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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로>에 나오는 시골집같은 곳에서 딱 한달만 아이와 살아봤으면!'

 

30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던 그때, 나는 날마다 이런 꿈을 꾸었다.

살면서 무언가가 절실해질 때는 대부분 어두운 시기를 통과하는 때..

둘째가 태어나기 전, 첫째인 딸아이가 5살과 6살 사이를 살고 있을 때

우리 모녀는 힘든 성장통을 앓고 있었다.

 

내성적인 성격 탓인지 유치원이라는 집단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딸아이도

힘들었겠지만, 그걸 지켜보는 나도 늘 돌덩이 하나를 가슴에 얹고 사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거야.. 하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를 두 갈래로 곱게 땋아 주고, 유치원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등원하는 친구들 맞이하며 잘 적응하길 온갖 노력과 정성을 다했다.

적응을 하는 듯 마는 듯, 그래도 유치원 안 간다며 떼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하며 1년이 좀 지났는데, 그래도 여전히 

아이는 늘 유치원 문 앞에만 서면 머뭇거리고 몇 발짝 움직이다

안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엄마를 돌아보며 눈물을 글썽이곤 했다.

 

그런 일이 있는 밤이면, 깊이 잠든 아이 얼굴을 바라보며 수많은 생각이 오고갔다.

내가 아주 잠깐만 엄지만한 난장이로 변신해서 잠든 아이의 머릿 속에 들어가

예민함과 낯가림을 담당하는 신경줄을 살짝 느슨하게 풀어놓고 나올 수만 있다면..

하는 상상을 얼마나 했던지.

그런 아이와는 별도로, 나는 나대로 30대의 성장통을 진하게 앓고 있었다.

더 나이들기 전에 뭔가 해보고 싶었고 마침 20대에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에

시도를 해서 그 즐거움에 취해 있던 때였다.

하지만, 그 일도 쉬운 일만도 아니라는 걸 차차 알게 되었고

조금씩 자신이 없어지다보니, 내가 사는 곳이 외국이라서 그래!

아이가 딸린 아줌마라서 그래! 이젠 나이가 너무 많아서 그래! ...

날마다 그런 고민과 절망감으로 밤잠을 설치곤 했다.

 

그렇게 딸아이가 유치원을 2년째 다니며 여름방학이 다가올 즈음

나는 결심을 했다. 일단, 아이와 함께 잠시라도 이 갑갑한 도시의 삶을 벗어나고 싶다!

자연 속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맨발로 뛰어나갈 마당이 있고

텃밭과 동물들이 있고 밥을 짓고 빵을 구울 수 있는 부엌이 있는 시골집에서 살고싶다!

그곳에서 토토로의 얘네들처럼 몸 속 저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딸과 함께 시원하게 웃으며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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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음을 먹긴 했는데

늘 문제는 현실과 어떻게 맞출 것인가다.

마침 여름방학이었으니, 한달이란 시간을 확보하는 건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아이와 둘만 가는 것이 좀 두려웠다. 내가 그동안 힘들어하는 걸 곁에서 쭉 지켜보던

남편은 내 의견에 반대는 하지않았지만 한달이나 일을 쉬고 함께 떠나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친정이나 시댁이 한쪽만이라도 시골에 있다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대도시 한복판이니..

친정 부모님과 의논도 해보고 이곳저곳 수소문해 보기도 하고, 들뜨기도 했다가

그냥 포기할까 싶기도 하다가 .. 우여곡절 끝에

결국, 한국도 일본도 아닌 친척언니가 살고 있는 제3국의 시골집으로 결정이 났다.

 

그 뒤로도 시댁 부모님에게 어떻게 알릴까 같은, 남은 문제들로 좀 머리가 아팠고..

비용은 사교육을 안 하는 대신 조금씩 모아온 돈으로 해결했는데

머물 집이 친척집이라 숙박비가 큰 부담이 없는게 가장 다행스러웠다.

마지막까지 남편이 걱정을 좀 많이 하기는 했지만, 여행을 너무 좋아했던

딸아이는 뛸듯이 기뻐했고 그렇게 우리 둘의 한달 시골살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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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좋았다. 너무너무 좋았다.

우리가 머문 곳이 예상보다 더 심한(?) 시골이어서

아이는 집앞 마당과 밭에서 개, 닭, 오리, 소들과 노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다.

닭장에서 가져온 달걀로 아침을 만들어먹고 나면, 작은 지갑과 시장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러 나갔다. 신선한 시골 재료들로 점심을 만들어 집 뒷쪽 마당에 나가 먹고 나면

산책을 나가 들꽃을 모아오거나 딸기 같은 열매를 모아 집에 와서 잼을 만들거나 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감성적인 에세이 세계 속으로 들어와 사는 기분이 들었다.

