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모 성공했는데 아쉬운 이 기분은 뭐지?

그래도 아기는 젖먹을 때가 가장 예쁘구나



혹시나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못해 이 칼럼을 꼼꼼하고 치밀하게 읽었던 독자라면 뭔가 모순돼 보이는 듯한 사실을 발견했을 지도 모른다. 2회 때 젖이 안나와 아이를 탈진시켰던 위인이 불과 5개월만에 몸무게 97%의 울트라수퍼베이비를 만들어 놓다니... 분유를 너무 많이 먹인 건가? 더 놀라운 건 백일 즈음부터 완모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쫄쫄 나오는 젖만으로 초우량아를 먹여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가능하더라. 그러니까 이건 나의 모유수유기 2탄이자 중간점검편.








523d3b724c90f3b9f95965b49acde89e. » 젖보다 분유를 좋아하다가 백일 지나면서 젖만 찾게 된 아기






2회를 읽을 시간 없는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브리핑하자면 모유수유의 열망이 넘쳤으나 무조건 젖만 빨리면 된다는 이론에 충실하다가 애를 잡을 뻔하여 육아의 첫번째 좌절을 맛본 나는 혼합수유로 아이를 키우게 됐다. (딱히 할 일이 없다면 2회 '글로 모유수유를 배웠습니다'편을 읽으셔도 좋습니다^^)가급적이면 젖을 많이 주고 싶었지만 애가 성에 차지 않아 하는 데다 나의 수유능력을 철저히 의심하는 사방의 눈 때문에 반 이상 분유로 먹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유수유의 꿈을 버리지 못한 나는 엄마나 언니의 감시의 눈이 없을 때 분유를 슬쩍슬쩍 줄여가며 3개월쯤 됐을 때는 하루 2-3회 정도로 횟수를 줄였다. 아 물론 언니나 엄마가 오면 도로아미타불이 되곤 했지만.












역사적인 순간은 백일 직후 아이의 감기와 함께 찾아왔다. 감기에 걸리면서 아명 '식신'으로 불리던 아이가 입맛을 잃더니 갑자기 분유병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혼합수유를 하다보면 보통은 모유를 거부한다는데 우리 아이는 분유를 안먹었다. 엄마 뿐 아니라 나도 걱정이 돼 자꾸 분유를 타줬지만 새로 뜯은 2단계용이 거의 다 버려졌다.  하필 며칠 전에 마트에서 유아용품 세일한다고 분유를 5통이나 사왔는데...  므흣한 와중에도 속이 쓰려왔다.



 어쨋든 '만세! 드디어 해냈다' 하고 쾌재를 불렀지만 이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완모(완전 모유수유)의 실체가 이런 것인줄 혼합수유때는 몰랐다. 말하자면 완모는 이데아였다. 누구나 꿈꾸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 아니 엄청나게 어려운 것이었다.  젖양이 적다거나 수유관련한 다양한 애로사항 때문이 아니었다. 완모를 한다는 건 스스로 걸어서 감옥 안에 들어가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혼합수유를 할 때는 가끔 아이를 맡기고 몇시간씩 외출도 할 수 있었지만 완모를 하면서부터 1시간 이상, 길어도 1시간 반 이상은 집을 나가 있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수유시간을 지키려고 해도 아기가 언제 떼를 쓸지 예측할 수 없으니 말그대로 나는 '쭈쭈'를 대령한 채 '올 타임 스탠바이' 해야 했다. 남편이 나를 보고 '아가 밥차 왔다'고 놀리곤 했는데 부정할 수 없었다. 허리 디스크 치료 때문에 2,3일에 한번씩 병원에 가야 하는 요즘 젖을 먹인 직후 쏜살같이 집을 뛰쳐나오는 데 한시간 정도가 지나면 안절부절하면서 휴대폰을 만지작만지작하게 된다. 그러다가 전화가 와서 고래고래 아기가 지르는 소리가 들리면 치료고 나발이고 다 내던지고 돌아와야 한다.



더 심각한 건 아이가 잠잘 때 작동하던 아이의 등센서가 젖으로 옮겨온 것. 아이는 안겨서 자는 대신 젖을 물고 잠들게 됐다. 뿐만 아니라 분유를 먹을 때는 대여섯시간을 코-자서 좀 살게 해주더니 소화가 잘되는 젖을 먹고는 새벽에도 두세번씩 깨어 젖을 찾았다. 특히나 요즘처럼 더위 때문에 푹 못자는 때는 한두시간에 한번씩 깨서 울며불며 하다가 결국 젖을 물려야 잠든다. 노리개 젖꼭지에는 절대로 속지 않는다. 내가 걸어다니는 노리개 젖꼭지가 된 기분이다.  젖을 물리고 재우면 안좋다던데 재우는 정도가 아니라 자면서도 수시로 물리니 실컷 고생해 젖먹이고도 나중에 엄마 때문에 이빨 다 썩었다는 원망이나 듣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



게다가 한가지 복병이 더 남아 있다. 수유를 시작하며 두달 가량 끔찍한 고통을 참다가 드디어 통증도 없어지고 편하게 젖을 먹이게 됐는데 이제 한두달 지나면 아이에게 이빨이 날테고 그럼 여지없이 한두번은 '피를 본다'고 한다. 어흐, 생각만 해도 후덜덜이다. 여기에 하나 더. 젖을 먹이는 것도 어렵지만 끊는 건 더 어려울 텐데 언젠가 돌아올 그날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



요즘은 가끔 왜 내가 완모를 꿈꾸었던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후회하냐고? 천만에. 이번 주에 유난히 쓸거리가 생각나지 않아서 머리를 쥐어짜며 사이트를 뒤적이다가 신순화씨의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젖, 마르고 닳도록'편을 읽고 이 글을 쓰게 됐다.  아무리 고생스럽고 힘들어도 젖먹일 때가 엄마로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 데 공감하기 때문이다.






5개월에 9.5kg 찍은 우리 아기 이제 안고 먹이기도 쑥스러울 만큼 커서 주로 누워서 젖을 먹인다. 다른 엄마들은 누워서 젖먹이면 착 감기게 아기를 폭 안고 잘도 먹이더만 아직도 내 수유자세는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그래도 젖을 먹으며 조그만 손으로 나를 껴안고 짧고 통통한 다리를 내 배위에 척 올려놓는 아기를 보면 너무나 행복하다. 그렇게 젖을 먹다가 얼굴을 들어 나를 쳐다보며 배시시 웃는 아이를 보면 온 몸이 녹아버리는 것 같다.



 친정엄마는 요새도 습관처럼 "젖은 제대로 나오는 거냐" 불안해 한다. "엄마, 웃자고 하는 얘기지?"나는 답한다. 일자형 헝겊기저귀를 찬 모습이 스모 선수를 연상시키는 아이의 '꽉 찬' 뒷태를 보며 엄마는 웃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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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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