를 먹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자연속에서 계절은 제 색과 맛으로 피어난다.

좋은 교구, 장난감과 옷, 책들도 좋지만 자라는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자연을 친구로 선물하자.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6월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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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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