 

사촌언니의 아이들과 동물과 노느라 날마다 신이 난 딸아이는 엄마가 필요없는 모양인지

나를 찾는 일이 거의 없어 그 덕에 책읽고 글쓰기를 원없이 실컷 했다.

가끔 집과 남편이 그립고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일본의 작은 아파트에서 아이와 단둘이

긴긴 여름방학을 보냈을 생각을 하니 여기서 이렇게 보내는게 천번만번 잘한 선택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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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년이 지난 그때를 떠올리면

지브리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이 장면이 자주 떠오른다.

한달동안 멀리 여행도 거의 안 하고 그 집에서 지냈을 뿐인데

우리가 머물렀던 그 집이 떠다니며 여행을 하고 있었다는.. 그런 느낌이 든다.

아마 내 마음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공간은 집에 머물렀지만, 나는 그 한달 사이,

내 속에서 요동치던 많은 것들과 여행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섬세하고 예민한 아이에 대한 걱정, 나의 일과 미래,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나의 정체성,

자연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 두 나라의 서로 다른 문화와 교육방식 사이에서

아이를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키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내가 많이 짓눌려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짧게 며칠로 끝나는 여행이었다면 그냥 황홀한 경험으로 남았겠지만

한달이란 시간을 두고 지내다 보니, 내가 꿈이나 이상으로 알고 있었던 많은 부분들이

실은 정신적인 허영이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시골과 자연을 동경하지만

내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도시의 삶도 있다는 것도..

그런 과정을 통해 나의 생각과 고민들이 어느정도 정리된 것도 다행이었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아이의 변화였다.

 

딸에게 좋은 경험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자연 속에서 아이는 너무 많이 밝아졌다.

아니, 원래 밝고 호기심많은 아이였지만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런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게

서툴 뿐이었는데 이 여름방학이 끝나고 유치원의 2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전보다 자신감이 넘치고 눈빛이 반짝거리며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지난 한달간의 경험을 틈만 나면 자랑하곤 했다.

담임선생님도 우리 아이가 너무 많이 변한 것 같다며 놀라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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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골서 한달살기가 끝난 그 다음해,

큰아이에겐 남동생이 생겼다.

이제 30대의 몇 년 안 남은 마지막이,

마흔 되기 전에 자격증 하나라도 더 따고 싶었던 열망도 접을 수 밖에 없었지만

이 두 아이와 다시 한번, 육아라는 세계를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4년..

둘째 아이는 이제, 지 누나가 엄마와 시골에서 한달 살기를 하고 온 그 즈음의 나이가 되었다.

나는 이제 마흔을 훌쩍 넘었고, 하나만 키웠으면 모르고 지날 뻔한 많은 것들을

둘째를 키우면서 겪고 배우고 있다.

아이들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만큼 사랑스럽지만,

나는 여자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여전히 자주 성장통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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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바라던 일을 이루었다고 해서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길을 한 걸음씩 멈추지 않고 가는 사람들을 보며 힘을 얻는다.

혹시, 지금 삶에 어떤 변화를 주고 싶다면, 아이와 다른 경험과 세계를 꿈꾼다면,

이들의 삶을 참고해 보길 권하고 싶다.

'나물이네'는 귀신이 나올 것 같다던 옥탑방 부엌에서 생계형 요리를 시작해

지금은 귀농해서 정말 딱 그에게 맞게 살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일신우일신^^

이번주 토요일에 홈파티를 연다던데 아이들을 위한 행사도 있다고 홈피에서 봤는데..

내가 있는 곳과 멀어서 아쉽기만 하다.

 

지금 막 '제주에서 아이와 한달 살기'를 시작한 'g단조'님 블로그도 참 좋다.

너무 사랑스러운 30대 엄마인데, 이 분의 블로그를 보고 있으면

정말 나같은 사람이 세상에 또 있네!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온라인으로 인사도 못했는데 이렇게 소개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늦가을이면 일본으로 오신다니 그때 정중하게 작업(?)을 걸어볼 작정으로..^^

굳이 나이를 들먹이고 싶진 않지만(벌써 했잖아;;)

그 시기를 지나온 40대 엄마로서

이렇게 성실하게 삶을 대하는 그녀의 30대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이분들의 진지한 삶의 모험들이 많은 분들께도 영감을 주리라 생각한다.

 

무난하던 일상을 멈추고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모두가 예상하는 대로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도중에 포기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한번 해 보자.

기대만큼 이루지 못한다해도 생각과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고,

그들의 삶을 통해 적지않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망설임은 확-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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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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