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8887.JPG » 새로 산 포크와 숟가락, 젓가락

 

“엄마, 나 포크랑 숟가락 바꿔야 할 것 같아.”

딸이 잠자기 전 칫솔질을 하다말고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그래? 갑자기 왜? 멀쩡한 포크랑 숟가락을 왜 바꿔?”
“친구들이 폴리 젓가락, 숟가락 아니면 놀이에 안 끼워준단 말야~그러니까 나도 그거 갖고 싶어.”
“그렇구나. 우리 민지~ 그래도 민지야~ 친구들한테 민지 숟가락에 폴리는 안그려져 있지만 이 숟가락 또한 특별하니까 같이 놀자고 하면 안 될까? 멀쩡한 포크와 숟가락 놔두고 또 사는 것은 그렇잖아. 꼭 폴리가 그려져야만 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안 그래?”
“아이참! 나도 친구들에게 그렇게 얘기했지~ 내가 몇번 말해~그래도 친구들은 아니라고 하는데 어떡해~ 폴리가 그려져 있어야 같이 끼워준다는데. 나도 폴리 젓가락이랑  포크 사줘요~ 엄마~~ 제발~~~”
 
<폴리> <뽀로로> <타요> 등 텔레비전에 나오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아들은 번개맨에서 폴리로 관심이 옮겨져 요즘은 폴리와 엠보, 로이, 헬리 얘기를 자주 한다. 인터넷티비로 폴리를 한 번 보여줬더니, 이제는 시도때도없이 폴리를 보겠다고 우겨 힘들다.  애니메이션에 빠진 아이들의 관심은 이제 캐릭터 상품으로까지 확대됐다. 민지는 지난해 친구가 변신가능한 폴리 장난감을 가진 것을 보고 사달라고 조르더니, 올해는 폴리가 그려진 젓가락과 포크, 숟가락이 아니면 친구들과 놀 수 없다고 나를 협박한다.
 
딸이 처음에 이 얘기를 꺼냈을 때는 ‘설마 폴리 젓가락때문에 놀이에 안끼워줄까’라고 생각하고 무시했다. 그리고 적당히 무시하고 시간이 지나가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웬 걸. 딸은 일주일 내내 나만 보면 ‘폴리 젓가락’ 타령이다. 딸이 “친구들이 안놀아준다”는 말을 하면서 징징거리니 괜히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결국 내 입에서는 “엄마가 주말에 폴리 젓가락 사줄게. 걱정마~”라는 말이 나오고 말았다. 딸은 폴리 젓가락을 사주기로 한 전날에는 “엄마~ 우리 내일 폴리 젓가락이랑 숟가락 사러 가야하니까 일찍 자야지~ 나 일찍 자고 내일 폴리 젓가락 사러 갈거야”라고 할 정도였다.
 
일요일 오전 무거운 몸때문에 축 쳐져 이불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일찍 일어난 딸이 재촉한다.
“엄마~ 빨리 일어나요~ 폴리 젓가락 사러 가기로 했잖아~”
“그래. 곧 일어날게”하며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있는데, 베개 옆 스마트폰에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뜬다.
어린이집 같이 보내는 엄마가 마트로 마실 나왔다고 소식을 전한다. 나 역시 마트로 폴리 젓가락을 사러 가야 한다고 했더니, 다른 엄마가 “나도 사러 가야한다”고 말한다. 애들 사이에 캐릭터 젓가락이 유행이고, 서로 자랑을 하고 놀이에 끼워주지 않는다고 하니, 다른 엄마들도 다 사러 가야겠다 생각한 것이다.  
 
‘폴리 젓가락’ 보다는 엄마들의 마음은 콩밭으로 향한다. 엄마들끼리 만나 쏘다시고 싶은 역마살이 발동한다. 아이 둘을 부리나케 옷을 입혀 엄마들과 함께 약속을 하고 만났다. 마트에 갔는데 어찌된 일인지 ‘타요’ 젓가락만 있고 애들이 그토록 찾던 ‘폴리 젓가락과 포크’은 없다. 마트에서 주먹밥과 국수로 맛있게 점심을 먹고, 서로 장을 보고난 뒤 ‘폴리 젓가락’을 찾아 또다른 마트로 향했다. 세상에나... 폴리 젓가락 찾아 삼만리다.
 
또다른 마트를 쭉 훑어보니 ‘폴리 젓가락’이 있다. 아이들은 “찾았다~” “만세”를 부르고 난리다. 결국 같이 간 아이들은 모두 폴리 젓가락과 포크, 숟가락을 사들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딸은 폴리 젓가락 등을 손에 들고 만족해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내 마음이 찜찜하다. 아이의 요구에 부응해 폴리 젓가락을 샀지만, 폴리 젓가락을 갖고 있지 않은 또다른 아이들에게 소외감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던 까닭이다. 유아기이니까 폴리 젓가락으로 서로를 구분하고 물건을 보이며 자랑했겠지만, 조금 크면 ‘노스페이스’과 같은 브랜드 옷을 입어야 무리에서 인정을 받는다고 사달라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에 어른인 내가 부화뇌동한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마저 들었다.
 
그래서 다음날 그런 고민들을 어린이집 알림장에 적었다. 담임 선생님은 이 현상을 알고 있는지, 또 이럴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선생님과 상의하고 싶었다.
 
“선생님, 캐릭터 숟가락 젓가락을 친구들이 자랑하고 놀이에 안끼워준다고 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폴리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주고도 그 숟가락, 젓가락 없는 다른 아이들에게 또다른 소외감을 주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드네요.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조언주세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이렇게 답을 주셨다.
 “제가 아이들과 이야기나누기 할 때도 그런 젓가락 숟가락 아니더라도 맛있게 멋을 수 있다고 잘 말해줄게요. 그런 캐릭터 아니라도 잘 먹는 친구들 있는데, 민지는 호정이도 있고 다른 친구들도 있던게 부러웠나봐요. 그런일 있으면 제게 말씀해주세요. 제가 친구들과 먼저 얘기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무조건 사주시는 것보단요~”
 
선생님 답변을 받고 선생님께 미리 조언을 구하지 못한 걸 후회했다. 육아 사이트 책임지고 있다고 오만방자해서 내 멋대로 아이 마음에 상처 입는다고 선생님과 상의하지 않고 무조건 폴리 젓가락을 사준 것은 올바른 행동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끼리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고민이 생기면 담임선생님과 먼저 상의하겠다 다짐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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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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