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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있는 집으로 이사온지 어언 10개월..

집이 바뀌면 사람은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는 바로 우리 '남편'이다.

 

아파트에 살때 주말이면 늦잠에서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또 다시 누울 자리를 찾아

내 눈치를 보며 집안을 헤매던 남편이었다.

아들과 공이라도 차고, 어린 딸들 데리고 동네 놀이터라도 다녀 오라고 성화를 해대면

오후 늦게서야 마지못해 나갔다가 금새 들어오던 남편은 여간해서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게 늘 못마땅했다. 산도 가깝고 공원도 가깝고 산책할 곳도 많은 곳에

살았지만 편안한 아파트에서 남편은 좀처럼 움직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던 사람이 500평 텃밭을 끼고 있는 시골집으로 들어오게 되자 제일 바빠졌다.

이 곳의 생활은 남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낡은 단독주택은 늘 여기저기가 삐걱거리곤 했고, 그때마다 남편은 연장통을 들고 집안을

누벼야 했다. 비오고 바람불면 닭장 지붕부터 집안의 배수구를 모두 챙겨야 한다.

괭이로 밭 갈고 낫으로 풀 베고 장대로 밤 따고 감 따는 일도 남편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

주말이면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집 안팎에서 땀을 흘려야 하는 나날이었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남편의 놀라운 변화는 바로 '도끼질'에 고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추운 1 월에 이사오자마자 10년만의 한파속에서 그야말로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했던

우리 가족은 거실에 있던 낡고 작은 벽난로에 불을 피우는 일에 무던히도 매달렸다.

해만 지면 실내 기온이 영상 10도 언저리로 떨어져 버리니 벽난로라도 때야 견딜만 했던 것이다.

갑자기 이사왔으니 제대로 된 장작이 있을리 없어서 비싼 참나무 장작을 사다가 땠던 지난

겨울동안 남편은 올 겨울엔 가을부터 장작을 장만해 놓으리라고 다짐하곤 했었다.

여름부터 건설 현장들을 다닐때마다 공사를 하느라 베어 놓은 통나무들을 열심히 얻어다

쌓아 두더니 10월이 되서면서부터는 틈나는 대로 도끼로 장작을 패고 있다.

전에 이집에 살던 사람들이 쓰던 작은 도끼로 큰 장작을 더 잘개 쪼개는 수준에 머물러 있던

남편의 도끼질이 슬슬 손에 익기 시작하자 남편은 지방에서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대장간에 직접 주문을 넣어 대장장이가 만든 도끼를 구해 왔다.

연장이 좋아지자 남편의 도끼질도 하루가 다르게 늘더니 이젠 돌처럼 단단한 커다란 참나무

아름을 한번에 쪼개는 경지에 이르렀다.

남편은 밤 늦게 퇴근해서 내가 저녁을 차리는 동안 어두운 마당에서 도끼질을 했다.

어둠 속에서도 쩍쩍 갈라지는 통나무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한동안 도끼질을 하고 들어온

남편의 몸에서는 진한 땀냄새가 났다. 육체 노동에 몰두하다 들어온 그야말로 야성적인

싸나이의 냄새였다. 

 

처음에는 일하고 와서 힘들텐데 하며 염려했는데 도끼질을 하고 들어온 남편의 표정에서

일종의 쾌감과 만족감이 가득 스며있는 모습을 보니 남편은 도끼질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이해할 수 있다. 온 몸의 힘을 한 곳에 모아 내려치면 눈 앞에서 쩍 하고 갈라지는 통나무를

볼때 얼마나 짜릿할까. 내 몸의 힘과 능력을 매 순간 진하게 실감하며 눈 앞의 사물을 내 의지대로

다루는 기분이란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사무실에 앉아 서류와 컴퓨터 모니터로만 일하는

세계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충만한 만족감과 뿌듯함이 있으리라.

도끼질을 열심히 하던 남편은 몸매마저 역삼각형으로 변하고 있다. 배가 눈에 띄게 줄어 들고

어깨는 근육이 붙어 더 넓어지는 것이다.

오랫동안 과체중과 운동부족 복부 비만을 진단받던 남편의 체형이 40대 중반을 넘어서 오히려

탄탄하고 균형잡힌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니 이게 왠 대박인가 싶다.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교수와 정신적인 사랑만을 나누던 차탈레 부인이 숲속에서 도끼질을 하는

나뭇군을 보면서부터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매력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려 버렸다지.

웃통을 벗고 도끼질을 하고 있었다면 땀으로 번들거리는 어깨와 등짝의 근육이 불끈거리며

힘찬 도끼질로 통나무들을 쩍쩍 쪼개고 있었을테니 그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이었을까 말이다.

우리집에 놀러왔다가 남편의 도끼질에 감탄을 금치 못하던 남편 친구들은 '도끼질 하는 남편은

마누라에게 사랑을 더 받는다'며 놀려댔다. 그러면서 머지않아 넷째 소식이 들리겠다며

짖궂은 농담을 던지는 것이다.

남편이 건강해지고, 매력적으로 변해가는 거야 나도 두 손 들고 환영이지만 여세를 몰아 넷째를

가져본다니 어쩌니 하는 말엔 단연코 고개를 젓겠다. 셋이면 충분하다. 금도끼, 은도끼를 준다해도

넷째는 자신없으니 도끼질하는 남편이여.. 그냥 통나무나 잘 쪼개시라. 나는 세 아이 키우는

나뭇군의 아내로 행복하게 살겠노라..

 

그나저나 올 겨울엔 남편덕에 따듯하게 지내겠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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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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